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아테네 올림픽 출전 선수를 가리는 태권도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선 김학환(당시 23세)은 종료 2초를 남기고 문대성(당시 28세)에게 얼굴차기를 허용하며 역전패를 당했다. 그리고 올림픽에 나선 문대성은 금메달을 목에 걸며 기대에 부응했다. 한동안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김학환은 이를 악물고 재도전을 다짐했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결승전. 김학환은 메흐디 나바에이세라스 칸루스(이란)를 2-0으로 가볍게 누르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러나 올림픽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을 달래지 못했다. 2년 뒤 베이징 올림픽이 ‘마지막 기회’라고 여긴 김학환은 자신의 체급이 출전 체급으로 확정 되면서 올림픽 도전의 불씨가 되살아났다. 3월 14일 경상남도 사천시 삼천포실내체육관. 2008 베이징 올림픽 파견 국가대표 선발 1차 평가전에 나선 김학환은 신예 윤희성(20. 용인대)에게 1-2로 석패를 당했다. 일찌감치 올림픽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윤희성이 문대성의 뒤를 이을 헤비급의 기대주로 평가를 받아왔지만 결과는 자못 의외였다. 6월 24일 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국기원. 제 2회 한국 실업연맹회장기 전국 태권도 대회에 소속팀 무리 속에서 김학환(27. 한국가스공사)을 만날 수 있었다. 예전에 비해 다소 야윈 모습이었다. “얼마 전 군사기본훈련을 4주 받고 왔는데 제대로 먹지 못했는지 살이 좀 빠졌어요.” 도하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군 면제를 받게 된 김학환은 왼쪽 팔꿈치를 오른손으로 부여 잡고 다소 불편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어제 단체전에 나섰다가 다쳤거든요. 그래서 오늘 개인전은 못나가요. 전에도 다친 곳인데 또 그 자리예요.” “손등이 많이 부었네요. 아프겠어요?” 필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필자의 호들갑에 그는 “태권도 선수치고 이 정도쯤은 다반사”라며 “나이가 들면서 점점 부상 회복 속도도 느려지는 게 문제”라며 쓴 웃음을 지어보였다. “대회 참가를 하다보면 부상은 나오게 마련이죠. 1대 1도 그런데 하물며 2대 2 겨루기는 순간의 방심이 큰 사고로 이어지기 쉽죠. 저는 좀 아니라고 생각해요.” 출범 2년째를 맞은 태권도 실업연맹은 ‘재미있는 태권도’를 위해 작년에 체급과 상관없이 대결을 펼치는 단체전과 10초 룰, 그리고 원형경기장 도입 등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고 처음 경험하는 새로운 형식에 어려움을 호소하던 선수들도 올해는 대부분 적응된 듯 보였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2대 2 겨루기에 대해 직접 뛰는 선수로서 위험성이 큰 시도라며 재미보다는 선수의 안전이 우선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단체전은 새로운 상대와 대결을 펼친다는 점에서 대회전에 기대감도 크죠. 보는 이뿐만 아니라 직접 뛰는 선수도 재미있죠.” 김학환은 이미 장단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같은 체급의 국내 실업팀 선수들을 넘어 잘 모르는 타 체급의 선수들과 대결을 펼치는 것이 묘미라며 5인조 단체전 경기 방식의 장단점을 지적했다. “아직 올림픽에 미련이 남아 있죠?” 도하 아시안게임 금메달 이후 올림픽 출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평가를 받아온 그였지만 정작 아테네에 이어 베이징까지 내리 올림픽과의 인연의 끈을 잡지 못한 그에게 예민한 질문을 던졌다. “이제는 거의 힘들다고 봐야죠.” 김학환은 “대표 선발전에서도 부상 탓에 기량을 펼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쉬움이 크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최근 들어 잦은 부상 등 불운이 이어져 답답한 마음에 운세를 찾아 봤더니 “올해가 ‘3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그는 “아마도 그래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젊은 선수들과 비교해 부상 회복 능력 자체에서 밀린다는 그의 말처럼 실력과 체력은 물론이고 거기에 부상 회복속도와 위기관리 능력까지 겸비해야 한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모쪼록 빠른 쾌유를 바라며 더불어 베이징 행을 앞두고 있는 태극 전사들의 안전을 기원한다. 홍희정 KBS 스포츠 전문 리포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