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채병룡의 보크 탈출, 절반은 박경완의 공
OSEN 기자
발행 2009.05.15 09: 46

지난 5월 9일에 열린 SK와 히어로즈 전(문학 구장) 9회초, 1사 1, 2루 상황에서 마무리도 등판(7-3리드)한 채병룡(SK)이 브룸바를 상대로 투구동작을 일으키다 허리중심이 무너진 가운데, 옆으로 쓰러지면서도 마치 수류탄을 던지듯 공을 홈플레이트 쪽으로 안간힘을 다해 던지려 했던 장면을 두고 팬들의 격려성 글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런데 마운드 위에서 중심을 잃고 넘어지면서도 반사적으로 포수를 향해 끝까지 공을 던지려 한 채병룡의 집념 어린 투구동작은 그냥 재미로 웃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그 내막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또 하나의 공부거리가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야구팬들도 다 눈치챈 내용이지만, 채병룡이 그 상황에서 공을 던지지 않고 동작을 멈추었다던지, 마운드에서 공을 손에 쥔 채로 넘어졌을 경우에는 투수의 보크가 된다. 물론 주자가 없다면 아무런 페널티도 뒤따르지 않겠지만, 루상에 주자가 있었다면 얘기가 틀려진다. 일종의 기만성 반칙투구에 해당되어 보크로 지적당하게 된다. 채병룡은 바로 이 점을 의식하고, 비록 포수까지 똘똘똘 굴러가는 투구가 되고 말았지만 끝까지 공을 홈 쪽으로 보내려 시도했던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이와는 아주 대조적인 장면도 있었다. 5월 6일 목동에서 열린 KIA와 히어로즈의 경기에서는 히어로즈의 마무리 투수 황두성이 공을 던지려다 멈추는 뜻밖의 동작을 저질러 어이없는 실점을 내주고 만 일이다.(2006년 플레이오프에서 KIA의 한기주가 범했던 보크도 이와 같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팀이 5-2로 리드하던 8회초 1사 2, 3루의 위기에서 등판했던 황두성은 이 실점이 심적부담이 되었는지 결국 최희섭(KIA)에게 역전 3점홈런까지 얻어맞고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는데, 이를 생각해보면 채병룡의 기지는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채병룡의 그러한 눈물겨운(?) 노력도 포수 박경완의 침착한 대응이 없었더라면 한낱 헛수고에 지나지 않을 뻔 했다. 그 이유는 채병룡이 던진 공이 파울선을 넘어섰느냐 아니냐에 따라 투구행위에 대한 판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굴린 공이 파울선을 넘어서기 이전에 페어지역에 멈추었다던지, 포수가 냉큼 집어 들었다면 결과는 ‘볼’이 아닌 ‘보크’가 된다. 실제로 주자가 나가 있었던 만큼 포수 박경완으로선 다급하게 다가가 무심결에 공을 집어들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를 감안하면 채병룡 보크 탈출의 절반은 포수 박경완의 공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해프닝이 있기 열흘 전인 4월 28일, 2군경기에서는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포수의 적절치 못한 대처로 투수가 던진 공이 보크로 선언되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상무와 히어로즈의 경기(원당)에서는 선발투수 고원준(히어로즈)의 투구가 땅바닥으로 굴러가는 공이 되고 말았는데, 포수 유선정(히어로즈)은 공이 파울선을 넘어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걸어나가 공을 집어드는 바람에 보크로 선언된 일이었다. 2사 주자 1, 2루 상황이었다. 야구에서 가장 찾아내기 어렵다는 투수의 보크에 관한 내용은 규칙 8.05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그렇지만 앞서 장황하게 설명한 부분들은 정작 보크 규칙 어디를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규칙에 없어서가 아니다. 보크조항이 아니라 8.02의 반칙투구 항목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그대로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투구동작중 투수의 손에서 미끄러진 공이 파울선을 넘게 되면 볼로 선언되고, 넘지 않았을 경우에는 투구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주자가 베이스에 있을 때는 보크가 된다.’ 최근 이 조항과 관련해 잇달아 일어난 3번의 각기 다른 결과물(고원준-황두성-채병룡)들을 한데 묶어 기억한다면 비슷한 일을 만나더라도 전혀 헷갈릴 일이 없을 것으로 믿는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상황도 그려진다. 주자가 1, 2루에 있다고 할 때, 3볼 이후에 투수의 공이 굴러오기를 기다린다면 분명 파울선을 넘는 순간, 타자는 볼넷이 된다. 주자 상황은 만루로 변하고…. 만일 루상의 주자들이 투구 이전에 스타트(더블 스틸)를 끊었다면 포수가 앞으로 나가 파울선을 넘기 이전에 공을 집어드는 편이 낫겠다라는 생각이다. 볼넷이 아니라 보크로 선언받고 계속 투구하는 것이 주자를 한 명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론이지만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해진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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