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프로야구를 주도했던 전반적 현상 가운데 대표적인 흐름 한가지를 꼽아보라면 ‘뛰는 야구’를 들 수 있다. 8개 구단 전체가 기록한 시즌 총 도루수가 1000개에 육박하는 987개. 전년도인 2007년의 764도루보다 무려 200개 이상이 증가한 수치다. 1991년에 기록된 시즌 최고기록 1014에는 27개가 부족한 숫자지만, 2002년부터 적용되기 시작한 규칙 ‘무관심 도루(진루)’ 적용 건 ‘59개’를 합치면 1046개로 사실상 역대 시즌 최다기록이다. 이러한 현상을 앞에서 끌어온 대표적인 두 팀은 SK와 두산. 2년 연속 한국시리즈에서 만나 자웅을 겨룬 두 팀의 최근 3년간(2006~2008) 팀 도루 숫자를 보면 가히 폭주족이라고 할 만하다. 두산이 132-161-189개의 순이고, SK는 117-136-170개를 각각 기록했다. 2005년부터 치자면 양팀은 4년 연속 100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해오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뜀박질 야구가 2008시즌에는 삼성(59도루)을 제외한 전 구단으로 유행처럼 번져 나갔다. 롯데가 김주찬, 조성환 등을 앞세워 이에 동참(133도루)했고, 평소 뛰는 야구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한화까지 97개의 도루를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갑자기 전에 없던 발 빠른 선수들이 팀마다 대폭 늘어났기 때문일까?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늘 뛰는 야구에 앞장섰던 선수들은 그 선수가 그 선수들이다. 2007년과 2008년의 도루 10걸을 비교해봐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그렇다면 도루수가 폭증한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이대형(LG)과 이종욱(두산)은 2년 연속으로 1,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도루 10걸의 세부내용을 뜯어보면 2007년과 2008년은 분명 차이가 있다. 인걸은 그대로였지만 도루 빈도수는 상당히 높아져 있다. 일단 10걸의 커트라인이 20에서 24로 상향조정 됐다. 30개 이상을 기록한 선수 수도 4명에서 6명으로 늘었다. 이는 팀 전반에 걸쳐 뛸 기회가 전과 비교해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린 라이트(green light)’ (별도의 사인없이 스스로 알아서 뛸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 선수)가 허용된 선수가 아니라면 대개의 경우, 도루는 사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작전의 산물이다. 그러한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는 ‘도루’라는 무기를 빈번하게 꺼내 들었다는 얘기는 감독이나 코칭스태프의 의도가 전과 비교해 상당히 공격적인 성향으로 바뀌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흔히 안전판으로 생각하고 있는 희생번트를 이용한 주자진루보다 위험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훔치기 기술을 선택한 까닭은 야구적으로 보면 아주 간단한 원리다. 아웃카운트를 소진하지 않고 주자를 진루시킬 수 있다는 것과 도루에 대비한 상대의 수비과정에서 뜻하지 않았던 어부지리까지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바로 그 이유다. 악송구가 일어날 수도 있고, 내야수가 주자를 따라가다 보니 내야수비 공간이 넓어진다는 이점도 따른다. 하지만 이 정도는 누구나 다 아는 상식. 그보다는 뛰는 야구로 프로야구계를 평정한 SK와 두산의 성적이 연달아 상종가를 치고 있다는 점이 강한 자극제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야구색깔을 어떻게 입힐까를 놓고 겨우내 고민하는 것은 하나의 통과의례다. 따라서 정신 없이 뛰어대며 혼을 빼놓는 SK나 두산의 야구를 상대하며 곤욕을 치러본 상대팀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묘수 찾기에 골몰하게 된다. (문득 두산과의 2008 플레이오프에서 실책 후, 망연자실 서 있다가 한꺼번에 2개의 실책을 뒤집어 쓴 삼성의 박진만 생각이 난다) 1990년대 후반 한국프로농구를 평정했던 현대의 외국인선수 ‘조니 맥도웰’을 상대할 만한 선수 찾기에 여러 해 동안 골몰했던 여타 프로농구 팀들의 고민이 그랬다. 발 빠른 야구를 쉽게 이기는 방법은 하나다. 상대가 아무리 날고 긴다 하더라도 무시무시한 장타력을 갖고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황새걸음을 참새가 쫓아갈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한국프로야구는 지금 거포부재의 시대다. 그만그만한 준 거포는 여럿 있지만, 야구계를 들었다 놨다 할 만큼의 이슈를 만들어낼 만한 대형타자는 이승엽 이후 가뭄 상태다. 그렇다면 결론은 상대의 장점을 배우는 방법밖에는 없다. 또한 팀 타력이 미덥지 못할 때에도 감독은 뛰는 야구를 선호한다. 발에는 슬럼프가 없기 때문이다. 같은 실력이면 기동력이 좀더 나은 선수를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전 면에서 활용가치가 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오재원은 이런 면에서 2008년판 두산의 신데렐라였다) 여기에 사상 최초의 외국인 감독, 제리 로이스터(롯데)의 등장도 한 몫을 했다. 롯데 역시 최근 몇 년간 도루 수에 있어서 바닥권을 맴돌던 팀이었다. 하지만 믿는 야구,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야구를 들고 나온 로이스터 감독의 기치 아래, 롯데 야구 또한 뛰는 야구로 화려한 변신을 했다. 1992년 롯데가 마지막으로 우승했을 당시에도 롯데는 ‘대도’ 전준호를 필두로 이종운, 김응국 등의 발을 빌려 뛰는 야구의 힘을 보여준 바가 있다. 그 해에 롯데가 기록한 총 홈런 수는 고작 68개. 8개 구단 중 최하위였다. 히어로즈의 일본인 마무리 투수 다카쓰 신고(40)는 한국야구의 ‘뛰는 야구’ 현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한마디로 ‘파워 풀’ 하다고.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서도 뛰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고 했다.(무관심 도루도 그래서 잔뜩 생겨났지만).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금메달도 이러한 역동적인 야구가 근간이 되어주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한시도 가만히 머물지 못하는 야구. 지금 ‘한국야구’라는 제목으로 그림을 그린다면 바탕색은 도도히 흐르는 강물과 같은 완연한 푸른 빛 일색이 아닐까 싶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