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날로 좁아져 가는 사람의 야구
OSEN 기자
발행 2008.09.09 15: 37

‘오심도 야구의 일부’라는 논리로 잘못된 판정에 대해 굳게 문을 걸어 잠갔던 메이저리그. 하지만 2008년 8월 29일, 기어이 그 문이 열리고 말았다. 메이저리그가 홈런성 타구의 파울, 페어에 한해서 논란이 되었을 경우, 이를 비디오 판독을 통해 가려내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불과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9월 4일, 메이저리그 최초의 비디오 판독이 실시되는 상황이 현실로 벌어졌다. 뉴욕 양키스가 템파베이 레이스에 6-3으로 앞선 9회초, 2사 2루에서 알렉스 로드리게스(뉴욕 양키스)가 친 타구가 좌측 담장 폴대 위로 크게 넘어가자 3루심이 홈런 사인을 냈는데, 템파베이의 조 매든 감독이 나와 파울이라고 주장해 이후 2분 여에 걸친 비디오 판독과정을 거쳤던 것이다. 판독 결과는 홈런. 이와 같은 일이 좀더 빨리 가능해진 이유는 지난 5월 19일, 카를로스 델가도(뉴욕 메츠)의 폴대를 맞춘 홈런 타구가 끝내 파울로 처리된 것이 비디오 판독을 현장으로 조기에 끌어들인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찜찜했던 상황을 군소리 못하도록 비디오 판독을 통해 단 한번에 깔끔하게 정리해버리는 모습에서 판정에 대한 의구심은 일순간에 해소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비디오 판독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만능키’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야구는 인간적인 냄새를 지닌 스포츠에 있어 최후의 보루와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국내로 눈을 돌려보자. 한국 프로야구도 최근 날로 첨단화되고 디지털화 되어 가는 중계기술의 발달로 인해 시청자들의 눈높이는 하늘 높이 올라가 있는 상태다. 다채널 시대의 시청률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선 보다 독창적이고 더욱 질 높은 중계기술을 개발해야 함은 방송사로서는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과제다. 팬들은 올해 오심이 늘었다고 얘기한다. 정확한 통계를 뽑아내기 힘들지만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야구중계 기술의 발달이 만들어내는(?) 문명적 오심도 상당수가 포함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단적인 예를 한 가지 들어보자. 해태시절의 유격수 이종범을 떠올려보면 좋겠다. 3루수와 유격수 사이로 빠질 듯한 안타성 타구를 유격수가 빠르게 쫓아가 역모션 상태로 잡아 노 스탭으로 1루에 정확히 송구했다고 치자. 타자주자도 전력으로 뛰어들었지만 그야말로 동 타임. 육안으로 봐서는 도저히 판단이 서지 않는 상황이다. 찰나의 정적이 흐르고 관중들은 침을 삼키는 것도 잠시 잊은 채 1루심을 뚫어져라 응시한다. 곧바로 이어진 다이나믹한 1루심의 아웃선언. 관중들은 참았던 함성을 질러대며 그야말로 메이저리그급 수비였다고 감탄하기 바쁜 상황으로 바뀐다. 야구를 보러 온 관중들은 최상급의 상품 하나를 선물로 받은 셈이다. 하지만 이를 초고속카메라를 이용해 아주 느린 화면으로 반복 재생해 본 결과, 주자의 발이 유격수의 송구보다 조금 더 빨랐음을 보여주는 화면이 나오게 되면, TV를 통해 시청하는 팬들은 탄성대신 결과적으로 오심이었음을 눈으로 확인하며 인상을 찌푸리게 된다. 포장이 잘 된 상품을 받아 뜯어보니 내용물은 시원찮은 것과 마찬가지인, 상처 아닌 상처(?)를 받게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상황은 돌변한다. 파인플레이로 보였던 장면이 오심의 먹물을 가득 뒤집어 쓴 모습으로. 물론 순기능적인 부분도 분명 있다. 용서 받을 수 없는 직업이 야구심판과 기록원이기에 완벽에 도전한다는 생각으로 보다 더 눈을 부릅뜨고 경기에 몰입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러나 사람이 내리는 판정은 결코 기계를 이길 수 없다. 골리앗에 덤벼든 다윗보다 훨씬 더 열세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도 이젠 좀 세련된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육안으로 식별이 가능했던 오심이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인간의 눈으로 가려내기가 사실상 어려울 정도의 결과적 오심이라면 이해하고 넘겨줄 아량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불가항력적인 오심 만큼은 경기의 일부로 녹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람이 하는 운동, 사람이 내리는 판정이기에 잘잘못의 재단도 인간 위주의 기준을 가지고 대입하는 것이 순리다. 야구는 기계가 사람을 조정하는 형식이 어울리지 않는 스포츠다. 메이저리그에서 비디오 판독에 아웃이나 세이프,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을 제외시킨 것도 야구를 사람이 하는 이상, 인간의 스포츠 라는 큰 틀은 절대로 건드릴 수 없는 성역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야구규칙에도 아웃, 세이프 그리고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에 대해서는 절대로 어필할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다. 잘못된 아웃판정이나 볼 판정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명문화해 원천적으로 이의제기를 봉쇄해 놓은 것은 야구는 사람의 경기라는 것을 기조로 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설명을 덧붙이면서 말을 맺기로 한다. 무사 주자 1루에서 노 바운드 포구로 판정했는데 비디오 판독 결과 원 바운드로 포구로 확인되었다면? 진루하지 못한 1루주자를 2루에 보내야 할까? 원 바운드 안타성 타구에도 1루주자가 2루에서 아웃 될 수 있는 것이 야구다. 1루주자의 주루 플레이 모양새나 1루주자의 의도에 따라 그 파생되는 결과는 아주 다양할 수 있다. 이런 부분까지 비디오 판독이 해결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의 파울, 페어에 관한 것만 비디오 판독을 실시한다고 발표한 것은 더 이상 비디오 판독을 확대해서 실시할 생각은 없다는 얘기로 들린다. 지금 하고 있는 비디오 판독에 대해서도 반대의사를 나타내는 부류도 상당수 있다고 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본다면 야구라는 운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야구란 무엇인지의 정체성도 지금보다는 좀더 선명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