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희정의 스포츠 세상]양궁 대표 막내 곽예지, “저보고 개그맨 하래요”
OSEN 기자
발행 2008.04.04 15: 46

지난 3월 29일부터 5일간 태릉선수촌 양궁장에서는 국가대표 3차 평가전이 열렸다. 이번 평가전에는 지난 해 11월 한국 양궁 사상 최연소(만 15세 2개월)로 태극마크를 단 곽예지(16. 대전체고1)도 포함되어 있었다.
3차 평가전 마지막 날인 4월 2일. 마지막 활시위를 겨누고 돌아서는 곽예지의 어깨는 홀가분해 보였다. 곽예지는 “좋은 경험이었다. 자주 이런 기회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임했다. 다시 태릉선수촌에서 운동할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며 마음을 비웠다는 듯 덤덤하게 소감을 말했다.
“중학교 대회는 사흘이면 끝나거든요. 이렇게 긴 경기를 치른 건 처음이에요. 배운다는 자세로 나서긴 했는데 정말 힘들고 지겨워서 혼났어요.”
1, 2차 평가전보다 훨씬 더 긴장 된 건 사실이지만 3일째를 넘기면서 집중력이나 체력이 떨어지는 걸 느꼈고 제발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엔 없었다고 했다. 곽예지는 특히 닷새간의 긴 평가 방식이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일단 끝나고 나니 속이 후련해요. 마치 고구마 먹다가 막힌 목이 물 먹고 뻥 뚫린 그런 느낌이에요. 처음엔 긴장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연습한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활을 당겼어요. 좋은 경험이 되었어요.”
청산유수로 쏟아내는 그녀의 말투가 꽤 인상적이었다. ‘최근 살이 오른 것 같다’며 말을 잇자 곽예지는 자신의 볼 살을 매만지며 “선수촌에 입촌한 작년 12월 이후 부쩍 살이 불어 걱정”이라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을 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경기 결과보다 더 걱정된다며 미간을 찌푸리는 그녀가 이해되기도 했다.
지난 2차 평가전까지 5위를 지키며 일말의 가능성을 갖고 있긴 했지만 복잡한 대표 팀 평가전의 채점 방식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과녁만 쳐다보고 활을 쏘았을 뿐이라고 했다. 특유의 입담이 무르익을 무렵, 양궁장 주변이 갑자기 술렁였다. 채점 결과가 나온 것이다.
“예지야, 너 뽑혔다.” 결과지를 확인하던 대한양궁협회 관계자들의 외침이 들려왔고 곽예지는 “정말이에요? 저 된 거 맞아요?”라며 재차 확인했다. 그리고 이내 얼굴이 붉어지며 눈가는 촉촉해졌다.
이미 2차전에서 최종평가전 출전 자격을 얻은 박성현(25. 전북도청)에 이어 윤옥희(23. 예산군청), 주현정(26. 현대모비스)의 이름이 호명된 뒤 0.5점차로 김원정(27. 대구서구청)을 따돌리고 곽예지가 마지막 한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될 줄 몰랐어요. 상상도 못했어요. 기대만 갖고 있었는데 기뻐요. (잠시 머뭇거리다가) 앞으로 국제 대회에 출전하게 되니까 외국 나가서 좋기는 한데 몹쓸 병에 걸리진 않을까 걱정도 앞서고(웃음).”
다른 취재진들에겐 베이징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 따고 싶다는 멘트로 소감을 당차게 전했던 그녀가 필자에게는 다시 엉뚱한 이야기를 꺼냈다.
‘무슨 소리냐’며 타박을 주자 곽예지는 “지금 제 정신이 아닌가 봐요. 너무 좋은 나머지 정신을 놓았나 봐요(웃음). 제가 말도 많고 주위에서 개그맨하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한마디로 4차원적인 정신세계를 갖고 있다고들 하죠(웃음).”
긴장감을 해소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노하우를 갖고 있는 걸까? 아니면 본인 말처럼 활 쏘는 일 말고도 남다른 재주를 한 가지 더 갖고 있는 걸까? 엉뚱함으로 똘똘 뭉친 말괄량이 소녀 곽예지는 우리가 갖고 있던 기존의 양궁 전사의 이미지는 없었다. 요즘 10대 소녀의 전형적인 성향을 보여 주는 듯했다. 진지하고도 차분한 양궁선수들만 보다가 이런 ‘천방지축 궁사’를 대면하고 보니 좀 더 양궁이라는 스포츠가 가깝게 느껴졌다
어린 나이에 선배들과의 경쟁도 버거웠을 것이고, 부담 없이 겨루겠다는 마음은 있었겠지만 분명 평범 그 이상의 대범함과 집중력, 그리고 인내심이 있었기에 지금의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언니들이 막내고 어리다고 잘해주시는데요. 솔직히 저는 말도 잘 안 듣고 그랬거든요. 앞으로 잘 할게요.”
곽예지는 활 쏘는 일보다 대표 팀의 막내로서 단체생활을 하는 선수촌의 사회생활이 더 힘들다며 속내를 살짝 털어 놓기도 했다.
3차 평가전에서 1위를 기록한 윤옥희는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나라 양궁 선수로서 올림픽에 나가는 일은 하늘이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그 선물을 받을 수 있을 지 아직도 확신 할 수 없네요.“
올림픽 출전인원은 남녀 각각 3명씩이다. 4명의 후보 가운데 한명은 탈락의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다. 과연 ‘엉뚱 소녀 곽예지’는 그 선물을 받을 수 있을까?
홍희정 KBS 스포츠 전문 리포터
곽예지의 귀여운 모습
대표팀 여궁사들, (왼쪽부터)박성현, 주현정, 윤옥희, 곽예지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