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팀의 좌완 에이스 류현진에 이은 제 2선발 자리를 꿰차며 한화 마운드의 세대교체를 책임질 중추 주자로서 야심찬 첫 걸음을 내디뎠던 프로 3년차의 우완투수 김혁민(21). 개막전 다음날인 4월 5일, 지난해 우승팀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다소 버거워 보였던 선발등판을 그럭저럭 치러낸(4⅓이닝 3실점) 김혁민이 활화산 같은 타선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불과 9경기만에 시즌 5승을 몰아거둘 때까지만 해도 그의 앞길은 탄탄대로처럼 보였다. 화력지원 부실로 뛰어난 평균자책점(방어율)을 기록하고 있으면서도 번번이 승리를 따내지 못하고 있던 봉중근(LG)의 경우와 극과극으로 비교될 만큼 행운도 많이 따라 주었다. 하지만 김태균과 이범호를 비롯한 팀의 주포들이 이런저런 부상으로 전력에서 번갈아 제외되는 바람에 타선의 힘이 눈에 띄게 무기력해지자 한화 마운드 역시 신,구 불문 동반 침체로 빠져들기 시작했고, 팀 순위의 하락과 함께 김혁민의 운도 거기까지였다. 7월 7일 현재 승률 3할을 겨우 웃도는 성적으로 최하위에 밀려나있는 한화, 급기야 12연패로 ‘역대 팀 최다연패’(종전 11연패)라는 달갑지 않은 기록마저 갈아엎는 지경에 몰리고 말았고, 김혁민 역시 개인으로서 데뷔 후 최다연패인 5연패(진행 중)의 쓴 맛을 봐야했는데, 이런 와중에 결과보다 더욱 신경이 쓰이는 대목은 김혁민의 투구내용이다. 최근 선발등판한 5경기의 평균 투구이닝은 4이닝을 겨우 넘기는 수준. 6월 14일 KIA를 상대로 5⅔이닝(4실점)을 던진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4번의 등판에선 모두 5회를 채 버텨내지 못했다. 이 기간 동안 김혁민이 기록한 평균자책점은 무려 11.22로 올 시즌 통산 평균자책점 8.45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다. 볼넷과 삼진의 비율도 대략 1:1 정도였는데 최근 볼넷 숫자가 삼진에 비해 더 많아지는 형국(19:14)이다. 심리적인 변화의 영향도 있겠지만, 직구나 주무기로 사용하고 있는 슬라이더를 효과적으로 뒷받침해줄 만한 커브나 체인지업의 제구력이 아직 확실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것이 부진에 빠진 주된 이유라는 분석이다. 투수 자원이 풍족한 팀에서라면 잠시 2군에 내려가 몸과 마음을 추스릴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볼만도 하련만 팀 사정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질 못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김혁민의 기록은 악화일로다. 아직은 규정투구회수(팀이 치른 경기수와 동일)를 채우지 못해 투수부문 서열에서 그의 기록이 수면위로 떠오르지 않고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가히 독보적(?)이다. 특히 평균자책점 부문이 그렇다. 현재 한국프로야구에서 규정투구회수를 넘긴 투수들을 대상으로 집계한 방어율 순위에서 역대 최고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던 선수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김동철(1982년)이다. 당시 김동철은 32경기에 등판해 93이닝(규정투구회수는 80이닝)을 던지며 1승 9패의 성적을 남긴 바 있는데, 그 때 작성된 7.06이라는 고난도(?) 방어율 기록이 무려 27년이 지난 지금에도 불멸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김혁민이 이 케케묵은 기록을 갈아치울 가능성이 농후해지고 있다. 현재(7월 7일)까지 김혁민의 방어율은 8.45, 투구회수는 71⅓1이닝이며 한화가 치른 총 경기수는 76경기로 언제든지 규정투구회수 내로의 진입이 가능한 상태다. 다만 걸림돌(?)이 있다면 조기강판. 4, 5일을 쉬고 등판이 이루어지는 선발투수의 특성상 앞으로도 매번 5이닝 정도는 견뎌주어야 종국에 규정투구회수를 넘길 수 있다.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들 중에서 가장 낮은 타율을 기록한 선수를 흔히 ‘멘도사라인(Mendoza Line)’으로 부른다. 그러면 반대로 규정투구회수를 채운 투수들 중에서 가장 높은 방어율을 기록한 선수는 뭐라 부르면 좋을까? 187cm의 키에 85kg 안팎의 균형잡힌 몸매를 가진 정통파 투수로 2007년 2차지명 1순위(5번)로 한화에 입단한 고졸신인 김혁민.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기대되는 차세대 유망주 김혁민의 ‘최고 방어율을 향한 무모한(?) 도전’은 현재 진행 형이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김혁민의 힘찬 투구 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