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프로야구에 편입한 승부치기, 넌 누구?
OSEN 기자
발행 2009.02.06 16: 38

이젠 언제 들어도 귀에 전혀 거슬리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운 하나의 야구 용어가 되어 버린 ‘승부치기’. 그렇다 해도 승부치기가 갖고 있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프로야구로는 쉽게 들어올 수 없는 친구라 여기고 있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상당히 이른 시점에 그 얼굴을 국내 프로야구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올림픽이나 WBC와 같은 규모가 큰 국제대회에서 승부치기를 연이어 채택, 도입하고 있는 현 시대의 조류에 발맞춰 그에 대한 대비와 적응이 일정부분 필요하다는 현장의 목소리와 함께 현실인식 차원에서 전격 수용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2009 시범경기와 올스타 전에서 적용될 승부치기에 관한 규정은 아주 간단하다. 9회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했을 경우 10회와 11회 두 이닝에 걸쳐 승부치기를 시행, 승부를 내도록 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만일 승부치기 후에도 점수가 같을 때에는 최종 무승부가 된다. 이쯤에서 승부치기의 규정은 접어두고, 올 시즌 처음으로 프로야구판에 편입이 허용된 승부치기는 과연 누구인지를 알아보는 것이 순서상 먼저 해야 할 일인 듯 싶다. 우선 승부치기라는 용어부터 따져보고 들어가도록 하자. 축구에는 ‘승부차기’라는 것이 있다. 전, 후반과 연장전을 치르고도 승부를 내지 못했을 경우, 양 팀이 5명씩을 차출해 승부차기로 승패를 가리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 착안한 것이 ‘승부치기’라는 용어다. 하지만 ‘승부치기’라는 말은 어딘가 만족스럽지 않아 보인다. 축구처럼 선수 몇 명을 뽑아 홈런레이스를 통해 승부를 낸다면 승부치기라는 표현이 딱 맞겠지만, 루 상에 주자를 미리 내보내는 일만 다를 뿐, 이후 정상적으로 공격과 수비가 계속되는 야구에서는 승부치기라는 표현은 많이 부족한 느낌이다. 국제야구연맹의 규정에 따르면 승부치기는 타이 브레이커(Tie-breaker, 이하 T.B로 통일)로 표현되고 있다. 좁은 의미로는 루 상에 근거 없이 내보내는 주자를 T.B로 규정하고 있지만, T.B라는 것은 야구를 떠나 상당히 광범위한 내용을 가진 말이다. 낱말 해석 그대로 동점 상태를 부수는 규칙이나 제도 또는 행위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좁은 의미로서의 규칙상 T.B의 유래는 테니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테니스에서는 경기가 듀스로 갔을 경우, 일정 포인트를 먼저 따내는 사람이 승리하도록 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것이 타이 브레이크다. 1970년 U.S오픈 대회에서 최초로 채택되었다고 하는데, 도입 이유는 상대선수와 2게임 차 이상으로 벌여야만 세트를 따낼 수 있는 대회규칙 때문에 경기시간이 마냥 늘어지곤 하는 폐단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또한 야구와 비슷한 종목인 소프트볼에도 T.B가 있다. 경기가 10회로 접어들 경우, 9회의 마지막 타자를 2루에 내보내 두고 공격을 시작하는 방식이다. 이 역시 체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어린이나 여자들이 주로 즐기는 종목이라는 사실을 감안, 무한정 늘어날 수 있는 경기시간을 조절해주기 위한 하나의 규칙적 배려를 담고 있는 규칙이다. 올림픽이나 WBC에서 T.B를 실시하려는 이유도 테니스나 소프트볼에 다름 아니다. 일정 시간 안에 대회를 마무리 지어야 하는 경기대회의 특성상 한없이 늘어지는 경기를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T.B였다. 2000년대 초반 일본 사회인야구에서 처음 실시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T.B가 채택된 것도 이러한 예를 벤치 마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아마야구에서도 지금은 T.B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중이다. 10회까지 정규로 경기를 치른 뒤, 승부가 나지 않으면 11회부터는 T.B로 들어간다. 물론 이는 정규의 야구규칙이 아닌 대회요강에 따른 제도로 분류되며, 대회에 따라 T.B의 채택여부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한편 T.B는 경기를 풀어가는 규칙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는 마지막 남은 포스트시즌 진출 티켓 한 장(AL 중부지구)을 놓고 시카고 화이트 삭스와 미네소타 트윈스가 단판 승부를 벌인 적이 있다. 두 팀은 162경기를 모두 치르고도 나란히 88승 74패를 기록, 가외로 한 경기를 더 치러야만 했는데, 이 경기 역시 ‘타이 브레이커 게임’으로 표현된다. 또한 체조에서도 동점자 처리규정이라는 것을 새로 만들어 순위를 갈라놓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 역시 T.B다. T.B는 이처럼 스포츠 전반에 걸쳐 무척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는 동률 또는 동점자 순위가름 방식이다. 프로야구에까지 적용되었다고 해서 생소하다거나 당황스런 제도로 볼 필요는 전혀 없다. T.B가 갖고 있는 특성과 존재이유를 헤아려본다면 상황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납득이 가는 제도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다만, T.B가 풀기 어려운 문제를 모두 해결해주는 만능 해결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걸러낼 필요가 있다. 지금은 비록 T.B가 프로야구에 입성하는데 성공했지만 T.B가 넘어서기 힘든 장벽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특히나 프로야구의 또 하나의 생명 줄이라고 할 수 있는 야구기록에 관한 부분은 T.B와 상충되는 부분이 너무도 많다. T.B의 기록처리 방법 그리고 T.B와 프로야구기록과의 충돌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다루기로 한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2008베이징올림픽 야구 결승전에서 한국이 쿠바를 상대로 3-2로 한점 차 승리를 거둔 직후 한국대표선수들이 그라운드를 돌며 우승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모습. 베이징 올림픽에서 바로 승부치기가 시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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