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툭툭 떨어지는 빗방울이 묘한 앙상블을 이룬 지난 13일 오후. EPL(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9개월간의 긴 레이스를 마친 이영표(31. 토트넘 핫스퍼)와 설기현(29. 풀햄 FC)의 동반 귀국 소식을 접하고 필자는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어느 항공사 몇 시 도착’이라는 소식만 확보되면 입국장을 지키고 있다가 붙잡을 수 있는 공항이라는 곳은 취재원으로서는 빠져 나갈 수 없는 불리한(?) 적지 같은 곳이기도 하다. 몰려든 취재진들은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림에 익숙해 보였고 방송용 카메라도 이미 5개 이상 훌쩍 넘는 숫자였다.
최고의 성적을 내거나 신기록을 작성하고 돌아오는 선수들의 경우 취재진들이 반기고 있는 모습을 보고 고국에서 자신의 결과물을 인정해 주는 듯 해 뿌듯하고 당당하겠지만 오늘의 대상자는 부진한 한 시즌 이후에 어김없이 나오는 팀의 입지에 관한 거취 문제와 이적설 등에 초점이 맞춰져 곤혹스러울 것이다.
기왕에 거론된 이야기에서 많이 다른 것은 나오지 않을 것이 분명한 상황이었지만 본인들의 입을 통해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선 놓칠 수 없는 취재였다.
이미 이적이 현실화 되어 있음을 스스로 인정한 이영표는 말을 아끼며 “아직은 자세히 밝힐 수 없다. 여유를 갖고 결정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설기현은 “이적은 생각해 본 적이 없고 감독이 원하는 선수로 거듭나겠다”며 소속팀 풀럼에서 계속 뛸 의향을 내비쳤다.
“(박)지성이 하고 방금 전에도 통화 했어요. 박지성 선수는 팀 우승을 하지 못했더라도 이제는 세계적인 선수이자 또 세계 최고의 선수들도 인정하는 선수로 발전했습니다. 그 동안 이룬 것 이상으로 앞으로도 이룰 게 많은 선수입니다.”
마지막의‘선수입니다.’라는 말은 입속에서 흐지부지 발음을 해 녹음기의 볼륨을 최고로 높여서 들어 봐도 끝을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분명 이영표는 박지성에 대한 칭찬과 덕담에 인색하지 않았다.
한국 선수로는 5번째 프리미어리거가 될 김두현(26. 웨스트 브롬)에게 먼저 진출한 선배로서 조언을 해 준다면 뭐라 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은 설기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잘 하고 있는 (김)두현이에게 내가 무슨 해 줄 말이 있겠어요. 다음 시즌에도 잘 할 겁니다. 저는 소속팀 에서 자주 뛰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한 만큼 대표팀에서 만큼은 실망시키지 않게 철저히 준비하겠습니다.”
‘초롱이’ 이영표는 공항에서 늘 그랬듯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인 반면 설기현은 본성이 차분하고 소극적이기 때문일까, 역시 이 날도 덤덤한 차원을 넘어 고민을 한가득 안고 온 듯 보였다.
‘공인’혹은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주목을 받는 처지에서 늘 좋은 모습만 보여 주고 싶겠지만 살다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도 생긴다. 비록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안고 돌아왔지만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프리미어리거‘라는 ’네임 벨류‘는 살아 있었다. 취재진의 숫자와 열기가 그랬고 공항 이용객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필자는 걱정거리가 생겼다. 과연 한국 최고의 슈퍼스타이자 프리미어리그의 입지를 확고히 다진 박지성(27.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귀국은 무사할까? 모든 언론의 축구담당 기자들은 물론일 것이고 스포츠 방송과 연예 프로그램까지도 그를 찾아 올 것이다.
이영표와 설기현의 귀국 현장에서도 인명사고까지는 아니지만 방송사고가 나기 일보직전의 상황이 연출 되었다.
취재 마이크 선이 꼬이고, 기자들은 좀 더 가까이, 바로 곁에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처절하다. 몸싸움까지는 아니지만 취재를 향한 열정이 힘이 동반 될 때는 체력이나 체구에서 밀리는 느낌을 받으며 순간이지만 무섭고 두렵기까지 하다(역시 필자도 주인공의 곁을 지켜내야만 살 수 있는 처지이기에 최선을 다해 자리 차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제발 박지성 에이전트관계자는 공항내의 간략한 인터뷰로 귀국 인사를 하는 것만은 피해 주었으면 좋겠다. 기자회견장을 따로 정해 인간적으로 안락한(?) 취재가 되길 바란다.
지난 해 7월 명동거리에 나타난 박지성을 보기 위해 몰려든 팬들의 인파를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채 가시지 않은 2008년 5월 현재, 그의 명성은 그 때보다 더 견고해졌고 가치가 새록새록 빛나고 있다. 부디 큰 사고 없이 원활한 기자회견이나 행사가 이어지길 바란다. 인기와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스타를 쫒는 일은 정말 어렵다.
홍희정 KBS 스포츠 전문 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