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장성호의 실책으로 둔갑한 발데스의 실수
OSEN 기자
발행 2008.04.22 12: 59

SK와 KIA의 경기가 열렸던 지난 4월 10일. 광주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KIA 내야수의 잇단 실책 두 개가 연이어 터져 나왔는데, 공식 기록상 실책의 주인공이 뒤바뀌게 되는 엇박자(?) 판정으로 잠시 수선을 떨어야 했다. 왜 그러한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2회초 1사 1, 2루의 위기상황에서 KIA는 투수, 유격수, 1루수(1-6-3)로 이어지는 완벽한 병살플레이를 만들어냈다. 마지막으로 공을 잡아 이닝을 끝낸 1루수 장성호는 리마와 함께 해냈다는 표정으로 의기양양하게 덕아웃을 향하고 있었는데, 돌연 이들은 발걸음을 멈춰서야만 했다. 이미 아웃된 줄로만 알았던 1루주자가 2루를 지나 3루로 뛰고, 2루주자가 홈까지 들어오는 황당한 상황이 등 뒤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KIA 선수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했지만 이내 이유가 밝혀졌다. 투수의 송구를 받았던 피벗맨(병살플레이 때 연결고리 구실을 하는 선수를 일컫는 용어)인 유격수 발데스가 2루를 전혀 밟지 않은 상태에서 1루로 공을 이어 던졌기 때문이었다. 즉 쓰리아웃 공수교대가 아니라 투아웃 주자 2, 3루가 되는 상황이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에 KIA의 조범현 감독이 득달같이 달려나와 어필해봤지만 소득은 무. 결국 KIA는 당연히 아웃시켰어야 할 1루주자 나주환에게는 3루를, 2루주자 이진영에게는 무방비 상태로 홈을 도둑맞은(?)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한편 이 상황에 맞닥뜨린 공식기록원들도 머리를 싸매야 하기는 마찬가지 였다. 2루를 밟지 않는 중대실수를 저지른 발데스에게 책임을 물어버리면 간단히 끝날 문제지만, 현실의 야구기록규칙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발데스가 루를 밟지 못한 것은 분명 실책이지만, 문제는 발데스가 곧바로 1루에 송구해 타자주자를 아웃시켰다는 점이다. 현행 야구규칙상 송구를 받은 야수가 루에 태그하면 주자를 충분히 아웃시킬 수 있는 상황에서 루를 태그하지 못해 주자를 살렸더라도, 즉시 다른 루에 송구해 다른 주자(타자주자 포함)를 포스아웃 시켰을 때는 해당 야수에게 실책을 기록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야구규칙 10.14) 발데스에게 실책을 기록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렇다면 실책이 없는 것으로 모든 상황을 정리하면 될 것 같지만, 다음으로 문제가 된 것은 3루주자 이진영의 득점이었다. 기록된 실책이 없었기에 당연히 투수 리마의 자책점이 되어야 했다. 성질 급한 리마로서는 실점한 것도 억울한 판인데 자책점까지 된다면…. 물론 꼭 리마의 자책점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진영의 3루→홈, 나주환의 2→3루 진루내용에 관한 것은 그 근거가 확실해야 했다. 이들이 정상적으로 진루했을 루 이상으로 진루하게 된 원인을 따져보면, 장성호가 이닝이 종료된 것으로 착각하고 그대로 덕아웃으로 들어가려 했던 틈을 보였기 때문이다. 즉 쓰리아웃으로 지레짐작한 장성호의 잘못된 판단이 원인제공의 노릇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고민이 있었다. 장성호의 상황착각을 과연 실책으로 기록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야구규칙10.13항의 [부기3]에 의하면 심리적 혼동이나 판단착오는 실책으로 기록하지 않도록 명기되어 있다. 처음에 발데스나 장성호, 그 누구에게도 실책을 기록하지 않고 일단 경기를 진행 시켰던 것도 바로 이런 까닭이었다. 장성호의 아웃카운트 착각을 심리적 혼동이나 판단착오로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닝 종료가 선언되기 전까지 선수로서 당연히 해야 할 플레이를 잊었다는 것과 아직 심판원의 쓰리아웃 결정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지레 판단으로 경기장을 이탈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플레이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혼동이나 판단착오와는 그 성질이 다른 것이라고 해석, 시간이 얼마간 흐른 뒤 장성호의 실책으로 최종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장성호로서는 억울하게도 발데스로부터 야기된 문제를 덮어쓴 꼴이 되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주자들의 진루는 그 원인을 분명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장성호의 실책과 비슷한 유형의 실책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장성호 처럼 쓰리아웃인줄 알고 공을 심판원이나 관중석 등 다른 곳으로 집어 던지는 행위(과거 삼성 김영진처럼),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 상황을 착각해 던질 필요가 전혀 없는 엉뚱한 루에 송구를 하는 행위, 보크로 선언된 공을 타자가 쳐서 자기 앞으로 굴러오는데도 이를 잡지 않는 행위(과거 쌍방울의 김호처럼), 땅볼타구로 선언되었는데도 직접 노바운드로 잡은 줄 알고 송구를 하지 않는 행위(2007년 한화의 김민재처럼) 등등…. 이 외에도 상상을 해보면 꽤 많은 황당한 그림들이 머리 속에 떠올려지는데, 공통점은 나올 때마다 기록원을 잠시동안 까막눈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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