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재기의 첫 승, 그 고난과 극복에 대한 기억들
OSEN 기자
발행 2008.05.03 15: 15

한국인 마음속의 영원한 메이저리거 박찬호(35. LA 다저스)가 승리투수가 되었다는 소식이 이처럼 반갑고도 갑작스럽게 느껴졌던 적이 있었던가. 이전까지 메이저리그 통산 113승을 기록하고 있던 박찬호가 1승을 추가했다는 사실은 숫자적으로만 놓고 보면 별반 감흥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박찬호가 전해왔던 그 어떤 승리보다도 더 반가운 마음이 드는 것은 ‘이제는 힘들지 않겠는가!’라는 팬들의 반(半)체념 상태(?)에서 들려온 낭보이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지난 4월 26일 박찬호는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경기에서 7-7 동점이던 연장 11회에 마운드에 올라 3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시즌 첫 승을 구원승으로 따냈는데, 이는 2006년 7월 26일 LA 다저스를 상대(당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소속)로 마지막 승리를 거둔 이후 무려 21개월만의 승리였다. 경기 후, 스스로도 믿겨지지 않는다는 말로 시작된 인터뷰는 그 동안 재기를 위해 그가 겪었던 마음 고생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박찬호가 이번에 거둔 뜻밖의(?) 1승은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먼저 커다란 힘이 되겠지만, 팬들 마음속에 찾아들 잊혀져 가던 선수의 재기가 주는 감동과 용기를 생각한다면 단순한 1승이 갖는 의미 이상의 것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내프로야구에서도 이와 같은 사례는 많다. 1982년 22연승을 포함, 24승을 거두며 투수 3관왕에 올랐던 박철순(OB) 투수가 수 차례에 걸친 부상(허리디스크와 아킬레스건)과 눈물겨운 재기를 반복한 끝에 무려 1062일만에 재기의 첫 승(1985년 8월 20일, 대전 청보전)을 거두었던 기억이 그 시작이다. 1986년 신인으로서 18승을 거두며 신인왕에 올랐던 김건우(MBC). 이듬해에도 2년차 징크스라는 세간의 말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여전히 묵직한 구위를 뽐내던 그였지만 교통사고라는 예기치 못한 불행이 찾아 들었다. 오른팔이 부러지고 몸이 만신창이가 될 정도의 중상이었다. 이후 3차례의 수술과 재활을 반복한 끝에 사고일로부터 만 19개월이 지난 1989년 4월 29일, 대 롯데(잠실) 전에서 마침내 그토록 바라던 부활의 첫 승을 기록하게 된다. 1989년 중고 신인으로 19승을 기록하며 신인왕에 올랐던 ‘킹콩’ 박정현. 그 후 4년 연속 10승 이상(19-13-10-13)을 기록하며 태평양 마운드를 주도했지만, 1994년 5월을 끝으로 더 이상 승리와는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기를 여러 해. 1998년 시즌 중도에 쌍방울로 옷을 갈아입은 박정현은 그 해 9월 25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그만의 잊지 못할 첫 승(대 해태전)을 거두게 된다. 만 4년 4개월 만의 일이었다. 2005년 5월, 일본 요미우리에서 퇴단한 지 3년이나 지나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던 조성민이 한화에 입단했다. 여기에 불과 입단 3개월만의 깜짝 등판까지 함께 이루어졌다. 그에겐 국내프로야구 데뷔전이기도 했던 8월 15일, 조성민은 현대전(수원)에서 팀이 3-5로 뒤지던 7회에 중간 릴리프로 마운드에 올라 무실점 호투하며 마무리 투수와 타선의 화끈한 지원으로 구원승까지 기록하기에 이른다. 2002년 5월 30일 일본 야쿠르트 전에서 마지막 구원승을 기록한 이후 만 3년 3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 뒤였다. 2007년 4월 7일. 이대진(34. KIA)은 잠실서 열린 LG전에서 무려 3년 11개월 만에 승리투수가 될 수 있었다. 2003년 5월 SK전에서 마지막 승리를 맛본 이후 처음이었다. 1995~1998년에 걸쳐 4년연속 10승 이상(14-16-17-12)을 기록하기도 했고, 1997년에는 투수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V9에 빛나는 명가 해태의 마지막 에이스로 군림했던 그였지만, 어깨부상으로 인한 수술과 재발 그리고 타자로의 전향과 실패 등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얻어낸 감격적인 승리였다. 지금까지 열거한 것 외에도 집념으로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사례들은 많다. 하지만 직면한 어려움 앞에 결국 좌절하고 만 경우는 더욱 많았다. 그래서 진정한 재기로 연결된 첫 승이었건 아니면 잠시 반짝하고 스러진 첫 승이었건 간에, 그 가치는 어느 쪽 하나도 값지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이쯤에서 이제 우리는 또 한명의 선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2004년 7승을 끝(정확히는 9월 21일 이후)으로 아직껏 승리를 기록해본 적이 없는 선수다. 통산 124승에 빛나며 2007년 리오스(두산)가 22승을 기록하기 전까지 한국프로야구 최후의 20승 투수로 남아있던 선수다 2008시즌을 앞두고 현대의 몰락과 함께 본의 아니게 팀을 옮길 수밖에 없었던 정민태(38. KIA). 다승왕 3차례(1999~2000, 2003), 골든 글러브 3회 수상(1998~99, 2003), 한국시리즈 우승 4회(1998, 2000, 2003~04), 게다가 한국시리즈 MVP만도 두 차례(1998, 2003)나 차지했을 정도로 어찌 보면 더 이상의 욕심이 필요치 않을 만큼 모두 다 이루고 가졌던 선수지만, 그가 지금은 재기의 첫 승에 목말라하고 있다. 정민태가 원하는 첫 승. 거기엔 지금까지 그가 거두어왔던 과거의 수많은 승리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갈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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