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순도 만점’ 가르시아의 보살
OSEN 기자
발행 2008.09.18 14: 50

야구도 축구나 농구처럼 ‘어시스트(Assist)’라는 것이 존재한다. 다만 득점으로 연결되는데 직접적인 도움을 준 선수에게 주어지는 축구나 농구의 어시스트 기록이 공격적인 성향의 기록인데 반해, 야구는 어시스트라는 항목이 공격이 아닌 수비적 성격의 기록이라는 것이 서로간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점이 하나 더 있다. 축구나 농구는 어시스트가 단 한 개씩 만 기록되지만, 야구에서는 하나의 플레이에도 여러 개가 기록될 수 있다. 가령 중계플레이 때 여러 선수의 손을 거쳐 주자가 아웃 되었다면, 이 과정에서 거쳐온 모든 야수에게 보살이 기록(물론 파고들면 예외는 있다) 된다. 야구에서 만나는 어시스트는 땅볼 아웃 때 가장 많이 일어난다. 내야땅볼 타구를 잡아 1루수에게 송구해 타자주자를 아웃 시켰다면 공을 던진 내야수에게는 어시스트(이하 보살로 통일)가 기록된다. 즉 수비에 있어 아웃이 이루어지기까지 도움을 주었다는 의미다. 내야수의 보살 기록은 귀한 기록이 아니다. 많게는 하루에도 열 몇 번씩 주자를 아웃 시키려고 공을 던져대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 기록을 통해봐도 한 경기 내야수 최다보살 기록은 모두가 10개를 상회한다. 2루수 11개, 3루수와 유격수는 각각 12개다. 그러나 외야수라는 자리는 보살기록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은 포지션이다. 플라이 타구를 직접 잡으면 보살이 아니라 ‘자살(Put out)’이 주어진다. 외야수가 보살을 얻으려면 공을 던져 결과적으로 주자를 아웃시켜야만 한다. 같은 외야수라 해도 자리에 따라 차이가 있다. 야구가 가지고 있는 정형화된 플레이 형태상 좌익수 보다는 우익수의 보살 기회가 더 많다. 1루주자가 우전안타 때 3루까지 파는 경우 등, 주자와 승부를 걸 수 있는 기회가 다른 포지션보다 더 자주 찾아오기 때문이다. 현재 외야포지션을 통틀어 한 시즌 동안 가장 많은 보살기록을 갖고 있는 선수는 심성보(쌍방울)다. 주로 우익수로 활약했던 심성보는 가르시아처럼 외형상 떡 벌어진 어깨를 가진 선수는 아니었지만 마른 체구에도 어깨 만큼은 상당한 강견이었다. 1998년에 외야수로서 그가 세운 보살기록은 총 20번(126경기)이다. 이 후 10년간 요지부동이었는데 그 기록이 드디어 깨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바로 카림 가르시아(롯데) 때문이다. 가르시아는 현재(9월 17일 기준) 19개의 보살을 기록중이다. 잔여경기가 아직도 열 경기 이상 남아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올 시즌 가르시아의 손에 외야수의 시즌 최다 보살기록(20개)이 깨질 가능성은 매우 높은 편이다. 그런데 이런 단순한 숫자 놀음에서가 아니라 가르시아의 보살이 주목 받는 이유는 바로 그 내용면에서다. 1998년 심성보의 보살 20개를 유형별로 분류해보면 그 중 7, 8개는 직접적인 보살이 아니라 중계플레이 상에서 결과적으로 얻어진 보살임이 드러난다. 예를 들면 기록부호상 9-2-6T, 9-5-4-2T 이런 식이다. 홈으로 들어오는 주자를 9-2T로 직접 아웃시킨 보살을 기록한 것은 모두 6번. 3루를 노리던 1루주자를 9-5T로 아웃시킨 것은 단 한번뿐이다. 그러나 가르시아의 보살은 순도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보살을 기록한 대부분의 상황이 중계자의 손을 거치지 않은 직접적인 보살이다. 그 중에서도 흔치 않았던 대표적인 경우 몇 가지를 간추려본다. 지난 4월27일 부산사직구장에서 열렸던 삼성전, 7회 최형우(삼성)의 우전안타가 우익수 앞 땅볼로 둔갑했다. 1루주자 박석민이 최형우의 우전 안타 때 가르시아의 송구로 2루에서 아웃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7월 3일 대구 삼성전에서는 3회말 아웃카운트 3개를 가르시아 혼자 책임진 일도 있었다. 선두타자 양준혁의 우익수쪽 2루타성 타구를 잡아 정확한 송구로 2루에서 양준혁을 낚아채더니, 1사 1루에서는 채태인의 우익수 플라이를 잡자마자 1루로 던져 귀루중이던 1루주자 최형우까지 한꺼번에 아웃시키는 원맨쇼를 펼치기도 했다. 가르시아의 보살 퍼레이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가장 압권은 7월 10일 목동구장의 우리 히어로즈 전이다. 3회말 유선정의 우전안타를 원바운드로 잡아 그대로 1루에 뿌려 타자주자를 아웃시켜버린 일이다. 2002년 6월13일, 한화와 현대(수원)의 더블헤더 1차전에서 5회초 이범호의 타구를 우익수 심정수(현대)가 곧바로 1루에 던져 타자주자를 아웃시킨 이후 6년 만에 나타난 진기명기였다. 꽤 오래 전, 배리 본즈(샌프란시스코)가 빨랫줄 같은 송구로 주자를 잡아내고나서 영화속 카우보이처럼 권총 모양의 손 끝을 입으로 훅 불어 옆구리에 꽂아넣는 시늉을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미사일같은 원거리 송구로 상대의 달아오르던 분위기를 한 순간에 잠재우는 가르시아의 보살, 타점수와 안타수가 비등(119안타-106타점)할 만큼의 가공할 클러치 능력을 갖고 있는 그의 공격력도 대단하지만 주자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그의 저격솜씨는 정말 일품이다. 팁 하나. 기록을 뒤적거리다 1998년 심성보에게 저격(?)되었던 선수들 중에서 10년이 지나 가르시아에게도 똑같은 일을 당한 선수가 하나 보였다. 상황도 아주 똑같은 9-6T. 두 번 다 1.5루타성 타구를 쳐놓고 2루를 노리다 아웃되었는데, 바로 양준혁이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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