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막을 내린 월드베이스볼 클래식의 감동을 고스란히 살려내며 역사상 처음으로 ‘개막전 전 구장 매진’이라는 깜짝 기록으로 닻을 올린 2009 프로야구의 흥행몰이가 시작부터 심상치가 않다. 종전 개막전 최다관중 기록이던 8만 3253명(2004년)을 가뿐히 넘어선 9만6800명을 기록하며 첫날부터 관중기록에 있어 기념비적인 이정표를 세워냈는데, 기록도 기록이지만 개막전이 열린 4개 구장 중에서 3곳(잠실, 문학, 사직)이 3만 안팎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구장이었음에도 전혀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올림픽과 WBC를 정점으로 뜨겁게 일기 시작한 범국민적 야구열기와 팬들의 기대치가 현재 어디까지 닿아있는 지를 헤아리기에 모자람이 없는 무언의 메시지인 듯도 싶다. 다만 욕심을 부려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올 시즌 들어 문학과 사직 그리고 대구 구장이 팬들의 보다 편리하고 안락한 관전 환경을 위해 일부의 관중석 좌석을 줄인 관계로 역대 하루 최다 관중기록인 10만 1400명(2005년)을 갈아치우지는 못한 점이라고 하겠다. 지난 해와 비교해서 사직은 1500석, 문학은 2600석, 대구구장은 2000석 정도가 각각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충분히 기록경신이 가능했던 상황이었다. 한편 이처럼 과열양상 분위기 속에 치러진 개막전에서 흥행열기에 가려 소리소문 없이 묻혀 지나간 진기록 하나가 있었다. 28년 프로야구 역사상 단 6차례 밖에 기록되지 않았던 ‘최소 투구수 승리’ 기록 하나가 그 일곱 번째 알을 조용히 낳은 것이다. 주인공은 롯데의 이정민(30). 2003년 이승엽의 아시아 홈런 신기록인 56호 홈런을 내준 투수로 유명세를 탔던 바로 그 투수다. 이정민은 4일 사직에서 열린 히어로즈와의 개막전에서 1-2로 뒤지던 7회초 1사 1, 2루의 추가실점 위기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랐다. 그 첫 상대는 체급상 다소 버거워 보이는 4번 브룸바. 하지만 하늘의 도움으로 브룸바의 잘 맞은 직선타구는 2루수 정면으로 날아갔고, 덕분에 미처 귀루 하지 못한 2루주자 이택근까지 더블아웃으로 잡아내며 이닝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순식간에 아웃 카운트를 2개나 뺏어냈지만 이정민이 7회에 브룸바를 상대로 던진 공은 ‘달랑 1개’였다. 돌아선 7회말 롯데는 강민호의 동점홈런과 김주찬의 좌중간 2루타로 전세를 뒤집는데 성공했고, 이후 강영식과 새로운 외국인 투수 존 애킨스(32)의 깔끔한 마무리에 힘입어 3-2로 짜릿한 재 역전승을 거둘 수 있었다. 이날 롯데의 홈 개막전 승리에 있어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선수는 단연 동점홈런을 터뜨린 포수 강민호와 4타수 3안타를 곁들인 결승타의 주역 김주찬이었다. 하지만 경기 후, 이렇다 할 주목을 끌지 못했으면서도 등 따뜻한 포만감에 조용히 웃고 있는 선수는 이정민이었다.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지 자칫 헤어나오기 힘든 어려운 국면으로 몰릴 뻔 했던 순간을 간신히 모면한 이정민에게 마치 복권당첨과도 같은 ‘개막전 승리투수’라는 아주 근사한 훈장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등판 당시 심적인 부담이야 꽤 있었겠지만 육체적으로 들인 노력에 비해서는 과분할 만큼(?)의 선물이었다. 반대로 지금까지 한 경기 ‘최다 투구수 승리기록’을 들춰보면 ‘219개’이다. 이정민이 공 1개만을 뿌리고 챙긴 기록과 견주어보면 그야말로 ‘우주와 지구의 땅’ 차이다. 그 속에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담겨져 있다. 이정민이 승리를 기록한 상대인 히어로즈의 김시진 감독이 바로 219구 승리투수의 당사자라는 점이다. 김시진(당시 롯데)은 1989년 4월 14일 OB와의 사직 경기에서 무려 연장 14회를 혼자서 완투한 끝에 2-1로 힘겹게 승리를 거둔 적이 있는데, 그 때 걸린 시간은 장장 5시간 2분이었다. 요즘 야구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정민이 기록한 ‘1구 승리투수 기록’의 숫자적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 지난 해까지 치러진 프로야구 1군 경기수는 총 1만 2380경기다. 이를 토대로 계산해보면 2063경기에 한번 꼴로 기록된 셈이고, 확률로 따지면 1만분의 4가 된다. 그런데 이런 기록보다도 한 술 더 뜬 기록이 가능할 수 있다. 투구수 ‘0’의 승리투수다. 이정민처럼 중간에 등판한 투수가 타자를 상대하기 전에 루상의 주자를 견제구로 먼저 잡아내며 이닝을 마무리했다고 가정할 때 만들어질 수 있는 기록이다. 아직 한국프로야구에서는 나온 적이 없는 꿈의 진기록(?)이다.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지…. 윤병웅 KBO 기록실장 4월 4일 2009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깜짝 최소투구 승리 기록을 오렸던 이정민(오른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