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야구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새(鳥)’
OSEN 기자
발행 2009.06.15 10: 01

잠실구장 관중석 이곳 저곳을 날아다니다 팬들이 던져주는 과자나 팝콘에 떼로 몰려들던 비둘기들이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지난 2008년 시즌개막을 앞두고 잠실구장 관리소 측에서 비둘기의 오물로 인한 관중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내야 천정 안쪽에 비둘기가 앉을 수 없도록 그물망을 설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그 해 7월 10일 잠실구장에서 열렸던 두산과 LG의 경기 도중 비둘기 한 마리가 3회부터 5회까지 야구공이 빗발치는 홈 플레이트 주위를 장시간 서성대며 ‘1인 시위’ 아니 ‘1조(鳥) 시위(?)’를 벌이던 모습이 문득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렇다면 야구장에서 천대받는 새들은 야구와는 어떤 인연을 갖고 있을까? 지난 6월 12일 클리블랜드의 추신수(27)가 기록한 끝내기 안타를 보면서 이 부분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졌고, 공부삼아 찬찬히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신수는 이날 프로그레시브 필드에서 열린 캔자스시티와의 홈경기에서 연장 10회말에 찾아온 무사 1, 2루의 기회를 살려내는 중전안타를 때려냈는데, 이 타구가 끝내기 안타로 귀결된 데에는 적시에 비상을 시작한 새떼(갈매기)들의 도움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추신수가 친 안타는 라인 드라이브성으로 비교적 잘 맞아나간 타구로 2루주자가 홈까지 쇄도하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어 보이는 타구였다. 그런데 타구가 공교롭게도 유격수와 중견수의 중간지점에 몰려 있던 30~40마리의 갈매기 떼가 있는 쪽으로 날아갔고, 중견수 코코 크리스프가 타구를 잡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바운드된 공이 날아오르는 새에 맞았는지, 아니면 새에 가려 공을 시야에서 잃어버렸는지 크리스프는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공을 뒤로 빠뜨리고 말았던 것이다. 어이가 없었던 중견수 크리스프는 두 팔을 벌리며 정상 참작(?)을 호소하는 듯한 제스쳐를 취해봤지만 이미 상황은 끝나있었다. 타구가 새들이 몰려있던 방향으로 날아올 것을 대비해 미리 다른 곳으로 쫓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아마도 정면이 아니라 중견수의 약간 우측 방향이었기 때문에 당장 시야를 방해 받지 않아 안이하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야구에서 공이 새에 맞았을 경우에 어떻게 처리하는 지에 관한 사항은 야구규칙 7.05에 따로 명시되어 있다. 그 내용을 잠깐 들여다보자. 이해를 돕기 위해 풀어서…. 1) 페어의 타구가 공중에 뜬 상태로 확실히 담장을 넘어갔을 것으로 판단했을 때에는 새에 맞아도 홈런으로 인정된다. 일종의 정상 참작이다. 2) 공중에 떠 있는 페어의 타구나 송구가 새에 닿았을 경우에는 볼 인플레이로 야수들이나 주자들의 플레이는 계속 진행형이 된다. 추신수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다만 인 플라이트(In flight-공중에 떠 있는 상황) 상태로 간주하지는 않기 때문에 설령 새에 맞고 떨어지는 타구를 야수가 직접 잡아도 아웃은 아니다. (1987년 이전에는 홈런성 타구가 아닌 타구, 송구, 투구가 새에 맞았을 경우에는 볼 데드로 하고 심판원의 판단에 따라 각 주자에게 최하 1개루 이상의 안전진루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이후 규칙을 개정했다) 3) 투수의 투구가 새에 맞았을 경우에는 볼 데드가 되며, 볼카운트 하지 않는다. 아주 오래 전, ‘18.44m의 근거리 안에서 그 짧은 순간에 투구가 새에 맞는 일이 정말 일어날 수 있을까?’라고 규칙을 읽으면서 반신반의 했던 조항이었는데 현실에서 우린 만날 수 있었다. 2001년 3월. 얼마 전 개인통산 300승의 위업을 이뤄낸 랜디 존슨(당시 애리조나)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시범경기에서 캘빈 머레이를 상대로 던진 투구(시속 95마일의 직구로 알려짐)가 갑자기 날아든 비둘기에 맞는 끔찍한 일이 실제로 벌어졌던 것이다. 당시 비둘기는 깃털을 사방으로 날리며 그 자리에서 절명하고 말았다. 랜디 존슨은 이후 상대에게 2루타 2개로 2실점하며 예기치 못한 비둘기의 죽음에 대한 미안함을 대신(?) 표하기도 했다. 4) 이런 일까지 생기지는 않겠지만, 만약 새가 공을 먹이로 알고 낚아채간다거나 입으로 물어 갔을 경우에는 볼 데드로 하고 심판원의 판단(재량권을 이용한 정상 참작)에 따라 조치한다. 야구 규칙에도 개가 물어갔을 경우로만 설명하고 있을 뿐, 새를 지명한 조항은 없다. 한편 1983년 데이브 윈필드(뉴욕 양키스)가 연습 도중 던진 공에 비둘기가 맞아 사망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 일은 윈필드의 현명하지 못한 대처로 그 해의 명예롭지 못한 장면에 꼽힌 적도 있었다. 윈필드가 송구에 맞아 죽은 비둘기를 바라보며 모자를 벗어 애도를 표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아주 재미있다는 듯이 히죽대며 웃은 것이 빌미가 되어 끝내 동물학대죄로 고소까지 당해야 했던 일이다. 1984년에는 매 한 마리가 리키 헨더슨이 친 타구를 먹이로 알고 달려들었다가 맞아 죽은 일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뉴욕 메츠와의 경기에서 디온 제임스(애틀랜타)의 평범한 좌익수 플라이성 타구가 비둘기에 맞고 2루타로 둔갑하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은 1987년 4월의 일이다. 가깝게는 2003년 당시 유망주로 꼽히며 미국으로 건너갔던 류제국이 싱글A 연습과정에서 플로리다주의 보호조류인 물수리에게 공을 던져 상해를 입혔다가 법에 의해 사회봉사명령을 받았던 일도 새에 얽힌 불행한 일화로 남아 있다. 메이저리그 팀 명을 보면 유래는 다르다고 해도 ‘카디널스’와 ‘블루 제이스’가 새의 이름이다. 우리나라에도 ‘이글스’가 있다. 팀 이름까지는 아니더라도 갈매기를 마스코트로 삼은 구단도 있다. 이처럼 새들은 사람 사는 세상 속에서 매우 친숙히 여겨지고 있는 동물이다. 하지만 야구가 열리는 경기장 안에서는 언제나 보호받지 못하는 홀대 받는 존재다. 쫓겨나거나 아니면 공에 맞아 죽거나…. 비둘기처럼 순하고 매처럼 사납고를 떠나 야구경기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존재, 바로 ‘새’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2008년 10월 8일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1차전이 열린 사직구장에 밤하늘에 띄워진 대형 애드벌룬 ‘부산 갈매기’.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