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삶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 드라마 시작부터 끝까지 천국과 지옥 사이를 끊임 없이 왕복하며 시청자들의 애를 태운다. 가끔씩 거짓말 같은 가족관계 설정도 단골 양념이다. 지난 26일 전격적으로 토튼햄의 신임 감독에 취임, 깜짝쇼의 주인공이 된 해리 레드냅(60)의 인생 경로는 승격 영웅, 차 사고, 뇌물 수수 혐의, FA컵 우승, 그리고 화려한 가족관계까지 한국 드라마 못지 않은 드라마로 가득차 있다. 우선 유별난 가족관계다. 그의 아들 제이미 레드냅은 리버풀과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활약했던 얼짱 스타다. 또한 아내의 쌍둥이 형제 팻은 웨스트햄 레전드인 프랑크 람파드 시니어와 결혼해 아들 프랑크 람파드(첼시)를 낳았다. 레드냅은 람파드의 이모부인 셈이다. 1983년 본머스(3부)에서 감독으로 데뷔한 레드냅은 팀을 구단 역사상 최초로 2부리그에 올려 놓으며 영웅으로 떠오른다. 성공적인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고 있던 1990년 그에게 첫 번째 재앙이 찾아왔다. 이탈리아 월드컵 경기를 참관하던 중 차 사고로 인해 막역지우였던 브라이언 타일러가 목숨을 잃었다. 총 5명의 사망자를 낸 대형사고에서 레드냅은 극적으로 생존했지만 후유증으로 현재 그는 냄새를 맡을 수 없다. 이후 1994년 레드냅은 웨스트햄의 지휘봉을 잡게 되는데 이 시기에 아카데미에서 리오 퍼디난드, 마이클 캐릭, 조 콜, 프랑크 람파드 등 스타플레이어들이 한꺼번에 배출되게 된다. 1998년에는 인터토토컵을 경유해 UEFA컵에 나서는 등 웨스트햄 팬들에게 명문 부활의 희망을 안겨줬다. 2001년 기술고문으로 포츠머스(2부)에 합류한 레드냅은 2002년 3월 감독직을 승계 받는다. 당시 2~4부리그 클럽들은 중계 주관방송사의 부도사태로 재정적으로 큰 곤란에 빠져있던 상태였다. 그러나 레드냅은 지휘봉을 잡은 지 1년 만인 2003년 5월 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팀을 프리미어리그로 승격시킨다. 너무 잘 나간다 싶던 무렵 또다시 우리 주인공에게 문제가 발생한다. 2004년 겨울 구단주가 새로 영입한 기술고문과 의견 충돌 끝에 팀을 떠난 레드냅은 믿거나 말거나 포츠머스의 최대 앙숙 사우스햄프턴의 감독으로 자리를 옮기며 포츠머스 팬들에게 충격을 던졌다. 사우스햄프턴에서 강등의 아픔을 맛본 레드냅은 1년 만인 2005년 겨울 다시 포츠머스로 복귀한다. 강등 위기에 몰린 구단주가 의견 충돌을 벌였던 기술고문을 해고하고 레드냅을 다시 데려온 것이다. 두 번째 지휘봉을 잡은 레드냅은 2005~2006시즌 막판 10경기에서 승점 20점을 쓸어 담으며 총 승점 38점으로 기적적으로 리그 잔류에 성공한다. 이 시점에서 호사다마 드라마 패턴의 재등장. 2006년 가을, 선수 이적 비리를 파헤친 BBC의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레드냅을 걸고 넘어졌다. 타 클럽 선수에 대한 사전 접촉 및 뇌물 수수를 암시하는 레드냅의 대화 내용이 프로그램 측 정보원의 몰래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긴 것이다. 에이전트 비리 진상규명위원회 출두, 가택압수수색 등의 수모를 당한 것은 물론 상대팀 팬들로부터 ‘범죄자’, ‘사기꾼’ 등의 폭언을 들어야 했다. 그는 결국 무혐의 처리되었다. 레드냅 드라마의 최고 클라이맥스는 2008년 5월에 이루어졌다. 제127회 FA컵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쥔 것이다. 8강전에서는 적지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꺾었다. 포츠머스는 1939년 이 대회에서 우승한 이래 무려 69년 만에 기쁨을 맛보았다. 특히 1995년 조 로일(에버튼) 이후 13년 만에 잉글랜드 국적의 FA컵 우승 감독을 배출한 잉글랜드인들의 기쁨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본머스-웨스트햄-포츠머스-사우스햄프턴-포츠머스로 이어진 그의 드라마는 지난 주말을 기해 시즌6에 돌입했다. 런던 올-로케, 리그 최하위, 전임자들의 싹쓸이 해고, 아스널-리버풀 2연전 등 극적 재미를 더해주는 억지스러운(?) 설정이 이루어진 상태다. 레드냅의 새로운 시즌6를 기대해보자. 채널 고정. 해외축구 칼럼니스트 zaemini@hotmail.com 팬들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주는 레드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