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플레이오프 MVP, 독이 든 성배(聖杯)?
OSEN 기자
발행 2008.10.26 08: 53

두산이 삼성을 4승 2패로 누르고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을 결정짓던 날, 플레이오프 6경기 내내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헤집고 다녔던 이종욱(28,두산) 역시도 개인적으로 2년 연속 플레이오프 MVP에 선정되는 곱절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플레이오프가 5전 3선승제로 열렸던 지난 2007년에는 한화를 상대로 두산이 파죽의 3연승을 거두는 동안 무려 5할4푼5리(11타수 6안타)라는 초고타율을 기록, 팀이 대망의 한국시리즈 무대로 나가는데 있어 일등공신으로 자리매김 했던 선수도 바로 이종욱이었다.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보여준 톱 타자 이종욱의 활약은 실로 눈부실 정도였다. 우선 5할1푼7리의 타율(29타수 15안타)도 대단했지만 특히나 6경기를 치르는 동안 매 경기 1회 첫 타자로 나와 다섯 번이나 안타를 때려냈다는 사실은 겉으로 드러난 기록적 수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팀이 갖게 될 자신감과 그에 반하는 상대의 심리적 압박감등을 고려한다면 대단히 의미 있는 결과였다. 그런데 플레이오프 MVP인 이종욱의 기록을 이리저리 들추던 눈이 슬며시 한국시리즈를 향하자 뭔가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작년 플레이오프에서 상한가를 기록했던 이종욱의 주가가 한국시리즈에서는 되레 바닥을 치고 있었다는 과거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이종욱의 2007년, SK를 상대로 거둔 한국시리즈 성적표는 무척이나 단촐하다. 27타수 5안타로 타율 1할8푼5리. 1회 톱 타자로 나와 출루에 성공한 것도 달랑 1차전 한 경기뿐이었다. 시간을 좀더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했다. 2006년 플레이오프 MVP는 한화의 김태균이다. 한화는 김태균의 선 굵은 활약(2홈런 6타점)에 힘입어 플레이오프에서 현대를 누르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할 수 있었지만, 종국에는 삼성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그 해 김태균의 한국시리즈 타율은 2할3푼1리(26타수 6안타)였다. 2004년 플레이오프의 돌풍은 삼성의 로페즈였다. 두산을 상대로 13타수 6안타, 2홈런 6타점을 몰아치며 삼성을 한국시리즈로 끌어 올렸지만, 정작 정규리그 1위 팀 현대와의 한국시리즈에서는 치켜들었던 꼬리를 바로 내려야 했다. 29타수 3안타, 타율 1할3리. 이것이 플레이오프 MVP 로페즈의 성적표였다. 2003년, SK의 이진영 역시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거꾸로 말하자면 선례를 남겼다는 말도 가능하다. 그 해 KIA를 상대로 플레이오프에서 이진영이 기록한 성적은 8할의 타율(10타수 8안타)이었다. 하지만 이진영을 빚어냈던 ‘8할 타율’은 한국시리즈에서는 2할대로 곤두박질쳐야 했다. 가던 김에 좀더 올라가 본다. 2002년 LG의 박용택은 2승 2패로 균형을 이루던 플레이오프 KIA와의 최종 5차전에서 2개의 홈런을 작렬시키며 LG의 한국시리즈 행을 결정지었다. 이날 보여준 강렬한 임팩트 덕분에 박용택은 플레이오프 MVP에 선정(타율 .350, 20타수 7안타) 되었지만, 역시 한국시리즈로 자리를 옮기자 23타수 3안타(타율 .130)의 빈타에 허덕이다 그대로 주저 앉아버렸다. 2000년, LG와의 플레이오프 후반(4, 5, 6차전)에 결정적 홈런 3방을 연일 터뜨리며 화려하게 MVP 단상에 올랐던 심정수도 현대와의 한국시리즈에서는 2할3푼1리의 타율로 만족해야 했다. 열거한 사례가 2000년 이후 작년(2007)까지 플레이오프 MVP에 선정되었던 선수들의 돌아본 한국시리즈 성적이다. 위에서 빠진 2005년의 전상렬(두산)과 2001년의 안경현(두산) 역시 MVP에 선정되었던 플레이오프 성적보다 한국시리즈 성적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다만 한국시리즈에서 거둔 성적이 플레이오프 때보다 수치가 낮아지기는 했지만, 나쁜 성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라 구체적인 비교는 하지 않았다. 우연의 일치라고 그저 지나치기엔 너무 한결 같다. 2001년을 제외(정규리그 3위팀 두산이 우승)하곤 플레이오프를 거쳐 올라온 팀과 플레이오프 MVP를 수상한 선수의 눈물이 늘 함께 했다. 플레이오프 MVP 선정을 처음 시작한 해는 1995년이다. 그 이전에는 한국시리즈에 한해서 기자단 투표에 의한 MVP 선정이 이루어져 왔다. 물론 선수가 최상급의 결과를 연속해서 도출해내기란 무척 힘든 일이다. 기다리고 있는 다음 상대도 한창 잘 나가고 있는 선수를 먼저 경계하려 드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다. 거기에 또 하나의 이유를 굳이 덧붙이자면 마음가짐에서 오는 차이도 무시할 수는 없다. 욕심을 내지 않고 마음을 비웠을 때와 기대치가 높아짐에 따라 달라붙는 부담감, 그리고 욕심이라는 부푼 꿈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때의 차이 말이다. 두산이 다시 한번 한국시리즈 패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상대팀은 작년과 똑같은 SK 와이번스. 팀으로서도 2연승 후 4연패로 내몰렸던 아픈 기억을 곧바로 설욕할 수 있는 기회다. 이는 1986~87년의 해태와 삼성, 1988~89년 해태와 빙그레의 리턴 매치 이후 통산 3번째 이루어진 연이은 리턴 매치이기도 하다. 앞선 두 차례 모두 해태가 일방적으로 쓸어 담아 설욕이 이루어진 적은 아직 없다. 그리고 여기 또 하나를 주목한다. 플레이오프 MVP 이종욱의 한국시리즈 성적과 와신상담, 설욕을. 과거 전례에 또 하나의 같은 사례를 추가하게 될지, 아니면 일찍이 없었던 ‘설욕’이라는 단어를 한국시리즈 역사에 새로이 써넣게 될수 있을지. 여러모로 기다려지는 2008 한국시리즈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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