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규칙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뒤적거리다 보면 선뜻 잘 이해가 가지 않는 표현 하나가 앙금처럼 뇌리에 남게 된다. 애매하거나 아리송한 경우를 만나면 가급적 ‘투수에게 유리하도록 판단하라’는 말과 의심스러울 경우 ‘타자에게 유리하도록 한다’라는 말 때문이다. 서로 반대되는 논리로서 모순처럼 다가오는 이 표현을, 사심 없는 공정한 생각과 판단이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공식 기록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전자의 ‘투수에게 유리하도록’ 이란 말은 자책점 결정 조항에, 후자의 ‘타자에게 유리하도록’ 이란 말은 희생번트 판정관련 조항에 각각 명시되어 있는 표현들이다. 시간적으로는 많이 지난 감이 있지만, 시즌 막바지 광주에서 일어났던 김광현(SK 와이번스) 실점의 비자책점 처리과정에 대한 논란을 소모적인 논쟁으로 끝을 맺는 것보다는, 기록원이 그러한 판단의 근거를 어디에서 찾으려 했는가를 돌아보는 것이 팬들에게도 야구기록에 대한 이해의 폭을 보다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좀더 깊이 다뤄보고자 한다. 투수의 첫 번째 면책특권이라고 할 수 있는 ‘투수실책의 비자책점 처리’ 이유에 관해서는 이미 지난번에 자세히 다룬 바 있다. 그러나 그 첫 번째 문제가 풀렸다 해도 많은 팬들이 여전히 궁금해 하는 부분은 김광현의 홈 악송구와 3루주자의 아웃 타이밍에 관한 것이었다. 당일 현장에서 기록을 담당했던 공식기록원도 김광현의 홈 악송구와 3루주자의 아웃타이밍에 관해서 상당한 고민을 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방어율 타이틀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선수 당사자에 대한 판단이었기에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상황을 가정해서 아웃이냐 세이프냐를 유추해 판단하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어쩌면 누가 먼저 들어왔건 눈 앞에서 확실하게 벌어진 상황을 놓고 판정하는 심판원의 처지보다 더 뜬 구름 잡는 얘기일 수도 있다. 미리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중에 리플레이 화면을 통해서 아웃타이밍을 유추해 본 결과로는 개운치 않은 느낌, 그 자체였다. 엄밀히 따지자면 투수의 송구가 주자가 들어오는 3루방향으로 정확하게 들어왔다고 가정할 때, 3루주자가 자연 태그아웃이 될 수 있는 타이밍으로 보여졌다. 그러나 그 이외의 송구형태로는 3루주자가 홈에서 아웃 되었다고 보기에는 힘든 타이밍이었다. 3루주자가 김광현의 악송구와 관계없이 홈에서 살았다(자책점)고 어필한 KIA의 주장도 충분히 납득이 가는 대목이었다. 소속팀 선수인 윤석민의 타이틀이 걸려있어서 그렇지 평소라면 어필을 나올 상황은 전혀 아니었다. 상대팀 선수의 타구 기록에 대해 야수선택(F.C)으로 기록하지 않았다고 어필을 나온 것은 이전에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는 초유의 일이었다. 다시 기록원의 생각 속으로 돌아와 3루주자의 타이밍을 아웃으로 간주, 비자책점으로 판단한 그 근거기준은 과연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통상적으로 안타성이 아닌 일반적인 땅볼타구를 잡은 야수의 악송구는 그 타이밍이 조금이라도 주자가 아웃 될 가능성이 엿보였다면 야수선택보다는 실책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 현추세다. 그 이유는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꺼냈던 투수의 면책특권 그 두 번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투수에게 유리하도록’ 이라는 조항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야구규칙 10.18 자책점 규정, (f)항의 [실책이 있었을 경우, 실책의 도움 없이도 주자가 진루할 수 있었는가를 결정하는데 의문점이 있으면 투수에게 유리하도록 한다] 라는 바로 이 부분을 잣대로 삼은 까닭이다. 단, 만일 당시 김광현이 잡은 땅볼타구가 일반적인 땅볼이 아닌 희생번트(스퀴즈 번트 포함)의 성격을 담은 타구였다면, 김광현의 홈 악송구는 실책이 아닌 야수선택으로 기록되는 상황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 이것은 타자의 희생번트 기록이 연루되어 있기 때문이다. 타이밍상 완전한 아웃이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 상황이라면, 타자의 희생의도를 인정 받을 수 있는 쪽으로 기록해 주는 것이 규칙에 담겨 있는 기록정신에 더 부합되기 때문이다. 기록원 역시 순간순간마다 감(느낌)을 가지고 여러 가지 판단과 결정을 내리긴 하지만, 그 이면에는 상황상황에 맞는 이러한 규칙정신과 나름의 정도를 찾아내려고 늘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번 김광현의 자책점과 관련된 일을 이론적으로는 이렇게 마무리 지어보지만 확실한 것은 현장에서 또다시 이와 비슷한 일을 겪게 된다면 누구라 해도 여전히 그 판단은 대단히 곤혹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악송구와 동시에 일어나는 주자의 보이지 않는 아웃 타이밍을 재는 일이란 늘 신기루와도 같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