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이종범의 역마살 포지션, ‘마운드만 남았다’
OSEN 기자
발행 2008.05.20 14: 11

단체 구기종목이 모두 그러하듯이, 야구도 자리에 따라 해야 할 임무가 저마다 다르고, 포지션별로 해당 선수에게 필요로 하는 재능과 기능 또한 따로 있게 마련이다. 특히나 야구는 각 위치별로 지니고 있는 기능 차별화가 아주 심한 운동종목에 해당된다. 보통 2, 3개 정도의 복수 포지션 커버가 가능한 일부 선수들을 따로 일컬어 ‘전천후’ 또는 ‘멀티 플레이어’라는 말로 부르고 있는 까닭도 여기에 기인한다. 지난 5월 10일, 목동에서 열렸던 우리 히어로즈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에서는 이종범(KIA. 38)의 1루수 출장이 세간의 화제거리로 떠오른 바 있다. 물론 이종범은 이미 내, 외야를 두루 섭렵한 전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비교적 수비부담이 없다고 할 수 있는 1루수로 나온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종범의 ‘1루수 출장’은 기록적으로 상당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과거 투수와 1루수를 제외한 전 포지션에서 수비수로 뛴 경험을 갖고 있는 이종범에게 이날의 1루수 출전은 그의 ‘역마살 포지션’의 실질적 완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방랑자적 기록(?)이 탄생할 수 있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신체적으로 빠른 발과 강한 어깨를 밑천으로 하는 이종범 자신의 타고난 야구센스 덕분이지만, 그 이면에는 이종범이 일이 생길 때마다 낯선 포지션에 서지 않으면 안될 만한 일들이 연속해서 일어났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1993년 4월 10일, 그 해 개막전(광주. LG 트윈스전)에서 신인임에도 자신의 주특기인 유격수로 첫 프로 데뷔 전을 치렀던 이종범은 1996년 5월 22일 삼성 라이온즈전(광주)에서 수비수로서 외도(?)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팀(당시 해태 타이거즈)이 4-5로 이끌리고 있던 8회말, 해태는 마지막일지도 모를 2사 1, 2루의 기회를 맞이하자 8번 타자였던 포수 권오성을 빼고 대타 장성호를 기용하게 된다. 권오성은 선발포수 최해식의 뒤를 이어 8회부터 마스크를 이어 받은 터. 포수를 소진하는 초강수를 두며 안간힘을 썼던 해태는 결국 득점과 연결시키지 못한 채 9회초에 접어들게 된다. 9회초에 해태는 이대진을 마운드에 올렸는데 문제는 구멍이 난 포수 자리였다.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그 대안은 이종범 밖에 없었다. 이종범을 앉혀 놓고 이대진은 직구위주의 피칭을 하며 단 10개의 공만으로 별다른 위기 없이 9회를 넘기는데 성공했고, 너무도 낯선 그림 ‘포수 이종범’은 이쯤에서 마무리되는 가 싶었다. 하지만 고생문을 열어 제친 것은 이종범 스스로였다. 9회말 마지막 공격에서 선두타자로 나온 이종범은 승부를 원점(5-5)으로 만드는 솔로홈런을 날려버렸고, 이 홈런 한 방으로 이종범은 연장 13회로 경기가 마무리(해태 5-7 삼성) 되기까지 원치 않았던 안방마님 노릇을 계속(총 5이닝)해야만 했다. 연장 13회초에 2루로 뛰던 김재걸(삼성)의 도루를 잡아낸 것은 이날 포수 이종범의 백미. 그 후 1997년을 끝으로 국내무대를 떠나 일본프로야구로 진출한 이종범은 유격수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3루와 외야를 전전했고, 2001년 국내프로야구로 복귀하면서 그는 본격적인 역마살 포지션의 길을 걷게 된다. 2001년 8월 2일, 국내 복귀전이기도 했던 SK 와이번스와의 인천 경기에서 3루수로 출장한 것을 시작으로, 같은 해 8월 5일과 12일 중견수와 좌익수로 경기 중 자리를 옮겨 수비에 나섰고, 2002년 4월에는 우익수로 수비 이동을 기록했다. 그 뒤 몇 년간 또 다른 수비위치에는 나서지 않았던 이종범은 2007년 8월 5일 롯데전에서 대주자로 기용됐다가 2루수로 출장하게 된다. 비록 단 두 타자만을 상대로 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1994년 7월, 지명타자로도 선발 출장한 바 있었던 이종범이 이로써 아직 경험해보지 못하고 남은 곳은 1루수와 마운드뿐. 그리고 2008년 5월 10일, 이종범은 1루수 최희섭의 부상으로 인한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야수 글러브가 아닌 1루수용 미트를 손에 끼어야 했다. 이날 1루수로 나선 이종범의 활약은 예상치를 훨씬 웃도는 것이었다. 비록 실책 한 개가 기록되기는 했지만, 이는 햇빛 때문에 3루수의 송구를 도저히 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 기록된 것으로 이종범의 잘못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제 이종범이 서보지 않은 곳은 마운드뿐. 사회인 야구도 아니고 이종범이 투수로 등판할 수 있는 현실적 가능성은 거의 제로 상태지만 한 가닥 기대는 걸어볼 수 있다. 2000년 9월 6일, 메이저리그의 시카고 화이트 삭스와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 텍사스의 스캇 셸던은 4회에 포수로 출장한 뒤, 1루수(5회)-2루수, 유격수(6회)-우익수, 중견수(7회)-좌익수, 투수, 3루수(8회)의 순으로 메뚜기처럼 자리를 옮겨 다니며 한 경기 전 포지션 출장의 위업(?)을 이뤄낸 바가 있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초반 대량실점으로 승부가 일찌감치 기울자 텍사스의 조니 오츠 감독이 선수기용을 인위적으로 연출한 결과였다. 그 것말고도 메이저리그에선 전 포지션을 옮겨 다닌 사례가 3번 더 기록되어 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이종범이 은퇴하기 전, 승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부담없는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라 단 한명의 타자라도 상대하고 내려가는 야구천재의 모습이 문득 보고 싶어진다. 요즘도 LG전 잠실 외야석에 걸려 펄럭대는 그림 한장. 1985년 7월, 당시 MBC 청룡 유격수이던 김재박 선수가 마운드에 올라 타자를 상대로 투구하던 그 모습 그대로 말이다. 그 날은 ‘야구 천재’ 이종범의 ‘역마살 포지션’이 기록적으로 완전한 마침표를 찍는 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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