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진을 추가할 때마다 K가 하나씩 늘어갔다. 류현진이나 송진우가 등판해 삼진을 잡을 때마다 K를 걸어놓곤 하는 전광판 옆 공간이 하얀색의 K로 촘촘히 메워져 가고 있었다. 10개를 넘어서자 몇 개나 잡았는지 세어보는 일도 쉽지 않았다. 간격도 없는 하얀색의 K가 다닥다닥 붙어있어 세다가 헷갈려 다시 세어보기도 했다. 7월 30일, 두산과의 홈경기에서는 탈삼진 1위(135개)를 달리고 있는 한화 에이스 류현진의 화려한 삼진 쇼가 펼쳐졌다. 7회까지 무려 14K. 이닝당 2개꼴이었다. 투구 수 조절만 잘 했으면 남은 이닝에서 더 많은 삼진을 기대해 볼 만도 한 상황이었지만 7회초가 끝났을 때 이미 류현진의 투구수는 125개에 달해 있었다. 한 경기 14K는 류현진 개인의 최다 탈삼진 타이기록이자 올 시즌 투수 개인의 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이다. 바로 얼마 전인 7월 11일 LG전에서도 류현진은 14K를 솎아내며 완봉승을 거둔 적이 있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나고 이날 류현진의 이름 앞에는 최다 탈삼진을 기념할 만한 훈장대신 ‘패전투수’임을 알리는 대문자 ‘L’이 따라 붙었다. 김동주와 손시헌(이상 두산)의 솔로 홈런 2방에 1-2로 팀이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지난 5월 24일에는 SK의 좌완 전병두가 13개의 탈삼진을 기록하고도 역시 패전투수가 된 적이 있는데, 그날의 맞상대 역시 두산이었다. 그런데 많은 탈삼진을 기록하고도 패전투수가 된 이 두 경기의 내용이 너무도 흡사하다. 전병두 역시 두산의 김동주와 정수빈에게 허용한 솔로 홈런 2방에 한 점차(스코어 1-2)의 아쉬운 승부를 패전으로 접어야 했던 것이다. 과거를 뒤져보면 한 경기에서 14개의 탈삼진을 기록하고도 패전투수가 되어야 했던 쓰라린 기억은 류현진이 처음은 아니다. 삼성 배영수에게도 있었다. 배영수는 2005년 4월 8일 현대(대구구장)전에서 9이닝 동안 14개의 탈삼진을 뺏어냈지만 끝내 완투패로 끝을 맺었다. 이날 스코어도 1-2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허망한 경우가 있었다. 1983년 6월 7일 최동원(롯데)은 삼성과의 홈경기(구덕구장)에서 9이닝 동안 자그마치 16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는데도 0-5,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당시 타격의 천재로 칭송되던 장효조(삼성)를 하루에 4번이나 삼진(5타석)으로 돌려세울 만큼 강속구위주의 대단한 피칭을 구사했건만, 9안타(2홈런 포함)의 뭇매를 맞으며 ‘한 경기 최다 탈삼진 패전투수’라는 달갑지 않은 멍에를 덮어써야 했다. 그리고 그 기록은 지금까지도 난공불락으로 남아있다. 현재 한국프로야구 한 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은 선동렬(해태)이 보유하고 있다. 1991년 6월 19일(광주) 빙그레를 상대로 기록한 18K가 최다기록이다. 당시 선발 맞상대였던 한희민(빙그레)과 장장 13이닝의 완투대결을 펼친 끝에 일궈낸 기록이다. 그러나 둘 다 승리투수가 되진 못했다. 경기가 1-1 무승부로 끝이 났기 때문이다. 그날 선동렬의 서슬 시퍼런(?) 구위를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기억을 돌이켜보자면 선동렬 앞에 서 있던 주심은 좀 과장되게 말하면 기계와도 같았다. 공이 들어오면 자연스레 손이 올라가고…. 그 만큼 선동렬이 뿌려대는 공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한편 연장전을 제외한 정규이닝(9회)만으로 그 범위를 좁혀보면 16K가 경기 최다 탈삼진이다. 앞서 언급한 불운의 최동원 외에 선동렬이 또 한번 이름을 올리고 있다. 1992년 4월, 5-0으로 승리한 OB전(잠실)에서 16K를 잡아냈다. 이대진(해태)도 16K 멤버다. 1998년 5월 현대(인천 도원구장)와의 원정경기(4-0승)에서 기록했다. 여기에 10타자 연속삼진 기록까지 덤으로 챙겼다. 그 밖에도 1995년 김상진(OB)의 17K(12회, 1-0승), 1993년 김홍집(태평양)의 16K(13회, 4-3승), 1992년 강길룡(쌍방울)의 15K(9회, 4-0승), 그리고 1990년 최창호(태평양)의 15K(12회, 3-2승) 등도 경기 최다 탈삼진 관련 기록에 승리투수와 함께 그 족적을 새겨놓고 있다. 흔히 삼진을 피칭의 꽃으로 부른다. 그렇지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승리로 가는 바로미터는 아니다. 눈앞에서 넘실대는 K는 자칫 투수에게 탈삼진에 대한 과욕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으며, 투수 스스로 볼에 대한 자신감이 지나쳐 타자와의 성급한 승부를 택하게 만드는 악재가 되기도 한다. 때문에 줄 삼진을 뺏으면서도 갑작스런 큰 것 한방에 궁지로 몰리는 신세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 그런 연유에서다. 그 앞자락에 16K의 최동원이 있었다. 14개의 탈삼진을 기록하고서도 홈런 두 방에 울어야 했던 류현진의 경기 최다 탈삼진 패전은 그저 좌완투수 부문에 한정된 기록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