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막판까지 평균자책점(방어율) 타이틀을 놓고 경합을 벌였던 두 올림픽메달리스트 김광현(20. SK)과 윤석민(22. KIA)의 소수점 낮추기 경쟁은 10월 4일 두산 전(광주)에서 7이닝 무실점을 기록한 윤석민의 승리로 결국 끝이 났다. 그간 단 두 명(선동렬, 류현진)에게만 허락되었던 투수부문 트리플 크라운(다승, 방어율, 탈삼진)의 영예를 내심 기대했던 김광현으로선 바로 눈앞에서 사라진 방어율 타이틀이 못내 아쉬울 만하다 하겠다. 윤석민이 종지부를 찍기 하루 전인 지난 3일, 김광현은 당시 1위였던 윤석민(방어율 2.44)이 지켜보는 앞에서 마운드에 올라 7이닝 동안 투구하며 2실점(비 자책점)으로 경기를 마무리, 방어율을 2.39까지 끌어내리며 윤석민을 잠시 2위로 밀어내기도 했지만 운은 거기까지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날 김광현이 내준 2실점 모두가 비 자책점으로 처리된 것을 놓고 경기 전후에 상당한 논란이 일어났다. 김광현이 KIA전에 등판한다고 했을 때부터 염려스럽던 부분이었는데 결국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하필이면 윤석민과 경쟁구도에 있는 김광현을 같은 지역구(?)인 광주 마운드에 올린 김성근 감독의 결정이 일면 야속(?)하기도 했지만, 팬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더 없는 최상의 상차림. 이날 논란의 골자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투수 자신이 잘못한 것이 왜 자책점으로 기록되지 않는가’ 였고, 두 번째는 ‘3루주자의 타이밍을 과연 아웃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야구에서 자책점은 무척이나 복잡하고도 머리 아픈 존재다. 기록규칙의 양에서도 그렇지만, 안으로 파고 들었을 때의 서로 얽히고 설키는 문제들은 웬만한 조각수의 퍼즐보다도 더 공식기록원들을 난감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복잡하다 해도 자책점을 이루는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중심 뼈대는 있기 마련. 이야기를 풀기 전, 자책점을 판단하는 가장 쉬운 기준 몇 가지를 먼저 정리하고 넘어가도록 한다. 1) 실책으로 아웃 되지 않은 타자나 주자의 득점은 무조건 비 자책점이다. 2) 야구는 3아웃으로 이닝이 종료된다. 따라서 3번 아웃 시킬 수 있는 기회 (실제 아웃 + 실책으로 아웃을 면한 경우의 수)이후에 일어나는 득점은 무조건 비 자책점이다. 3) 이닝 중 발생한 실책과 패스트볼을 제외하고 이닝을 재구성한다. 이 정도가 자책점 규칙의 큰 축을 이루는 골격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전제를 기억하고 김광현이 투구하던 10월 3일 경기로 시간을 되돌려본다. 당시 상황은 기록지(사진)를 참고하도록 하자. KIA의 4회말 공격, 1번타자 유재원이 안타를 치고 출루. 2번 이호신은 투수 앞으로 굴러가는 보내기 번트를 댔다. 그런데 김광현이 서두르다 번트타구를 놓치는 실책(첫 번째 실책)을 범한다. 실책이 없었다면 1사 2루가 되는 상황(이것이 이닝의 재구성 방법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었던 첫 번째 의문점을 풀고 넘어가도록 한다. ‘투수의 실책이 왜 자책점이 되지 않는가’ 하는 문제 말이다. 규칙서부터 들이밀자면 10.18 (e)항에 그 근거를 둔다. ‘자책점을 계산할 경우, 투수의 실책은 다른 야수의 실책과 같이 취급한다’라는 문구다. 이는 미국이나 일본을 포함한 만국공통의 야구규칙이다. 나라마다 달아놓은 나 의 차원이 아니라 골격을 이루는 대전제다. 그러면 그 이유가 뭘까? 자신이 책임져야 할 부분을 다루는데 자신이 잘못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일명 ‘면책특권’을 왜 투수에게 부여하기로 한 것일까? 투수는 타자를 향해 투구할 때에만 투수의 신분이 된다. 투구를 마치고 나면 투수는 더 이상 투수가 아니다. 제5의 내야수로 취급된다. 따라서 투구 다음에 일어나는 투수의 공을 던지는 행위는 모두 투구가 아닌 송구가 된다. 김광현의 경우에는 자신이 직접 실책을 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됐겠지만, 만일 김광현이 물러나고 뒤이어 나온 투수가 똑같은 실책을 했다고 가정할 때, 김광현으로선 억울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자책점과 연관된 투수의 실책에 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대전제를 깔아놓은 것이다. 다시 기록지로 돌아가자. 3번 나지완의 보내기 번트 성공으로 주자들 진루. 실제 상황은 1사 2, 3루지만 역시 재구성하면 2사 2, 3루가 된다. 여기서 4번타자 이재주가 큼지막한 희생플라이를 친다고 가정했을 때, 3루주자의 득점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이닝을 재구성하면 희생플라이 타구는 이닝의 3번째 아웃기회가 되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 득점은 비자책점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재주의 타구는 무심하게도(?) 또다시 김광현에게로 굴러갔고, 김광현은 이 타구를 잡아 3루에서 홈으로 들어오는 주자를 잡기 위해 포수 쪽으로 송구했는데 그만 악송구(두 번째 실책)가 되고 말았다. 이 부분에서 재미있는 상황 한 가지를 떠올려 보겠다. 이재주의 타구를 잡은 김광현이 타이밍이 빡빡한 홈으로 던지지 않고, 아주 여유가 있었던 1루로 던져 타자주자 이재주를 잡았다고 가정해 보는 것이다. 1실점을 각오하고 1루에 던졌더라면 3루주자 유재원의 득점은 영원히 비 자책점이 된다. 왜냐하면 이재주의 아웃이 3번째 아웃기회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경기 초반이고 팀이 꼭 이겨야 할 경기도 아니고, 다승왕은 이미 확보해 놓은 김광현이라면, 더더욱 방어율에 목을 맨 당시 상황에서라면 김광현은 1루에 송구하는 것이 보다 더 안전했다는 얘기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풀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당시 김광현은 자신이 앞서 실책한 부분이 비자책점의 요소가 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 같다. 야구장에서 꽤 오랫동안 근무한 사람들에게서도 이러한 투수의 면책특권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지금처럼 이슈로 떠오르면 모를까 당연지사로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라 하겠다. 본론으로 돌아와 다음은 김광현의 악송구로 홈에서 세이프가 된 3루주자 유재원의 득점에 대한 부분이다. 이는 단순히 홈에서의 타이밍이 세이프냐 아웃이냐 하는 문제를 떠나 좀더 기록규칙의 깊은 내면세계로 들어가 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라 다음 편으로 미루고 쉬어가도록 하겠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김광현을 통해 본 ‘투수의 면책특권’ (1)
OSEN
기자
발행 2008.10.06 14: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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