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치기 규정 중에서 상식 선상의 야구 기록과 대립 각을 세우고 있는 부분은 크게 봐서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족보가 없는 ‘임의 지명주자 2명의 출루’부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승부치기 이닝에서 감독이 행사할 수 있는 ‘공격개시 첫 타자의 선택권’이다. 승부치기로 인해 발생되는 야구기록과의 트러블 부분은 모두 위의 두 가지 연유로부터 기인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선, 첫 번째는 임의로 내보내는 주자 2명을 놓고 투구를 해야 하는 투수의 처지(평균자책점)가 정상적이지 못하다. 이들 주자에 대해서는 모두 비 자책점으로 간주해주면 될 것 아니냐고 쉽게 말할 수도 있지만, 투구 상황 자체가 주자를 신경 써야 하는 ‘세트 포지션’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투수로서는 상당한 불리점을 떠안게 된다. 현행 아마야구에서도 이들 임의주자에 대해서는 비 자책점으로 판단해주도록 명문화하고 있지만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될 수 없다. 걸리는 것은 이뿐만 아니다. 투수가 정규이닝 동안 퍼펙트 기록을 이어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가정해보자. 승부치기 이닝에 접어들어 자신의 투구내용과 상관없이 루 상에 나가 서있게 되는 주자들에 대한 신분 해석이 아주 곤란해진다. 주자 두 명을 투수의 책임에서 제외시켜주면 될 것 같지만, 그렇게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무사 1, 2루에서 상대가 보내기번트를 이용해 주자를 2, 3루로 만들어 놓게 되면 비록 안타를 허용하지 않는다 해도 실점확률은 대단히 높아지게 된다. 주자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과거 시즌 막판 최다득점상 부문 타이틀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어느 선수가 덕아웃에 있다가 시즌 막판 대주자로 나가 쐐기 득점만을 올린 일이 있는데, 마찬가지 경우가 일어날 수 있다. 임의로 주자 두 명을 내보내는 규정을 이용하면 득점 경쟁에 있는 선수를 대놓고 밀어줄 수 있다. 도루에서도 역시 같은 노림수가 가능해진다. 문제가 되는 그 다음 부분은 승부치기 이닝에 접어들 때, 임의로 감독이 공격개시 첫 타자를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든 조항이다. 지난번에 설명했듯이 정규이닝의 마지막 타자가 막바로 승부치기 이닝의 첫 타자로도 등장할 수 있는 상황이 가능해진다는 말인데, 이 점은 타자와 관련된 여러 가지 기록면에서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 근소한 차로 타율싸움에서 2위에 자리한 선수가 있다고 하자. 야구상식대로 보자면 더 이상의 기회가 없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승부치기 이닝에 접어들게 되면 보너스와도 같은 기회를 다시 얻을 수 있게 된다. 타율 말고도 타점에서는 더더욱 문제가 커진다. 주자를 최소한 두 명 이상 앞에 두고 공격할 수 있는 기회를 의도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역시 공정거래법에 저촉된다. 타자부문의 대기록과도 연관성이 있다. 특정 선수가 연속경기안타 기록행진을 이어오다 정규이닝에서 안타를 기록하지 못하고 끝났다고 치자. 하지만 경기가 승부치기 이닝에 접어들게 되면 이 선수는 상식적인 타순에 상관없이 타석에 한번 더 들어설 수 있는 기회를 무조건 잡게 된다. 그것도 상대가 거를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서까지. 정규리그 최종성적에서 동률 팀이 3팀 이상 중복되어 나타났을 경우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해당 팀간의 전적에서 다승으로도 서열이 가려지지 않았을 때 그 다음으로 적용되는 잣대가 해당 팀간의 다득점이다. 두 팀만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3팀이 얽혔을 경우에는 승부치기를 치렀던 팀이 아무래도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런 경우가 일어날 확률은 그다지 크지 않지만, 완전한 불가능 상황도 아니다. 현재 아마츄어에서 시행되고 있는 승부치기 관련 규정을 들여다보면 임의의 주자 2명에 대해서만 비자책점을 적용하고 있을 뿐, 기타 기록은 모두 정규의 기록과 동일하게 취급되고 있다. 심지어 임의로 출루하는 두 명의 주자(T.B로 표기)에 대한 기록도 4사구처럼 타석에 들어섰던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고의4구로 걸리려는 타자에게는 투구를 하지 않아도 1루에 출루시키도록 했던 과거 예를 떠올려보면 경기촉진룰 정신에 입각한 결정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록이 생명인 프로야구에서는 승부치기의 기록처리 문제를 쉽게만 생각할 사안은 결코 아닌 듯 싶다. 올 시즌에는 기록이 큰 의미를 갖지 않는 번외경기 성격의 시범경기와 올스타 전에 국한해서 시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람의 앞일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직까지 시범경기의 승부치기 기록처리에 관한 구체적인 시행규정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많은 문제점들을 충분히 생각하고 대비하기 위한 검토단계를 밟아가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가장 신경이 쓰이는 명제를 꼽으라면 단 하나. 과거 프로야구 역사의 산물인 수많은 기록들의 의미와 가치를 지켜내야 하고, 앞으로 탄생할 대기록들의 명분을 살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록가치의 단절, 그것은 곧 프로야구기록의 무덤과도 같기 때문이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