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2009년 야구 기록강습회를 마치며…
OSEN 기자
발행 2009.03.03 14: 12

‘그저 몇 분 정도 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 속에 던진 질문이었는데 여기저기에서 손이 올라왔다. 동시에 야구팬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고 기록강습회를 끌어왔던 공식기록원들은 잠시 말을 잃어야 했다. 질문의 내용은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에서 올라오신 분 계시면 손을 한번 들어봐 주십시오” 였다. 일반 야구팬들을 대상으로 해마다 한차례씩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는 프로야구 기록강습회의 전체 일정은 총 3일간이다. 때문에 지방에서 거주하는 사람이 강습회를 다녀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숙박문제까지도 스스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습회 기간 동안 이 난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되묻자 돌아온 대답은 ‘찜질방’. 야구기록을 배우고자 하는 팬들의 뜨거운 열정과 정성에 놀라움의 차원을 넘어 존경심마저 일었고, 한편으로는 송구스럽기까지 했다. 이러한 느낌들은 비단 위의 경우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다. 군복무 중 휴가를 얻어 강습회에 참가했다가 마지막 날 복귀시간에 쫓겨 채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서둘러 발길을 돌려야 했던 군인도, 다니고 있는 직장의 상사에게 어렵사리 허락을 얻어내 3일 모두 온전히 자리를 함께 할 수 있었던 직업인도 있었다. 연령적인 면에서는 그 폭이 더욱 넓었다. 리틀 야구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11살)로부터 위로는 74세의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야구사랑에는 위아래가 따로 없었다. 아빠 손을 잡고 강습회장으로 들어서는 어린 소녀나 백발이 성성한 할머님도 야구 이야기 앞에서는 혹여 한가지라도 빠뜨릴세라 귀를 하나로 모으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꼬박 책상 앞에 앉아 기록원들의 강의를 들어야 하는 고단한 일정에도 중간에 자리를 뜨는 분은 거의 없었다. 참가하신 팬들의 상당수는 주변으로부터 ‘야구박사’나 ‘매니아’로 불릴 만큼 야구에 대해서는 나름의 자부심이 대단하신 분들이다. 그럼에도 미처 몰랐던 야구규칙이나 기록에 관한 지식들을 이번 기회를 통해 새로이 알게 되었다는 겸손의 말씀도 잊지 않는다. 야구기록법과 규칙을 처음으로 접해 어려웠다고 말하는 팬들도 있지만, 내년에 다시 한번 참가해 반드시 내 것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분들도 있었다. 매년 시범경기를 앞두고 열리는 야구기록 강습회는 시즌 들어 팬들과 만나게 되는 KBO 주관 행사의 공식적인 첫 단추다. 얼마나 많은 팬들이 강습회를 찾아 주셨는지에 따라서 당해 년도 시즌의 흥행을 미리 점쳐보기도 하는, 간접적인 잣대로서의 의미를 담고 있는 행사이기도 하다. 야구기록법의 보급을 통해 팬들이 경기를 즐기는데 있어 좀더 깊이 있고 다양한 시각에서의 접근을 가능케 하고, 야구경기의 생명과도 같은 기록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키고자 하는 취지에서 발원된 기록강습회는 올해로 28번째다. 년간 평균 200명 내외의 팬들이 강습회를 거쳐간 것을 따져보면 수강 연인원만도 6000명에 육박하고 있다. 야구기록의 법전인 기록규칙을 파고드는 시간인 만큼 다소 어렵기도하고 딱딱한 내용도 적지 않다. 단상에 오르는 기록원들은 이러한 점을 감안해 실전에서 일어났던 예나 퀴즈 등을 자주 곁들여 지루함을 덜 수 있는 쪽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많은 준비를 하곤 한다. 너무 이론 일변도라는 팬들의 따끔한 지적에 이번에는 지난 시즌 경기에서 일어났던 각양각색의 안타와 관련된 영상자료를 네이버측의 도움을 받아 별도 편집, 강의에 활용하는 변화를 시도해보기도 했다. 팬들의 반응과 결과가 기대이상으로 나와 안타뿐만 아니라 실책, 도루 등에 관한 설명에도 영상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볼 생각이다. 한편 지방 팬들의 건의가 끊이지 않는 기록강습회의 지방개최는 장소나 시장성 등의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먼저 고려 되어야 하는 문제라서 좀더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다. 다만 꼭 KBO 주최가 아니더라도 지방의 사회인야구를 관장하는 협회나 단체에서 기록강습회를 연다고 했을 때, 공식기록원의 강사파견을 요청해온다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할 생각도 갖고 있다. 과거 제주도와 광주 그리고 대구에서 이미 시행해본 전례도 있다. 야구를 부르는 3월의 따스한 봄볕 아래 야구를 사랑하고 기록에 관심을 갖고 있는 남녀노소의 야구팬들과 함께 했던 지난 3일(2월27~3월1일)간은 팬들 뿐만이 아니라 공식기록원들에게 있어서도 무척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래서일까? 밀물처럼 밀려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간 텅 빈 백사장을 대하듯, 강습회장 야구팬들의 빈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지곤 하는 것도 꼭 이 맘 때의 일이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좀더 내용 있고 충실한 기록강습회가 되어야 할 텐데…. 공식기록원들에게는 언제나 끝나지 않는 영원한 고민이자 또 다른 숙제다. 늘 부족한 것만 같은 강의와 진행에도 질책하기에 앞서 따뜻한 격려와 박수를 보내주신 팬들에게 이 기회를 빌어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아울러 야구가 함께하는 그 어디에서든 다시 뵐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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