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손맛을 보기까지 장장 3년 8개월이 걸렸다. 한화의 이영우(35)는 지난 5월 7일 롯데 전(사직)에서 손민한을 상대로 개인통산 127호 홈런을 때려냈는데, 2004년 9월 21일 두산 전(대전)에서 126호 홈런(그 해 13호)을 기록한 이후, 날수로만 따져 무려 1325일만에 쳐낸 홈런이었다.
시즌 첫 홈런을 기록하던 날 인터뷰에서 이영우는 이런 말을 했다
“이번에는 날씨도 좋았고, 파울 폴 부근으로 날아가는 타구도 아니어서….”
오랫동안 이영우가 홈런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었던 사연과 이유가 하나로 함축된 말이었다.
사실 이영우는 홈런이 귀한 타자는 아니다. 프로통산 100홈런 클럽 가입을 8년 만에 끝냈을 정도로 나름의 장타력을 보유하고 있는 선수다. 기록상 작년(2007)까지 이영우는 30타석에 한번 꼴(3794타수 126홈런)로 홈런을 기록해왔다.
그런 이영우가 홈런 하나를 추가하는데 이처럼 많은 세월이 필요했던 데는 따로 이유가 있었다. 물론 2005년, 그토록 꿈꾸던 FA를 코앞에 둔 시점에 들이닥친 병역문제가 지난 2년간(2005~2006) 그라운드에 설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가 되겠지만, 찾아보면 실제로 홈런을 치고도 이를 인정받지 못하는 불상사(?)가 두 번씩이나 생기는 바람에 밀리고 밀려 지금까지 둥둥 떠내려오게 된 것이 또 다른 이유임을 알게 된다.
그 첫 번째 불상사는 2007년 6월 28일 대전에서 열렸던 기아와의 경기에서 일어났다. 이영우는 팀이 4-5로 뒤지고 있던 2회말, 대박 같은 만루홈런을 쳐냈는데, 3회초에 폭우로 노게임이 선언되는 바람에 마치 ‘꿈속의 복권당첨’처럼 없었던 일이 돼버리고 말았던 기억이다.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와 실로 오랜만에 친 홈런은 그렇게 물거품처럼 사라졌고, 이영우는 그 해 데뷔(1996) 후 처음으로 시즌 홈런 수에 ‘0’이라는 숫자를 새겨 넣어야 했다.
두 번째 해프닝은 지난 4월 11일 삼성과의 대전 홈경기에서 터져 나왔는데, 이번에는 이유가 파울홈런이었다. 이영우는 5회말 1사 2루에서 삼성의 안지만을 상대로 우측 파울 폴대 부근으로 날아가는 큼지막한 타구를 날렸는데, 까마득히 날아가는 타구를 응시하던 1루심이 그만 파울볼로 선언해버리고 만 일이었다.
당일 중계를 맡았던 방송국의 리플레이 화면상으로는 분명 타구가 파울 폴대 안쪽(페어)으로 지나갔음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현장에서는 한화의 코치나 선수들도 파울볼이 맞는 것으로 생각했을 만큼 육안으로 가려내기가 상당히 어려웠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유야 그렇다 치고 결과적으로 운없는 오심은 또 한번 이영우의 127호 홈런을 무참히 앗아가고 말았다.
이영우의 홈런과 관련된 기억에는 유달리 따라붙는 이야기가 많다. 군 입대 전인 2000년대 초반, 대전 홈경기에서 그 어렵다는 ‘대전구장의 3루타’를 기록하고도 사이클링 히트를 완성하지 못했던 것도 바로 홈런 때문이었다.
그날, 홈런 하나만을 남겨두고 마지막 타석에 들어섰던 이영우의 배트가 힘차게 돌아가자 모두들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서야 했다. 타구가 우중간을 향해 높이 솟구쳐 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무심한 타구는 우중간 담장 최상단을 맞고 그라운드 안으로 떨어져 버렸고 사이클링 히트는 또 그렇게 수포로 돌아갔다.
무려 1325일만에 통산 127호 홈런을 쳐내자 마침내 막혔던 체증이 확 풀린 것일까? 이영우는 불과 이틀 뒤인 5월 9일 대전 LG전에서 또 한번의 홈런포를 쏘아 올렸다. 이번에는 방향이 중견수 쪽. 날씨도 좋았고 파울 폴대 부근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담장이 이영우를 시험대에 들게 했다.
쭉쭉 뻗어나간 타구가 담장 위를 튕겨 백 스크린을 맞고 그라운드 안으로 떨어지자 LG의 야수들이 공을 집어 들었다. 전력으로 2루까지 진루한 이영우는 2루에 멈춰선 채 사방으로 눈치를 살펴야 했다. 타구가 홈런인지 아니면 담장에 맞고 떨어진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심판원의 홈런 사인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후 홈으로 마저 뛰어들어온 이영우는 그제서야 비로소 활짝 웃을 수 있었다.
미완의 대기로 불리던 김태완 급성장과 외국인 선수 클락의 가세로 올해 들어 완전히 메가톤급 타선으로 중무장한 한화 이글스. 여기에 이영우마저 예전의 기량을 찾아가고 있어 상대로서는 마주하기에 아주 껄끄러운 팀이 되어버렸다. 지난 시즌의 부진으로 3할 밑으로 주저 앉았던 개인통산 타율( .296)을 이영우가 올 시즌엔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지….
홈런 더비 상위권을 독식하고 있는 한화지만, 첨병 노릇을 톡톡히 해내는 이영우의 바지런한 발걸음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