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안의 현장 속으로]강민호, 공항의 이별…그 이후
OSEN 기자
발행 2008.06.02 14: 49

“강민호, 강민호, 롯데의 강민호!!” ‘강민호 송’이 사직구장에 울려 퍼진다. 롯데 자이언츠의 강민호(23)가 타석에 들어선다. 아직도 앳 된 얼굴이지만 지난 3년간 롯데의 주전포수로 안방을 지킨 경륜이 몸에 밴 듯 이젠 제법 여유가 있어 보인다. 상대 투수를 노려보는 눈빛이 왠만한 투수들은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강렬하다. 강민호의 성장은 눈부시다. 포수로도 큰 성장을 하였지만 타자로서도 팀의 4번도 이 정도하기는 쉽지 않을만큼 활약이 대단하다. 강민호와 나와의 만남은 지난해 2008 베이징올림픽 예선을 대비한 상비군을 만들면서 이루어졌다. 물론 강민호는 대표팀 소속이었다. 당시 상비군은 포수를 한 명 밖에 뽑질 못해서 대표팀과 평가전을 하려면 꼭 포수 한 명을 대표 팀에서 트레이드(?) 해야만 했다. 베터랑 포수들 틈에 가장 나이가 어린 강민호가 항상 상비군으로 합류해 대표팀 상대로 경기를 하는데 전혀 싫어하는 내색 없이 자기의 맡은바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연히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강민호 덕분에 상비군은 대표팀과 평가전을 훌륭하게 치를 수 있었다. 대표팀에 선발 됐지만 상비군으로 경기를 치르는 강민호는 너무나 의젓하였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사내다웠다. 또 이런 경험이 그 자신도 많이 성장하는 계기가 됐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최종 엔트리에서 빠지면서 강민호는 나에게 약속하였다.“다음에는 꼭 대표 팀에서 살아 남겠습니다.” 그 때가 1차 예선이었고 2차 예선(대륙별 플레이오프)에서도 진갑용과 조인성의 벽을 넘지 못하고 탈락하고 말았다. 최종 엔트리를 대만에서 발표하였는데 본 경기 3일 전에 강민호는 남보다 먼저 귀국비행기를 타야만 하는 신세가 되었는데도 나에게 “감독님, 베이징에는 내가 갑니다.”하면서 전혀 아쉬움을 내색하지 않았다. 마침 다음날이 쉬는 날이어서 나는 먼저 귀국하는 선수들을 공항까지 인솔하여 배웅을 나갔다. 공항에서 나는 강민호에게 “민호야, 한국야구는 앞으로 너 같은 선수가 태극마크를 달고 스타가 되어야 한다. 앞으로 나는 민호 너를 관심 있게 지켜볼 것이다. 앞으로 나에게 아버지라고 불러라…(웃음).” 그 뒤 3개월이 지난 지금 강민호는 나와의 약속대로 한국야구의 스타가 되었고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태극마크를 달 확률이 높은 대선수로 성장하였다. 어린 나이에 두 번의 탈락으로 남 보다 먼저 귀국하는 충격을 이겨낸 성적이라 더욱 강민호의 성장이 대견하기만 하다. 아직 강민호는 수비에서 고칠 점이 있다. 블로킹에서 고개가 공을 보지 못하고 들리는 것과, 드로우에서 왼쪽 어께가 목표(2루 베이스)에 일직선이 되지 못하는 점은 거슬린다. 지금부터 신경써서 배워야 할 것이다. 시즌 초에 사직구장에 나붙었던 “가을에 야구하자, 민호야”, “민호야 몸만 와라 결혼하자”, “쌔려라 강민호…” 등등 이런 문구의 플래카드가 구장서 사라졌다(?). 아니 있기는 있는데 만원관중에 가려서 보이질 않는다. 플래카드는 안보이고 “아 주 라”와 강민호송 만이 사직구장에 울려 퍼지고있다. 대한민국 최고, 아니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조차도 보고 듣지 못했던 야구 광신도(?)들이 사직은 물론이고 롯데가 가는 곳 마다 정수근의 말대로 기네스에 오를 노래방이 열리고 있고 그들은 강민호의 홈런과 이대호의 호쾌한 타격에 열광하고 있다. 좋은 구단과 좋은 관중, 이런 환경 속에서 결코 자만하지 않기를 바라며 한국야구의 대표포수로 민호가 간절히 원하는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임하는 또 한명의 아들을 보고 싶다. 유승안 KBO 경기운영위원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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