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늘어지는 경기시간을 줄여보겠다는 취지에서 고안된 ‘타이 브레이커’(Tie-breaker, 이하 T.B)라는 경기 방식은 여러 가지 면에서 꽤 쏠쏠한 쓰임새를 갖고 있는 제도다. 동점이나 동률에 의한 무승부를 해결하고 순위다툼에서 반드시 서열을 가려야 할 필요가 있을 때, T.B 규정은 그 어려움을 쉽게 풀어주는 탈출구 구실을 해오고 있다. 야구가 2008 베이징 올림픽을 끝으로 정식종목에서 제외된 가장 큰 이유도 따지고 보면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는 일정치 않은 경기시간 때문이었다. 국제야구연맹(IBAF)은 이러한 야구의 치명적인 단점을 극복해보고자 T.B 규정을 야구에 접목시키려 시도했고, 그 결과가 지금의 승부치기로 귀결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승부치기가 야구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억지제도라는 거부감이 아직은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야구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경기시간을 일정 틀 안에 맞춰야 하는 현실적인 숙제를 풀어내야 하는데, 그 방법은 현재로선 승부치기 뿐이다. 그러나 일정 기한을 정해놓고 대회가 열리는 올림픽이나 WBC등의 각종 이벤트성 대회와는 달리, 프로야구라는 장기 레이스라는 측면에서 승부치기는 장점보다는 크고 작은 단점들이 더 많이 부각될 수밖에 없는 한계점을 지니고 있는 제도다. 장점이라고 한다면 무승부를 없앨 수 있다는 점과 늘어지는 경기시간을 일정 선에서 잘라낼 수 있다는 정도. 하지만 단점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만큼 도처에서 발견되는데, 바로 승부치기의 돌연변이성 성격 때문이다. 올 시즌 시범경기와 올스타전에서 시행될 승부치기 규정을 먼저 살펴보면, 9회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했을 경우, 10회와 11회에 걸쳐 승부치기를 실시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지금은 대부분의 야구팬들이 익히 아는 바이지만 주자를 1, 2루에 내보내놓고 공격을 시작하게 된다. UFO 같은 승부치기와 프로야구 기록의 대충돌은 바로 여기가 발화점이다. 그 다음 더욱 소화하기 어려운 난제는 10회부터는 9회 종료시점의 타순을 이어받지 않고, 감독 임의대로 타순을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간단한 예로 9회에 4번 이승엽이 삼진으로 물러나면서 이닝이 끝났다고 치자. 그럼에도 이승엽에겐 10회에 선두타자로 버젓이 다시 타석에 들어설 수 있는 부활(?)의 길이 활짝 열린 것이다. 일면 만화와도 같은 승부치기에서 생겨나는 문제점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파고 들어보자. 경기를 손으로 적어나가는 공식기록은 그럭저럭 따라간다 해도 당장 기록입력 프로그램이 소화불능 상태에 걸렸다. 뜬금없이 출루시켜야 하는 주자들도 그렇거니와 9회와 완전히 단절된 새로운 타순의 시작도 문제다. 프로야구 입력 프로그램은 단순한 전자계산기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실제 야구 경기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을 유기적으로 얽어놓은 구조를 갖고 있는 까닭에 아직 효험 뚜렷한 소화제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승부치기가 포함된 경기의 기록처리 방법도 아직은 미정이다. 정규이닝의 성적에 승부치기 이닝의 기록을 일괄적으로 포함시켜 합산해 인정하는 방법과 따로 분리해 기록을 이원화시켜 관리하는 방법의 두 가지를 놓고 연구 중에 있다. 현재 국제야구연맹에서 실시하고 있는 아마야구의 승부치기 기록규정은 별도의 구분없이 모두 정식기록으로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프로야구도 같은 길을 가면 되겠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단순히 통계가 문제가 아니다. 프로야구는 이기고 지는 문제 못지 않게 팀과 개인의 누적된 통산기록과 연속기록이 대단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종목이다. 현실에서 맞닥뜨린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데에만 매달렸다가는 자칫 큰 것을 잃을 수도 있다. 시범경기가 열리기 전에 어떤 형태로든 기록관리 규정이 발표가 되겠지만, 열 번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부족함 뿐이다. 한편 2009 WBC에서는 연장 13회부터 승부치기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보아왔던 승부치기 방식과는 약간 다른 구석이 보인다. 정규이닝인 12회 종료시점의 다음 타순부터 13회 공격을 계속 이어서 시행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종전 감독에게 승부치기 이닝 들어 임의로 첫 타자를 고를 수 있게 했던 길을 막아버렸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승부치기 이닝에 접어들면서 임의로 감독이 첫 타자를 아무데서나 고를 수 있게 한 이유는 양 팀이 똑 같은 처지에서 승부를 가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9회가 되었건 12회가 되었건, 정규이닝 종료시점의 타순이 서로 달라 어느 팀은 하위타순을 가지고 승부치기 이닝으로 들어가야 하고, 또 어느 팀은 상위타순을 갖고 승부치기 이닝을 맞이하게 되는 기회적인 불균형을 고려해 고안된 규정이었다. 이러한 애초의 취지를 생각하자면 이번 WBC의 규정변화는 ‘복불복’(福不福)의 성격이 대단히 짙다. 어찌보면 나름대로 장점이 묻힌 듯이 보이기도 한다. 다시 우리나라 얘기로 돌아와, 앞서 말한 두 가지의 승부치기 규정(임의 주자 2명, 임의 타순지정)에 내포된 문제점들은 시범경기나 올스타전 같은 경기에서는 문제점으로 떠오를 소지가 별로 없다. 왜냐하면 프로야구의 한 부분임에도 기록의 중요성이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경기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감히 예단해보지만), 정규리그에 지금의 승부치기 제도와 같은 규정이 어느 순간 덜컥 도입된다고 한다면, 얽힌 실타래를 마주하듯, 풀어야 할 부분들이 요소요소 난제 투성이다. 다음에는 재미 삼아 그 부분을 찬찬히 짚어보도록 한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