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처음으로 실시했던 이닝 무제한 경기, 일명 ‘끝장승부’가 1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 무승부 경기가 생길 때마다 끝까지 승부를 내주기를 바라는 팬들의 오랜 바람을 담아 다소 무리라는 일각의 염려를 뒤로하고 야심 차게 출발했던 끝장승부였는데, 결국 단명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한 언론사가 실시했던 끝장승부 지속여부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도 계속돼야 한다는 의견에 과반수가 넘는 팬들이 지지의사를 보냈던 점을 감안해 볼 때, 이번 결정에 대해 아쉬움을 갖는 팬들이 상당히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 2008 프로야구에서 가장 인상적인 경기가 어떤 경기냐고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연장 18회에서 끝이 난 두산과 한화의 잠실경기(9월 3일)를 꼽지 않을까 싶다. 바로 프로야구 역사에서 가장 긴 끝장승부이자, 무제한 이닝 제도가 적용된 유일한 경기였기 때문이다. 요즘 뜨고 있는 어느 오락 프로그램의 타이틀 명처럼 ‘1박2일’간 치러졌던 이 경기는 5시간 51분(종전 5시간 45분)이라는 길고 긴 소요시간으로 새로운 역대 최장시간 경기로도 등재된 바 있다. 작년 시즌 1박2일로 경기가 치러졌던 경우는 모두 두 차례였지만, 프로야구 사상 가장 늦은 시간인 다음날 새벽 0시 49분에 종료된 6월 12일의 히어로즈와 KIA의 목동경기는 우천으로 경기가 장시간 중단되었다가 다시 재개되는 바람에 떠밀려 자정을 넘긴 것(14회에서 종료)으로, 끝장승부 도입의 여파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또한 1982~2002년 사이에 정규리그 연장전을 이미 15회까지 다수(12차례) 치른 바 있고, 이후 연장전이 12회로 줄어들긴 했지만 시간제한 없이 계속 경기를 치러야 하는 제도 역시 2003년과 2005년 이후 지속적으로 실시해왔던 것이기에 달리 새로울 것도 없다. 경기를 연장 12회로 자른다 해도 마냥 늘어지면 자정을 넘기는 일이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끝장승부 제도가 완벽하게 적용된 유일한 사례는 9월 3일의 두산과 한화 전, 단 한 경기뿐이었다. 그러면 이처럼 1년을 통틀어 단 한번 밖에 일어나지 않았던 끝장승부를 놓고 시즌이 채 끝나기도 전부터 존폐를 놓고 여론이 들썩였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리나라의 선수 층이 무제한 이닝을 치를 정도로 두텁지 않다는 점이나 다음날 경기력에 미칠 악영향, 투수를 위시한 선수들의 피로도가 누적되어 부상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커진다는 점 등은 이미 끝장승부의 폐해로 거론되었던 이론들이다. 이와 같은 현장의 목소리는 분명 근거가 있는 주장들이다.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선수 층, 특히 전력의 절대치를 차지하는 투수층의 분포도는 상당히 얇은 편이다. 완투능력을 가진 투수의 절대수가 태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 보니 선발로 나왔다 하더라도 채 5,6 회를 넘기지 못하고 조기 강판을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후 경기를 끌어가는 일이 벅차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 기나긴 승부 한번에 팀의 투수로테이션 사이클 전체가 엉망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여기에 마지막 이동일 날, 장시간에 걸친 연장전을 치르게 되면 체력부담은 배가 된다. 이동거리가 먼 곳에서 다음 경기가 예정되어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0시 49분에 목동 홈경기를 마친 히어로즈가 바로 다음경기 예정지인 부산에 도착한 시간이 해가 뜬 아침 6시를 훌쩍 넘긴 시각이었다는 것이 화제에 오른바 있다) 마냥 늘어지는 경기를 지켜봐야 하는 관중의 처지에서도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실제로 18회가 열렸던 잠실경기를 끝까지 관전하고 돌아간 관중은 입장했던 관중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1000명 내외였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끝장승부를 할 수 없는 절대적인 이유가 되진 못한다) 이처럼 끝장승부라는 제도에 딸린 많은 단점들 때문에 불과 시행 1년 만에 판을 접기로 한 것이지만, 현장의 목소리 그 이면에 내재된 근본적 이유를 들춰보면, 미래를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연장 18회에 접어들어 제구력 난조를 보이는, 지친 기색 역력한 안영명(25. 한화)을 마운드에 그대로 남겨두다 끝내 밀어내기로 경기를 두산에 내주고 만 김인식 감독은 경기 후 이런 말을 남겼다. “앞으로 이 경기가 언제까지 갈지 모르기 때문에 안영명을 마운드에서 내리기가 어려웠다”라고. 한화는 당시 안영명을 대신할 투수 한 명이 남아있는 상태였지만 김인식 감독은 마지막 카드를 선뜻 꺼내들 수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 점이다. 끝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 말이다. 망망대해에서 언제 나타날 지 모르는 육지를 마냥 기다리는 표류인의 심정 같다고나 할까. 선수를 운용하는 감독으로선 두 눈을 가린 꼴이다. 언제가 끝일 지를 안다면 심리적으로 불안하진 않다. 지루할 순 있어도. 이제 끝장승부를 야구장에서 또 다시 만나보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결국 2008년 9월 3일, 연장 18회를 현장에서 두 눈으로 직접 지켜보았던 사람들의 기억은 그들만의 특별한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