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찔한 기분은 여전하다. 지난 17일, 두산과 삼성의 플레이오프 2차전(잠실) 7회말에 발생한 삼성의 무모한(?) 투수교체 시도가 불발로 끝난 해프닝을 두고 하는 말이다. 경기 흐름상 워낙 긴박했던 순간이어서 모든 언론이 이 상황을 규칙적 또는 정황적으로 접근, 다투어 상세히 보도한 일이라 더 깊이 파고들 것은 별반 없어 보이지만, 정해진 관련 규칙에 따라 이러 저러하게 처리된다는 결과적 사실 뒤에 숨은 이유에 대해서도 한번쯤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당시 상황을 다시 한번 복기해보기로 한다. 삼성이 4-3으로 역전을 시키고 난 뒤 곧바로 돌아선 7회말, 투수 조진호(삼성)가 1사 후 7번 이대수(두산)에게 우익선상 2루타를 맞아 동점 위기에 몰리자 삼성의 조계현 투수코치가 마운드로 향했다. 조진호와 짧은 몇 마디의 얘기를 나누고 덕 아웃으로 곧바로 돌아온 조계현 코치는 8번타자 채상병이 타석에 서고 막 경기가 속개되려던 순간, 다시 덕 아웃을 박차고 나와 마운드 쪽으로 급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조진호의 뒤를 이을 구원투수의 몸이 다 풀렸다는 사실에 아무래도 투수를 바꾸는 게 낫겠다 싶었던 선동렬감독의 판단과 결정이 조계현 코치에게 재차 전달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운드를 향하던 조계현 코치의 발걸음은 이내 심판원의 제지를 받아야 했다. 채상병 타석에서 이미 한번 마운드에 올라갔다 내려온 상태라 조진호는 상대팀의 타자 채상병이 대타로 바뀌지 않는 한, 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야구규칙 8.06에 나와 있는 감독, 코치의 ‘마운드 행’ 제한규정에 의하면 같은 이닝, 같은 투수, 같은 타자일 때 감독은 어떠한 이유로든 재차 마운드에 갈 수 없도록 못을 박아 놓고 있다. 만일 심판원이 갈 수 없다고 경고성 제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마운드에 갔다면 그 감독은 경기에서 퇴장되며, 투수는 당시의 타자가 아웃 되거나 주자가 될 때까지 투구한 후 물러나야 한다. 따라서 조계현 코치가 심판원의 제지를 무시하고 마운드까지 갔다면 덕 아웃에 있는 선동렬 감독은 경기장에서 퇴장조치를 당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지를 뻗어 조계현 코치가 마운드에 오르려 했던 그 순간에 심판원의 아무런 제지가 없었다 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이 때는 규칙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한 심판원에게 페널티가 주어지게 되겠지만. 그 점에서는 어쩌면 삼성보다 심판원의 처지가 더 급박했던 상황으로 볼 수도 있겠다. 이런 질문도 있었다. 조계현 코치가 마운드에 갔는데 왜 덕 아웃에 있는 감독을 퇴장시키느냐고. 답은 간단하다. 물론 규칙에 감독을 퇴장시키도록 명문화 되어 있기도 하지만, 코치가 마운드에 올라가는 것은 사실 감독 대신 올라가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감독이나 코치가 마운드에 올라간 횟수의 계산에 있어 그 기준이 무엇이냐의 문제다. 통상적으로는 감독이나 코치가 마운드로 향한 후, 1루나 3루의 파울라인을 넘게 되면 마운드에 한번 간 것으로 계산된다. 그래서 조계현 코치가 파울라인을 넘어가기 전에 부리나케 심판원이 달려와 제지를 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규칙 원문에는 마운드를 기준으로 한 18피트 둘레의 원형 장소를 다녀가야 한번 간 것으로 계산하도록 하고 있지만, 국내프로야구는 이를 파울라인으로 대체하고 있다) 아주 짖꿎은 질문이 여기에 하나 따라 붙었다. 조계현 투수코치가 제지하려는 심판원보다 동작이 빨라 파울라인을 이미 한두 발 넘어간 상태라면 조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었다. 원칙대로 파울라인을 넘었으니까 두 번 간 것으로 간주해 감독을 퇴장시킬 것인가가 질문의 골자였다. 이런 경우라면 라인을 넘고 안넘고의 문제보다는 심판원의 경고성 제지를 감독이나 코치가 이해하고 수긍했느냐, 아니면 거부했느냐의 문제로 가름지어질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하겠다. 이는 심판원의 지적대로 경기운영상의 묘가 필요한 부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동일 이닝, 동일 투수, 동일 타자일 때 감독이 마운드에 연거푸 갈 수 없도록 만들어 놓은 규칙 8.06의 제정 이유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우선 일반적으로 구원투수가 새로 등판한 경우를 연상해보면 그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보통 새로 등판한 구원투수는 한 타자를 상대하거나 이닝이 끝나야만 마운드에서 물러날 수 있다. 간혹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라온 구원투수가 주자를 견제구로 잡아낸 후, 이젠 됐다 싶어 마운드를 다른 투수에게 넘기려는 경우를 보는데 이는 착각이다. 이닝이 끝나지 않는 한, 반드시 한 타자를 상대해 아웃 시키거나 진루를 시킨 후에라야 투수교체가 가능하다. 이런 맥락으로 볼 때, 조계현 코치가 조진호에게 2루타를 맞자 마자 마운드에 올라갔다 내려온 것은, 비록 투수를 바꾸지 않았더라도 조진호의 신분이 새로 등판한 구원투수로 간주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진호는 당시 상대해야 할 타자 채상병이 대타로 바뀌지 않는 한, 절대로 교체가 불가능한 투수였던 것이다. (결국 투수교체 시기를 놓친 삼성은 채상병에게 동점 적시타를 맞고 말았다) 일부에서는 조진호가 공 1개를 던지고 나면 교체가 가능하지 않느냐고 물어오기도 했지만, 조진호의 투구수와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다. 이 규칙을 집어넣은 또 다른 이유 하나는 경기 중 아무 때고 감독 또는 코치가 마운드를 들락날락 함으로써 늘어지는 경기진행의 폐해를 막아보려는 목적이 담겨 있기도 하다. 이처럼 야구규칙은 대단히 복잡하면서도 복합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선동렬 감독과 조계현 코치가 누구인가? 투수에 관한 일이라면 현역 때부터 그 누구보다도 많은 경험과 풍부한 노하우를 갖고 있는 감독과 코치다. 그러한 사람들도 긴박한 상황아래서는 규칙을 헷갈려 할 만큼 야구규칙의 구석구석에는 숨은 함정들이 수없이 도사리고 있다. 이번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나온 삼성의 투수교체 실기(失機)에 따른 해프닝도 그 중의 하나일 뿐이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