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민의 EPL 위클리 리뷰] '병풍효과' 노리는 감독들의 입담
OSEN 기자
발행 2008.10.24 10: 16

OSEN이 2007~2008시즌까지 영국 런던서 스포츠서울 축구 통신원으로 활동했던 홍재민 해외축구 컬럼니스트의 연재물을 새로이 선보입니다. 런던서 축구 산업을 전공한 홍재민 씨는 풍부한 현장 취재 경험과 축구에 대한 지식을 살려 지난 한 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이야기를 전해드릴 예정입니다.[편집자주] 소개팅에 나갈 때 자기보다 외모, 조건 등에서 떨어지는 친구를 데려나가 ‘병풍’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병풍으로 이용되는 친구의 기분은 별로겠지만, 병풍을 잘 이용하면 자신의 매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물론 최소한의 매력은 있어야 한다). 지난 주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이하 EPL)에서는 이런 ‘병풍효과’를 노리는 감독들의 입담이 돋보였다. 승격팀 웨스트 브롬위치를 상대로 4-0 대승을 거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경기 후 이날 1골 2어시스트로 대활약한 웨인 루니를 극찬했다. 퍼거슨 감독이 루니의 병풍으로 내세운 건 잉글랜드의 레전드 게리 리네커였다. 퍼거슨 감독은 “게리 리네커는 경기 내내 아무 것도 안 하면서도 골을 곧잘 뽑아냈다. 그러나 루니는 그런 게으른 타입이 아니다. 정열적으로 뛰어다니고 팀을 위해 희생한다”라고 말한 것.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득점왕, 잉글랜드 대표팀 역대 득점 2위에 빛나는 잉글랜드 레전드 리네커는 골문 앞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쉽게 골을 넣는 재주가 특별했다. 그러나 루니의 열정적인 플레잉 스타일을 강조하기 위해 전혀 다른 스타일의 리네커를 병풍으로 사용한 것이다. 퍼거슨 감독의 카리스마를 그대로 물려 받은 맨유 출신 로이 킨(선덜랜드) 감독 역시 자신의 쿨함을 강조하기 위해 업계 인사 한 사람을 끌어 들였다. 풀햄 원정에서 키에런 리처드슨의 프리킥 골이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무효 처리되면서 억울한 0-0 무승부를 거두었지만 킨은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킨은 “조 커니어처럼 소리 지르고 싶진 않다. 잘못된 판정이지만, 오심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데 시간과 힘을 쓰고 싶진 않다”라고 쿨한 모습을 보였다. 킨의 입에 오른 커니어는 현재 뉴캐슬의 임시 감독으로 3주 전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질문하는 취재진들을 향해 방송불가 욕설을 무려 52번이나 내뱉는 대형사고를 친 인물이다. 킨 감독 뿐만 아니라 어떤 감독이라도 병풍으로 쓰고 싶어할 만한 말썽꾸러기다. 한편 리버풀-위건 경기는 똑 같은 일에 대해 승장과 패장의 의견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아미르 자키의 두 골에 힘입은 위건이 리버풀 원정에서 2-1로 앞서갔다. 그러나 후반 30분 위건의 발렌시아가 퇴장 당하면서 분위기가 급변, 내리 두 골을 뽑아낸 리버풀의 3-2 역전승으로 마무리되었다. 승장 라파엘 베니테스는 “발렌시아의 퇴장과 전혀 상관 없었다. 우린 상대를 계속 몰아붙였고 많은 득점 기회를 만들면서 경기를 지배했기 때문에 승리했다”라고 승리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패장 스티브 브루스는 달랐다. 그는 “우린 승리를 도둑 맞았다”라고 분노한 뒤, “그 퇴장이 경기를 갈랐다. 주심의 판정은 존경을 받아야 하지만, 오늘은 그 ‘존경’을 찾아볼 수 없었다”라며 불만을 터트렸다. 포츠머스의 해리 레드냅 감독은 강호 아스턴 빌라 원정에서 0-0 무승부라는 만족스러운 결과에 불구하고 머리 끝까지 화가 치솟았다. 경기 중 관중석에서 날아온 50펜스 동전에 부심이 머리를 맞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레드냅 감독은 “분명히 나를 맞히려고 던진 것이다. 누가 그랬든 그 멍청이에게 평생토록 축구 관전 금지 조치가 내려져야 한다”라며 핏대를 세웠다. 당연한 분노인 듯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축구인(선수, 감독 등)이 공식 인터뷰에서 팬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언행은 매우 위험하다. 1999년 잉글랜드 대표팀의 글렌 호들 감독은 장애인 비하 인터뷰가 문제가 되어 감독직을 물러나야 했다. 해외축구 칼럼니스트 zaemini@hotmail.com 기자회견 중인 라파엘 베니테스 리버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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