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데뷔 첫 해에 가장 화려한 꽃을 피워냈던 선수가 엊그제 은퇴했다. 1992년에 입단해 무려 17승(다승 3위)을 거두며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에도 크게 일조했던 롯데 자이언츠의 염종석(36)이 환희와 아쉬움으로 점철된 지난 17년간의 선수생활을 마감하는 자리에서 팬들에게 작별을 고하며 큰 절을 올리던 날, 그는 평소 그리던 ‘100승 투수’의 꿈도 함께 접어야 했다. 지난해까지 염종석이 모아 놓은 통산 승수는 93승. 2007년까지만 해도 그의 100승 달성은 상당 부분 가능한 일이다 싶었는데 지난해 단 1승도 더하지 못하는 아쉬운 제자리걸음 끝에 결국 그의‘유한도전’은 막을 내리고 말았다. 통산 성적은 93승 133패, 평균자책점은 3.76이었다. 승보다 패가 많았던 선수로 기억되는 그의 데뷔 전은 너무도 초라했다. 1992년 OB와의 사직구장 개막 2연전의 둘째 날(4월5일) 선발 등판했던 염종석은 불과 3이닝도 버텨내지 못하고 뭇매를 맞으며 초반 4실점, 출발부터 패전투수의 멍에를 짊어진 채 프로에 첫발을 내디뎌야 했다. 여기에 고졸신인의 한계라는 혹평은 덤이었다. (그러고 보니 염종석의 데뷔전과 은퇴식이 열린 상황이 참 많이도 닮아있다. 모두다 부산 사직구장이고 둘 다 개막 2연전의 둘째 날이다. 날짜가 4월 5일이라는 점도 똑같다.) 하지만 염종석은 두 번째 선발 등판한 LG와의 홈경기(4월11일)에서 심기일전, 상대 타선을 9이닝 동안 6피안타 1실점으로 틀어막으며 프로 첫 승을 ‘완투승’으로 장식,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 때 그의 나이는 불과 19살이었다. 이후 승승장구한 염종석이 시즌이 끝났을 때 받아 든 성적표에는 고졸신인이 일궈낸 밭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의 열매들이 가득했다. 다승 3위(17승)에 평균자책점 부문 1위(2.33). 시즌 3위를 기록했으면서도 포스트시즌 들어 삼성과 해태를 연파하고 한국시리즈까지 올라 1위였던 빙그레마저 무너뜨린 롯데 대이변 속의 주역도 염종석이었다. 그 해 포스트시즌에서 염종석이 거둔 성적은 4승 1세이브. 특히 혼자서 2승을 따낸 해태와의 플레이오프에서 보여준 그의 역동적인 투구는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1992 골든 글러브 투수 부문도 포스트시즌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염종석의 차지였다. 물론 송진우와 이강철의 다승경쟁에서 발생한 기록 만들기 구설수의 반사이익을 얻었다는 분석도 있었지만, 자료로만 따져도 골든 글러브를 받기에는 전혀 모자람이 없는 성적이었다. 만장일치에 가까웠던 신인왕까지도 그의 몫이었다. 그러나 때가 오기 전에 너무 일찍 꽃을 피워서였을까? 염종석은 데뷔 첫해에 거둔 17승을 끝으로 특급투수 반열에서 보통 투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듬해인 1993년 10승을 거둔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두 자리 승수를 기록해내지 못했다. 3승과 8승 사이를 오르내린 것이 전부였다. 2000년과 2008년은 아예 승을 올리지도 못했다. 이번 은퇴를 앞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는 염종석. 100승을 해보고 싶다는 확실한 목표 덕에 부진의 늪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했을 때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는 염종석에게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눈 앞에서 아른거리는 ‘100승의 꿈’은 포기하기엔 너무도 미련이 남는 기록이었을 것이다. 염종석에게 ‘100승’은 단순한 100승 투수라는 숫자적 가치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는 이정표였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기록달성을 위해 타 구단으로의 이적도 심각하게 고려했다는 후문이다. 만약 팀을 옮겨 선수생활을 연장했었더라면 대망의 100승 고지에 올라설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한 상상이나 추측은 하지 않는 편이 더 좋겠다. 비록 93승에서 멈추었지만 그가 롯데라는 팀에서 이룬 결실들과 도전은 이미 100승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의 가치를 충분히 담고 있기에 그렇다. 기적과도 같았던 1992년 롯데 우승 신화의 기억을 간직한 마지막 선수 염종석. 그에 관한 자서전이 있다면 그의 야구인생 마지막 장에 반드시 적혀있어야 할 대목이다. 여담 하나. ‘염종석’ 하면 떠오르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것이 하나 있다. 어느 경기에선가는 하루에 3번씩이나 1루에 악송구를 저질러 팬들의 애간장을 녹이기도 했다. 이젠 그 인간미 넘친 악송구마저도 많이 그리울 것 같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지난 4월 5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렸던 롯데 자이언츠-히어로즈의 경기에 앞서 은퇴식을 가진 염종석이 마운드에서 팬들을 향해 큰절을 올리고 있다. /부산=윤민호 기자ymh@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