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좀더 그라운드에 남아 있어도 될 듯한 나름의 기량을 갖고 있으면서도, 피해갈 수 없는 팀의 세대교체 몰이와 후배들에게 길을 터줘야 한다는 현실적인 압박감에 내린 김한수의 때이른(?) 선택에 그의 은퇴를 선뜻 용서(?)할 수 없다는 팬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만만치 않게 들려오는 요즘이다. 1497경기 출장, 통산타율 2할8푼9리, 1514안타, 149홈런, 782타점…. 지난 14년간(1994~2007) 묵묵히 삼성 라이온즈의 내야를 지켜왔던 김한수(37)의 통산 성적이다. 2002년에는 주장으로서 선배들이 이뤄내지 못했던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20년의 한을 풀어낸 바 있고, 개인적으로는 골든글러브 3루수 부문에서 무려 6회나 황금장갑을 품에 안은 그에게 더 이상의 아쉬움이나 미련 따위는 없을 것 같은데, 지금까지도 마음 한 켠에 지워지지 않는 멍에처럼 가슴 아픈 순간을 담고 지내왔다는 그의 말에, 종착역과 완성이란 있을 수 없는 프로세계의 비정함을 다시 한번 읽게 된다. 그러면 김한수가 기억하는 가장 뼈아픈 순간은 언제였을까? 4차전까지 3승을 거두며 롯데는 삼성의 적수가 될 수 없음을 기정사실로 몰아가던 1999년 삼성과 롯데의 플레이오프. 하지만 5차전 9회말 1사까지 5-3으로 앞서며 한국시리즈 진출에 아웃카운트 단 2개만을 남겨뒀던 그 시점이 삼성 비극의 서막이었음을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어 그 해 최다세이브(38세이브) 투수였던 임창용(삼성)을 상대로 펠릭스 호세의 극적인 대역전 끝내기 3점홈런이 터져 나왔고, 이후 기울 줄 모르는 PO의 저울추는 6차전을 넘어 최종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김한수가 기억하는 마의 7차전. 이번에는 임수혁이었다. 역시 삼성이 5-3으로 리드하고 있던 9회초 1사 1루 상황, 대타 임수혁은 임창용이 던진 공을 삼성의 한국시리즈 직행 단꿈까지 함께 묶어 멀리 우측 담장 밖으로 날려버렸다. 그렇게 들어선 연장 11회초. 1사 2루 득점기회에서 김민재(롯데)의 좌전안타가 터졌다. 2루주자 임재철이 홈까지 들어오기엔 좀 무리일 수도 있는, 너무 잘 맞은 안타였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것저것 잴 것 없는 임재철의 발은 이미 홈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삼성의 좌익수 김종훈은 타구를 원 바운드로 잡아 곧바로 3루수인 김한수에게 정확하게 연결했다. 그러나 마음이 급했던 김한수는 좌익수로부터 날아온 송구를 한번에 채지 못하고 주춤거리다 땅에 떨궜고, 끝내 결승점이 되어버린 임재철의 득점을 망연자실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타이밍상 제대로 잡아 홈으로 송구했더라면 충분히 2루주자를 홈에서 아웃시킬 수도 있었던 기회를 김한수 스스로가 날린 셈이었다. 돌아선 11회말, 주형광이 삼성의 마지막 3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동안 김한수는 덕아웃 가장 앞줄에 앉아 있었다. 침통한 표정으로…. 이상이 김한수가 14년간의 선수생활 중 가장 뼈아팠던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는 내용의 전말이다. 그런데 공식기록지에선 김한수가 기억하고 있다는 이 좌절의 순간을 찾을 수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록된 실책은 분명 있지만 임재철의 득점이 이루어진 것에 대한 김한수의 책임을 묻는 부분을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2루주자 임재철의 득점은 김한수의 실책이 아닌 김민재의 타점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주자 임재철이 김한수가 공을 떨군 것과는 상관없이 내처 홈으로 달려들었다는 것과 설령, 김한수가 실수없이 홈으로 공을 연결했다 해도 주자가 무조건 아웃 되었을 것이라는 당시 기록원의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리 아웃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하더라도 외야수나 외야 쪽으로 나간 내야수가 중계플레이 과정에서 낙구나 악송구를 했을 경우엔, 야수의 실책으로 기록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김한수의 경우처럼 내야수가 내야 안쪽으로 들어와 중계 플레이에 가담했을 경우엔 주자와의 타이밍을 따져 명백히 아웃시킬 수 있는 기회를 이런저런 실수로 놓쳤다고 한다면, 이 때는 해당 야수의 실책으로 기록할 수 있다. 가끔은 이렇듯 선수가 생각하는 야구적인 플레이와 기록원의 분석이 하나로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경우를 접하게 되는데, 기록원이 별달리 고민하지 않고 지나쳤던 당시 상황을 김한수는 은퇴하는 시점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공식기록에 대한 무거운 고민을 다시 한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주어진 몫을 언제나 꾸준히 해냈던 김한수, 한번쯤은 독이 올라 심판원이나 기록원의 잘못 내려진 판정에 대해 강경하게 어필 할 수도 있을 법한 상황인데도 아무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그대로 들어가버리곤 하던 김한수였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소리없는 강자’. 이제 막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 코치로서의 새로운 야구 인생에서도 여전히 소리없는 강자로 남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