[그래, 나 돌팔이다!-해태 주치의 회고록](36)KIA 타이거즈의 탄생
OSEN 기자
발행 2008.03.24 09: 36

(36)해태의 몰락과 KIA 타이거즈의 탄생 해태 구단이 모기업의 어려움에 따라 ‘자,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해 타이거즈를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해태의 향방은 그 팀에 봉사했던 사람들의 괴로움이자 관심사였다. 모 기업이 불확실하니 어떤 모기업(구단)이 해태 구단을 인수할 것인가, 그리하여 타이거즈가 정말 가난하지 않는 구단이 될 것인가는 큰 주목거리였다. 우리 지역이 낙후되고 가난한 곳이었던 것만큼, 그토록 지역민들의 사랑과 애정이 각별하였건만 해태 구단의 연봉 총액이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었던 현실은 차디찬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지역민들은 어떤 기업이 해태를 인수하여 왕년의 영광을 되찾게 해 줄 것인가에 초미의 관심을 모으고 있었다. 연봉 최하위의 선수단, 하지만 근성으로 뭉쳐진 야구단, 지역민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야구단이 어느 기업으로 인수되어 왕년의 영광을 되찾아 우리 호남인들의 마음을 또 한 번 즐겁게 해줄 것인가. 1990년대 막판, 지난 3~4년 동안 모기업인 해태의 부도로 어려운 형편이면서도 구단을 이끌어 가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면 정말 아슬아슬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이구, 정말 빨리 모기업이 튼튼한 곳으로 인수되어 정말 편안히 야구만 할 수 있는 분위기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대화가 김응룡 감독과 나 사이에 대부분을 차지했다. 연봉 협상이 있을 때마다 관여할 수도 없는, 그렇다고 무관심할 수도 없는 감독의 딱한 처지, 조금이라도 인정받고 싶어 연봉 투쟁을 하고 있는 선수들 모습, 또 한편으로 적은 돈을 가지고 연봉협상을 하는 구단 프론트의 고위 직원들을 가까이 보면서 언제 이런 것들이 해결될까 하면서 수없이 되뇌어 보았다. 그리하여 당시는 대기업이었던 대우, 또 호남의 확실한 기업 광양제철, 또 항공사가 있는 금호그룹(이는 일부 지역민들의 소망이었다), 또 어떤 때는 정말 호남인들이 주주가 되는 지역야구단 등 숱한 대안들이 교차되면서 허무하게 많은 세월을 흘러 보냈다. 어쨌든 모두가 다 무산됐고 해태는 결국 KIA 타이거즈로 이름이 바뀌었다. 현대그룹의 품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 것은 바로 한 그룹 안에 두 야구단이 승패를 겨뤄야 한다는 묘한 라이벌 관계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좋은 의미로 보면 현대와 기아가 현대 유니콘스와 KIA 타이거즈라는 한 지붕 두 살림을 하는 가운데 선의의 경쟁을 통해 좀더 발전된 야구가 되기를 바라는데 기인했다. 해태는 롯데와 제과와 라이벌 관계였다. 이 두 기업은 모기업 용량으로는 비교가 되겠는가마는 그래도 야구는 충분히 상대가 되고 어떤 면으로는 롯데를 제압하는 또 다른 쾌감이 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기아가 팀을 인수하여 2001년 선수 연봉 총합계가 8개 구단 중 2위라니, ‘아, 이제 우리 선수들도 제대로 대접을 받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바라고 싶은 것은 돈이 전부가 아닌, 선배들의 전통을 이어가고 화끈한 야구, 호남인들에게 위안을 주는 야구, 희망이 있는 야구를 펼쳐주기를 구단주나 감독, 코치, 선수들에게 간절히 바란다. 임채준(전 해태 타이거즈 주치의. 현 서남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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