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현(33. SK 와이번스)의 방망이가 바람을 갈랐고, 중심에 제대로 걸린 타구는 중견수 이종욱(28. 두산 베어스)을 향해 뻗어나갔다. 잘 맞은 타구였지만 빠른 발을 가진 이종욱의 수비범위가 워낙 넓은 터라 혹시 잡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는 타구였다. 담장 바로 아래까지 쫓아간 이종욱은 있는 힘을 다해 점프를 했다. 하지만 타구는 뻗은 글러브 위를 살짝 비켜 담장 너머로 떨어졌다. SK와 두산의 2008 한국시리즈 1차전(문학)이 열렸던 10월 26일의 일이다. 이 홈런으로 김재현은 작년(2007) 한국시리즈 최종전이던 6차전에 이어 한국시리즈에서 2경기 연속 홈런을 쳐낸 선수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고, 다음날 벌어진 2차전에서 또다시 홈런을 때려냄으로써 한국시리즈 개인 연속경기 홈런기록(종전 2경기)을 ‘3’으로 바꿔놓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종욱의 글러브 뒤로 잠깐 사라졌다 튀어 오른 김재현의 타구가 홈런으로 확인되던 그 순간, 필자는 김재현의 홈런보다 이종욱의 담장을 이용한 수비행위에 더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2008시즌부터 달리 적용되고 있었던 홈런에 관한 규칙 때문이었다.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차차 설명하기로 하고, 주변 얘기로부터 접근해보도록 한다. 미국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나온 진기명기를 보다 보면 외야수가 홈런성 타구를 잡은 여세로 담장을 뚫고 나가거나, 담장을 무너뜨리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다. 이는 선수들의 안전을 고려해 펜스를 천막 같은 것으로 둘러놓아 벌어지는 일들이다. 이럴 경우, 사후 조치는 어떻게 될까? 한마디로 타자 아웃이다. 반면, 한국은 담장 자체를 아주 튼튼하게 그것도 철조망 등으로 사람의 키보다도 훨씬 더 높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외야수가 홈런성 타구를 잡고 담장을 부수거나 담장 밖으로 넘어가는 일 자체를 상상할 수 없는 환경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담장이 무너지거나 외야수가 담장 밖으로 넘어가버리는 등의 해프닝은 남의 나라 일로 생각하고 있는 터다. 그러나 만에 하나, 실제 담장 위에 몸을 걸친 상태로 홈런성 타구를 잡아낸 외야수가 그 여파로 인해 외야 담장 밖으로 몸이 훌러덩 넘어가버렸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나라에서는 타자의 기록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년(2007)까지는 홈런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홈런이 아니라 아웃이다. 메이저리그 처럼. 그러면 이 규칙은 소리소문 없이 왜 바뀌게 된 것일까? 지난 5월 29일, 잠실에서 벌어진 두산과 KIA 타이거즈의 경기에서 두산의 1루수 오재원(23)은 3회초 수비에서 차일목(KIA)이 친 파울플라이 타구를 잡기 위해 달려들다 두산 덕아웃 주위에 세워놓은 철책너머로 몸이 넘어가버린 일이 있었다. 당시 그 타구를 잡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오재원이 파울플라이 타구를 잡은 상태에서 철책을 넘어갔다고 가정할 때, 차일목은 아웃이 된다. 야구규칙 7.04의 안전진루권 조항에 따르면 야수가 플라이볼을 잡은 뒤에 벤치나 스탠드 안으로 들어가 넘어진 경우, 타자는 아웃으로 처리된다. (단, 루상에 주자가 있었다면 주자들은 1개 루의 안전진루권을 얻게 된다) 홈런성 타구를 외야수가 잡았을 때도 문구에 나와 있는 그대로 이 규칙을 적용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겠지만, 과거(~2007년까지)에는 홈런에 관해서는 예외적인 잣대를 가지고 해석해왔다. 외야수가 담장을 짚거나 차고 올라 플라이 타구를 잡아냈다 하더라도 이후 몸이 담장 밖으로 공과 함께 넘어가버린 경우에는 그대로 홈런으로 간주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아무리 홈런성이라 하더라도 파울플라이볼이 덕아웃 안에서 잡혔을 경우와 동일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말이다. 담장을 넘어가는 타구와 파울플라이는 성격상 천양지차(天壤之差)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똑 같은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한편, 대전구장처럼 기존 담장 위에 철망으로 이중담장을 설치한 구장에서 타구가 기존 담장 윗부분을 맞고 이상한 굴절 형태로 철조망을 타고 넘어갔을 때에도 과거에는 홈런으로 인정 받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어림없는 일이다. 2006년 6월 6일, 심광호(30. 당시 한화 이글스)가 SK전(대전)에서 기록했던 홈런이 바로 이와 같은 형태로 담장을 넘어간 경우지만, 이러한 로컬 룰에 의한 홈런은 이제는 지나간 과거 속의 역사로 남게 되었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온라인으로 받아보는 스포츠 신문, 디지털 무가지 OSEN Fun&Fun, 매일 3판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