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승의 홀드, ‘꿩대신 닭’. 선발이나 마무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중이 덜한 중간계투 투수들만을 따로 평가할 수 있는 좀더 구체적인 자료의 필요성을 느낀 국내프로야구가 ‘홀드’ 라는 새로운 개념의 통계기록을 도입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8년 전(2000년)이다. 10년간 단 1승만이 전부였던 김민범(현대), 4년간 188경기에 등판해 6승 1세이브를 기록한 정우람과 9년간 186경기에 나와 7승 1세이브를 올린 김경태(이상 SK), 8년간 265경기에 출장해 10승을 거둔 강영식(롯데), 14년간 684경기라는 통산 최다출장 3위에 들고서도 8승만을 기록하는데 그친 류택현(LG) 등, 이상 중간계투를 맡아왔던 몇몇 대표적인 선수들의 참담한(?) 기록에서 보듯 중간계투 요원들이 딛고 서 있던 땅은 말 그대로 척박하기 이를데 없는 기록의 황무지였다. 연봉협상 때면 웬만한 타자보다도 더 많은 경기에 출장하고서도 별반 내세울 만한 기록이 없어 목소리를 한껏 낼 수 없었던 것도 중간계투진 바로 그들이었다. 홀드라는 기록조차 없던 예전에 비해 지금은 그나마 숫자적으로 조금은 풍성해진 느낌이지만, 여전히 기록의 전문성 면에서는 홀드를 바라보는 현장의 인식이 전과 비교해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하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홀드라도 있는 것이 낫다’싶은 경우가 종종 생기긴 한다. 올해 6월 19일, 목동에서 열린 삼성과 우리 히어로즈의 경기에서 중간계투로 등판했던 좌완 이현승(히어로즈)은 마무리의 난조로 다 잡았던 승리 대신 시즌 첫 홀드를 챙긴 것에 만족해야 했다. 이현승은 이날 선발투수였던 김수경의 갑작스러운 붕괴로 8-4로 앞서던 3회초 1사 1, 2루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랐다. 이 위기를 잘 수습한 이현승은 팀이 9-5로 앞선 7회초에 마운드를 송신영에게 넘겼고, 주자 2명을 남겨두고 나오긴 했지만 그의 승리투수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보였다. 그러나 믿었던 송신영은 이현승이 남겨놓은 주자 2명 모두를 득점시킨 것도 모자라 채태인(삼성)에게 동점 투런홈런까지 허용(9-9), 경기를 한 순간에 원점으로 돌려놓고 말았다. 그대로 경기가 끝날 경우, 어부지리의 감이 있긴 하지만 승리투수가 될 것을 의심치 않았던 이현승, 졸지에 기록이 홀드로 한단계 강등당하는 수모(?)를 겪게 된 것이다. 이날 이현승이 던진 투구회수는 무려 4이닝. 이런 경우가 흔치 않은 것 같아 과거 홀드기록을 스포츠투아이에 조회해 보니 역대 두 번째 최장 이닝 홀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2003년 현대와 KIA전에서 신용운(KIA)이 역시 4이닝을 던지고 홀드를 따냈던 것과 동일한 기록이었다. 한편 역대 최장이닝 투구 홀드기록은 올해 5월 27일 KIA와 SK의 광주경기에서 호세 리마(36. KIA)가 기록한 4⅓이닝이었다. 리마는 KIA가 3-1로 리드하고 있던 3회초에 선발 양현종에 이어 등판, 15타자를 상대로 1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팀이 4-1로 좀더 점수차를 벌려놓은 7회초, 손영민(21)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하지만 만루위기를 자초한 손영민이 박재홍(SK)에게 만루홈런을 내주며 경기는 4-5로 뒤집히고 말았고, 리마는 다잡았던 승리투수가 허무하게 날아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봐야 했다. 리마의 품에 대신 들어온 것은 승리가 아닌 홀드. 역시 원한 적 없는 개인 시즌 첫 홀드였다. 이처럼 이현승이나 리마의 예기치 않았던(?) 첫 홀드를 바라보며 슬쩍 궁금해지는 물음 하나가 있었다. 홀드를 따낼 수 있는 최장이닝은 이론상 몇 이닝까지 늘릴 수 있을까? 극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8⅔이닝을 던지고도 홀드로 기록될 수 있다. 자기 팀이 1-0으로 리드하고 있을 때, 선발투수가 아웃카운트 하나도 잡지 못한 상태에서 주자 1명을 남기고 물러났다고 가정해보자. 이어 나온 두 번째 투수가 위기를 잘 넘기고 9회 2사까지 리드를 지켜냈다고 할 때, 마지막 나온 세 번째 마무리 투수가 동점 홈런을 허용(블론 세이브)했다면, 두 번째 등판해 완벽한 피칭을 해낸 투수는 승리투수가 아니라 홀드로 기록이 바뀌게 된다. 홀드가 승리투수나 세이브와 가장 다른 점이 바로 이점이다. 승리나 세이브는 경기가 무승부가 되거나 역전을 당하면 모든 기록이 수포로 돌아가지만 홀드라는 기록은 팀의 승패와는 상관없이 영원히 살아남는 기록이다. ‘꿩 대신 닭’이 손에 쥐어지는 상대적 박탈감이 심한 기록을 선수가 만나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 규정 때문인 것이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