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희정의 스포츠 세상]프로야구 새내기들의 ‘큰소리, 흰소리’
OSEN 기자
발행 2008.03.27 16: 32

2008년 프로야구 시즌을 알리는 첫 행사인 ‘미디어 데이’가 지난 25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렸다. 보통 프로야구 개막 하루 이틀 전에 열렸지만 올해는 일찍 한 탓에 개막전 선발 투수에 대한 언급은 없었고 8개 구단 감독과 선수들의 시즌을 앞둔 소감과 목표를 듣는 자리가 되었다. ‘어느 팀에 꼭 이기고 싶나’, ‘스스로가 전망하는 4강 진출 팀은 어디냐’등 매년 비슷한 질문이 이어졌고 해마다 긴장감으로 가득했던 현장 분위기를 농담조의 깜짝 발언이나 직격탄을 날리며 센스 있는 입담을 과시했던 ‘국민 감독’ 김인식 감독조차 이번만큼은 팀 전력에 대한 걱정이 깊어서인지 지켜보던 수많은 취재진을 만족 시켜줄만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감독과 대표선수의 발표에 이어 마지막으로 신인선수 8명이 등장했다. 무대 왼쪽부터 진야곱(두산. 투수), 최원제(삼성. 투수), 이희근(한화. 포수), 모창민(SK. 내야수), 정찬헌(LG. 투수), 나지완(KIA. 외야수), 장성우(롯데. 포수), 김성현(우리. 투수) 순으로 앉았다. 진행을 맡은 이진형 KBO 홍보팀장은 “지금 이 시간, 미디어가 여러 분들을 주목하고 있다.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라며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 프로야구의 흥행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다소 긴장하고 있던 루키의 의욕과 경쟁심을 부추겼다. 방송용 카메라뿐만 아니라 사진기자의 셔터소리까지, 어색할 법한 루키들은 모두가 1군 진입이 목표이자 신인왕을 차지하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고 이어 취재진의 질의응답 순서로 이어지면서 서서히 그들의 본색(?)을 드러냈다. ‘어떤 선수를 닮고 싶고 또 이겨 보고 싶은 선수는 누구냐’는 질문에 까마득한 대선배의 이름이 줄줄이 호명되었다. 양준혁, 박용택, 김동주, 박경완, 배영수, 오승환 등 야구인의 길을 선택한 이후 선망의 대상이었던 이들을 꺾어 보겠노라는 야심찬 루키도 몇몇 있었다. “여기 나와 있는 (모)창민이 형과 (나)지완이 형에게 삼진을 꼭 잡고 싶습니다.” 신인2차 지명 전체 1순위의 정찬헌(LG)은 시범경기 4경기에서 12 ⅓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0을 기록한 만큼 이전보다 훨씬 더 당당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이희근(한화)은 원체 잘 알고 있는 친구에 대한 경계심을 조목조목 드러냈다. “여기 대졸 선수가 총 세 명인데 같은 학교(성균관대) 동기인 모창민이 시범경기에서 도루를 좀 하던데(7개로 도루 2위) 결코 나는 허용하지 않겠다. 또 (나)지완이는 대학시절(단국대) 내가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안타를 못쳐냈다(웃음). 계속 그렇게 해 줄 것”이라는 자극적인 언사로 신인으로 개막전 4번 타자 출전 가능성이 높아 주목을 끌고 있는 나지완을 긁었다. 롯데의 1차 지명을 받은 포수 장성우는 자리에 참석한 투수들의 볼을 평가해 달라는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는 거침없이 직격탄을 날렸다. “제가 대표 팀에서 마스크를 쓰고 (진)야곱이, (정)찬헌이, (최)원제 공을 다 받아 봤습니다. 그런데 원제 볼은 영 아니던데, 왜 제가 투수로 입단했는지 모르겠네요(웃음).” 이 발언을 듣던 당사자 최원제는 당황하며 어쩔줄 몰라했다. “그 때는 정말 몸이 안 좋았어요. 저 진짜 어깨 아직 괜찮거든요.(머뭇) 시범경기에서 (정)찬헌이의 활약을 보고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지금 변화구를 배우는 중인데 정말 열심히 할 겁니다.” 팀 우승에 대한 목표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선 나지완(KIA)이 “지금껏 이렇게 방망이를 휘둘러 본 적이 없을 만큼 하루 종일 연습만했다”며 성적으로 이어지면 신인왕 타이틀도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라며 의지를 드러내자 가만히 듣고 있던 모창민(SK)는 “우리 SK의 훈련량이 많은 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루 종일 하고도 모자라 꿈에서도 방망이를 휘두른다. 한마디로 겁나게 하고 있다”고 받아쳐 일순간 행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서로를 잘 알고 있는 또래 선수들끼리의 설전은 지켜보는 취재진뿐만 아니라 감독과 선수 프론트의 입가에도 미소를 짓게 했다. 단체 기념사진 촬영을 끝으로 행사는 종료 되었다. 무대에서 내려온 진야곱(두산)에게 행사 참석 소감을 물었다. “제가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무슨 질문을 받을 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제대로 다 전하지 못하고 내려온 것 같아 아쉽네요. 여기 모인 친구들을 모두 1군에서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옆자리의 김경문 감독을 의식해서인지 들리는듯 마는듯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아직은 학생같은 풋풋함을 느끼게 했다. 무대 위에서 정신이 없었다며 붉어진 얼굴을 쓰다듬던 김성현(우리)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모두 말을 너무 잘하던데요? 그런데 야구는 말로 하는 게 아니잖아요. 다음 이 행사에는 (송)지만 선배님처럼 대표선수로서 꼭 참석하고 싶어요. 그 때는 제대로 저를 보여 주기 위해서라도 말 연습을 꼭 하고 와야겠어요! 올 목표요? 40세이브와 신인왕이죠!” 말 잘하는 선수가 대부분 운동도 잘한다. 실력이 좋은 선수가 말까지 잘하면 금상첨화지만 김성현의 이야기처럼 말만 앞서지 말고 실력으로 평가 받는 선수가 진정한 프로이자 고수일 것이다. 초반 답답했던 행사 분위기를 상큼한 대결 구도로 몰고 간 8명의 신인선수 가운데 말과 실력이 일치하는 선수는 누가 될까? 그 어느 해보다 걸출한 신인의 대거 등장으로 2008년 프로야구는 또 다른 재미를 더해 줄 것으로 기대 된다. 홍희정 KBS 스포츠 전문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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