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송진우 2000K, 이래도 저래도 송지만
OSEN 기자
발행 2008.06.23 10: 03

지난 6월 6일,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개인통산 2000 탈삼진’이라는 대기록에 단 3개만을 남겨둔 상황에서 당일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오르는 송진우(42. 한화)를 바라보며, 당초 송진우의 탈삼진 숫자가 1개 더 많게 잘못 집계되고 있었던 기록의 오류를 KBO가 기록 달성 전에 미리 발견하고 수정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는지를 새삼 느껴야 했다. 그러면서 필자의 눈과 마음은 송진우의 2000번째 탈삼진 제물(?)로 과연 누가 받쳐질 것인가라는 세간의 관심사보다는 1999번째에 해당하는 탈삼진이 과연 어느 타자에게 기록될 것인지에 더 끌리고 있었다. 만일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지 못했다면 1999번째에 해당하는 탈삼진이 대망의 2000번째 탈삼진으로 버젓이둔갑해 기록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 경기로 돌아가보자. 우리 히어로즈를 상대로 열린 대전 홈경기에서 3회 정성훈을 상대로 이날 첫 삼진이자 통산 1998번째 삼진을 뺏어낸 송진우는, 5회초에 3번타자 송지만을 상대로 볼카운트 2-1에서 4구째에 헛스윙을 유도해내며 통산 1999번째 탈삼진을 뽑아냈다. 이후 대전구장을 가득 메운 1만 명에 가까운 관중(정확히는 9086명)들은 송진우가 2스트라이크를 잡고 나면 일제히 “삼진”을 외쳐대는 열띤 성원을 보내며 대기록의 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좀처럼 탈삼진 기회를 만들지 못하던 송진우가 6회초 정성훈을 볼카운트 2-1으로 몰아가자 장내의 함성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무심한(?) “딱” 소리와 함께 함성은 이내 탄식에 묻혀야 했다. 이미 투구수 100개를 넘긴 8회초, 어쩌면 오늘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속에 모두가 숨죽여야 했던, 대타 권도영을 상대로 만든 볼카운트 2-2에서도 탈삼진이 끝내 무산되자 대기록의 탄생은 또다시 뒷날로 미루어지는가 싶었다. 이어 이상군 투수 코치가 마운드에 올랐고 송진우는 미련을 버려야하는 상황으로 몰렸다. 올 시즌 개인 최다 투구이닝과 최다투구수를 훌쩍 넘겨버린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다음 타석은 일발 장타력을 보유한 송지만이었다. 팽팽한 경기일수록 큰 것 한방에 승부가 갈린다는 통설을 한화로선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관중들은 송진우를 좀더 놔두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송진우”를 연호하기 시작했고, 관중의 기대를 쉽게 저버리기 힘든 상황으로 몰린 한화 벤치는 송진우의 자신감 피력을 방패삼아 남은 이닝을 마저 송진우에게 맡겨야 했다. 이날 1999번째 탈삼진의 주인공이기도 했던 송지만은 볼카운트 2-2에서 5구째 원바운드에 가까운 낮은 변화구에 끌려 그대로 헛스윙을 하고 말았고, 이렇게 해서 송진우의 2000 탈삼진이라는 대기록은 햇빛을 볼 수 있었다. 송진우의 200승과 함께 2000탈삼진까지.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는 것이 기쁘기는 했지만, 한편으론 그 순간 또 한번 새어나오는 안도의 한숨을 막을 수 없었다. 탈삼진 기록을 정정하기 전, 송진우의 1000번째 탈삼진의 상대는 김한수(삼성. 1998년)였다. 그러나 기록 수정 후에는 김한수에서 1001번째로 알고 있던 김재걸로 그 주인공이 바뀌었다. 이것뿐만 아니라 통계의 오류가 있었던 1990년 9월 13일 이후 200K 이후부터는 중간중간의 이정표가 되었던 탈삼진 상대 역시 모조리 새로운 선수로 바뀌고 말았다. 그러나 2000탈삼진의 상대는 비록 기록 수정이 있었다 치더라도 여전히 송지만이라는 사실이 그나마 아찔한 현기증의 강도를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2000 탈삼진을 기록한 이후 기록의 오류를 뒤늦게 찾아내 대기록의 탄생시점이 바뀌었다 가정할 때, 환호도 축제도 모두 허상으로 날아가고, 그 기념비적인(?) 타자도 1000 탈삼진의 경우처럼 다른 사람으로 정정을 해야 했다면…. 열번 잘하고도 한번 잘못하면 잘 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덮여지는 것이 심판원이나 공식기록원의 일이다. 또 다른 대기록을 앞에 두고 송진우와 같은 사례가 또 어딘가에서 발견된다면…. 상상만으로도 식은 땀이 흐른다. 송진우의 탈심진 기록 수정이 역사 바로잡기의 시작인 셈이라고 일전에 말한 바 있지만, 사실 누구라도 본심은 송진우에서 비롯된 역사 바로잡기의 시작이 곧 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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