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시절 영리한 플레이에 능했던 김재박(54. LG) 감독의 별명은 ‘여시’. 여우의 방언이다. 그런 김재박 감독이 지난 5월 29일 잠실에서 열렸던 두산과의 경기에서 안경현(38. 두산)의 여우수비에 아군 2명(1루주자 이종렬과 타자주자 조인성)이 동시에 객사(?) 당하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에 덕아웃을 박차고 1루심에게까지 다가갔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김재박 감독이 1루심에게 어필한 것을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고의낙구나 인필드 플라이 적용에 관한 것이 아니었겠느냐’라는 추측을 하기도 했지만, 이 두 가지 규칙에 대해 모를 리 없는 김재박 감독이다. 당시의 상황을 규칙을 통해 접근해보도록 하자. 우선 인필드 플라이를 대입하자면 그 때의 상황은 인필드 플라이 규칙이 적용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사 1루였기 때문이다. 인필드 플라이는 무사나 1사 때, 주자 1, 2루 또는 주자 만루 상황에서 내야에 타구가 높이 떴을 경우에 선언되는 규칙이다. 이 규칙은 플라이 타구가 당연히 잡힌다는 것을 전제로 다음 루로 스타트를 끊을 수 없는 주자들의 약점을 이용, 수비측이 일부러 공을 잡지 않고 땅에 떨어진 다음 주워 루 상의 주자들을 2명 이상 더블아웃 시키려는 꼼수를 차단하기 위해 제정된 규칙이다. 바꿔 말해 포스상태의 주자가 2명 이상 있어야만 적용될 수 있는 규칙이다. 당시 상황처럼 주자가 1명인 경우에는 내야에 뜬 타구를 수비측이 일부러 잡지 않았을 때, 다음 루로 출발하지 못했던 1루주자는 아웃 시킬 수 있겠지만 타자주자까지 아웃 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타자주자였던 조인성까지 아웃 된 것은 안경현의 말처럼 조인성이 타격 후 결과에 실망한 나머지 1루까지 일단 뛰어나가야 하는 주자의 의무를 게을리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두 번째는 고의낙구. 이 역시 해당될 수 없다. 고의낙구라는 것은 내야수가 충분히 잡을 수 있는 플라이 타구나 직선타구를 잡는 척 하다가 글러브에서 일부러 떨어뜨리는 경우에 적용되는 규칙이다. 그러나 안경현의 경우처럼 처음부터 글러브에 닿지 않은 타구는 아무리 쉽게 잡을 수 있는 플라이 타구였다 하더라도 고의낙구에 해당되지 않는다. 고의낙구 역시 수비측이 비신사적인 플레이로 공격측 선수를 두 명 이상 더블아웃 시키려는 의도를 사전에 막기 위한 또 하나의 조치다. 그러면 인필드 플라이도 고의낙구도 아닌데 무엇을 따져보려 했던 것이었을까? 당시 1루심의 말을 빌면 김재박 감독의 어필은 의외로 간단했다. “왜 더블아웃이지?” 김재박 감독의 처지에서는 눈앞에서 벌어진 어이없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확인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무엇을? 1루주자와 타자주자 모두에게 아웃을 선언한 1루심의 판정이 과연 확실한 것인지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이처럼 1루주자가, 타구가 야수에게 직접 잡힐 것으로 알고 다음 루로 뛰지 않는 바람에 벌어진 수비측의 주자태그와 베이스 터치의 수비순서를 놓고 현장에서 헷갈려하는 광경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나중에 규칙적으로 풀어보면 의외로 간단한 일이면서도, 막상 현장에서 갑자기 맞닥뜨리기라도 하면 주자도 수비수도, 그리고 이를 판정해야 하는 심판원과 기록원도 반혼란, 반당황스럽기 마련이다. 김재박 감독 역시 뚝딱 하는 사이에 벌어진 이 상황을 놓고 잠시 머리 속이 혼란스러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상황에 대비해 공식 하나를 기억하고 있으면 아주 편리하다. 3T-3A(주자 태그 후 베이스 터치)는 무조건 더블아웃으로 인정되지만, 3A-3T(베이스 터치 후 주자 태그)가 더블아웃이 되기 위해선 무조건이 아니라 전제조건이 하나 따라 붙는다는 사실이다. 그 전제조건은 주자가 베이스에서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1루수가 3A(베이스 터치)를 먼저 했다는 것은 타자주자를 먼저 아웃시킨 것이기 때문에 1루로 달려오는 사람이 없어진 상태에서의 1루주자는 루를 비워줄 의무가 자동으로 없어지게 된다. 따라서 1루를 밟고 서 있는 동안에는 아무리 태그를 해도 1루주자는 아웃이 되질 않는다. 따라서 1루수는 안경현처럼 루 위에 서 있는 주자(이종렬)을 먼저 태그하고 나서 1루를 밟아야 둘 다 아웃이 되는 것이다. 한편 5월 10일 두산과 롯데(잠실)전에서도 1루수 마해영이 똑같은 상황을 연출한 바 있는데…. 1루수 마해영은 6회초 1사 1루에서 안경현의 땅볼을 잡아 1루를 밟고 서 있던 홍성흔을 태그한 뒤 1루를 밟아 1루주자와 타자주자를 모두 아웃시킨 바 있었다. 당시 마해영은 어떤 것을 먼저 해야할 지 잠시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아마도 이때의 상황이 전문 1루수가 아닌 안경현에게는 큰 공부가 되었던 듯 싶다. 결과적으로 안경현은 롯데전에서 자신이 당한 상황을 그대로 LG전에 되갚은 셈이다. 아주 오래 전의 일로 기억된다. 유격수 이종범(당시 해태)이 이와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냈는데 불똥이 엉뚱한 사람에게 튀고 만 일이 있다. 그 얘기는 다음에 이어 다루기로 한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