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드’라는 다소 생소했던 중간계투 투수 평가항목이 공식적으로 국내 프로야구 통계에 처음 접목된 것은 지난 2000년부터다. 당시 한국은 일본의 퍼시픽리그에서 적용(1996년 이후)하고 있던 홀드기록 규정과 미국의 여러 홀드규정을 참고로 해서 좀더 합리적인 홀드안을 만들어보고자 검토작업을 진행한 바 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기록원들 사이에 가장 논란이 되었던 부분은 ‘패전 팀 투수의 홀드 기록을 과연 그대로 살려 인정하고 넘어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였다. 승리투수나 세이브 등의 투수에 관한 기록들은 팀의 승패와 궤를 같이해 그 효력이 자동말소가 되고 있는데, 유독 홀드기록만 살아 남는다는 사실이 일반적인 기록정서에 비추어 영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른 보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받고 있는 중간계투 투수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홀드부문은 이기고 짐에 따른 변수에 구애받지 말고 모두 인정해 주는 쪽이 좋겠다는, 다분히 동정적인(?) 의견이 좀더 세를 얻어 지금과 같은 규정이 자리잡게 되었다. 이 외에도 승리투수보다 앞에 기록되는 홀드의 인정문제와 경기가 다시 동점이 되었을 경우, 앞에 기록되었던 홀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도 다소간의 이견이 따랐지만, 모두 인정해 주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는데, 이는 전반적으로 홀드기록에 대한 후한 선심(?)이 대세였다는 점과 패전 팀에서도 홀드가 나오는 마당에 인정못할 이유가 없다는 대마론에 근거한 결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홀드기록의 유효시점을 투수가 물러나는 순간에 결정할 것인지, 아니면 물러나고 난 다음이라도 해당 투수가 남겨놓은 주자의 득점여부를 함께 따져 결정할 것인지를 놓고도 잠시 의견교환이 이루어졌지만, 이 부분은 투수가 남겨놓은 주자까지 지켜본 후 기록을 적용해야 맞다는 쪽으로 기록원들 대다수의 의견이 쉽게 모아졌다. 다른 부분과 달리 이 조항에 있어 빠른 합의를 도출해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다음과 같은 그림 때문이었다. 가령 9회말 무사에서 팀이 5-4로(1점차) 앞서고 있는 가운데 중간계투 B가 올라와 아웃카운트 2개를 잡아냈지만 볼넷 2개를 내주며 주자 1, 2루의 위기상황을 만들어 놓고 마무리 전문 투수 C에게 마운드를 인계했다고 치자. 이어 위기상황에서 올라온 마무리 투수 C가 작가정신(?)을 발휘, 그만 끝내기 3루타를 허용해 팀이 5-6 역전패를 당했다고 할 때, 홀드기록을 중간계투 투수 B가 물러났을 때를 기준으로 부여한다면 위의 상황에서 B에게는 홀드가 주어진다. 세이브 상황에서 올라와 물러난 시점까지 리드상태를 유지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팀이 역전패하는 순간 B는 패전투수로도 기록된다. 자기가 루상에 남겨놓은 주자의 득점이 역전 점수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결승타를 내준 C투수는 기록적으로는 아무 책임이 없다) 동일한 상황에서 그날 경기의 패전투수(L)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간 계투는 성공(H)했다고 평가받는 이중적인 기록의 잣대가 가능해지는 순간이다. 기록정서로 볼 때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한 기분, 결과를 설명하기에는 모순을 안고 있는 이와 같은 현상이 규정 앞에 선 기록원들의 마음을 한쪽으로 몰아세운 것이다. 물론 블론 세이브(BS)와 구원승(W)을 함께 기록하는 투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기록들이 주어진 상황은 완전 별개다. 올 시즌 들어 구원부문에서 평균자책점 '0'의 무자책행진을 펼치며 연일 상종가를 치고 있는 일본 프로야구의 임창용(야쿠르트)은 6월 21일 세이부 라이온즈와의 리그 교류전에서 5-4로 앞서던 9회 등판해 1실점(비자책점)하며 시즌 첫 블론 세이브를 기록했지만, 돌아선 9회말 팀이 끝내기 안타로 결승점을 뽑아낸 덕에 행운의 구원승을 올릴 수 있었다. 이 경우에도 동일 투수가 한 경기안에서 2가지의 기록을 함께 챙기는 꼴이지만, 정확히 따지면 블론 세이브는 9회초, 구원승은 9회말로 시점이 갈린다. 지난 19일 박찬호(필라델피아)가 토론토 전에서 기록한 2번째 홀드는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기록정서상 어느 정도의 괴리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를 갖고 있다고 하겠다. 비록 박찬호가 임무 중 5-4의 살얼음판 리드를 유지해내기는 했지만 자신이 남겨놓은 주자의 득점으로 경기가 5-5, 원점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라면 당연 홀드가 날아가는 상황이었지만 메이저리그의 홀드규정은 남겨놓은 주자의 득점여부에 관계없이 리드를 유지한 채 물러나면 홀드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홀드다. 홀드규정은 이미 1980년대 중반에 야구통계를 다루는 ‘스태츠’나 ‘스포츠티커’ 등의 통계사에서 여러가지 형태의 기준을 제시하기 시작한 이후, 각 나라별로 또는 야구기록을 다루는 언론매체별로 나름대로의 홀드규정을 임의로 만들어 적용해오고 있다. 그러다보니 점수차나 이닝, 주자 상황별로 홀드를 인정해주는 기준도 천차만별이다. 한국에서도 공식적으로 홀드기록이 도입되기 이전, 몇몇 언론사에서 자체 홀드 적용기준을 따로 마련해 집계 발표를 시도한 바도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아직도 홀드규정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만한 완전한 구색을 갖추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세이브와 같은 공통적인 기준 마련의 시급함이나 필요성을 역설하기에는 홀드기록이 갖고 있는 중요도나 인식에 있어 넘기 힘든 한계점을 갖고 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올 시즌 국내프로야구 경기 후반에 나타나는 유래없는 혼전과 난전은 뛰어난 중간계투와 안정감 있는 마무리 투수의 부재에 기인한 바 크다. 그 만큼 분업화되고 전문화되어 가는 현대야구에 있어서 중간계투층의 비중과 중요도는 날로 커져가고 있다. 그럼에도 기록과 통계적인 측면에서 중간계투 투수들의 구실과 중요성을 대변해 줄 만한 증빙자료나 빈약한 결과물 앞에서 느껴야 하는 어딘가모를 허전함은 현대야구의 여전한 숙제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