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점점 어려워지는 ‘ 행운의 구원승’
OSEN 기자
발행 2009.08.11 13: 02

최근 구원승을 놓고 공식기록원들이 골머리를 앓는 일이 잦아졌다. 이는 그 어느 해보다도 포스트 시즌 진출을 향한 상위권 팀들의 순위다툼이 치열하다 못해 피를 말리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만큼, 각 팀들의 마운드 운용 또한 이것저것 따져볼 여유 없이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는 또 하나의 반증이라고 보여진다. 과거에도 ‘구원승’ 한 자리를 놓고 발생하는 고정관념적 이론규정과의 불협화음은 간혹 있어왔다. 그리고 그 불협화음의 주된 원인은 리드시점을 갖고 있는 투수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는 곳에서 늘 출발하곤 했다. 필자는 오래 전 구원승의 기준이 전에 비해 조금씩 진화하고 있음을 장황하게 설명한 바 있다. 그런데 요즘 일어난 몇 차례의 구원승 결정사례를 살펴보면 ‘진화과정’이라는 말로 표현한 현상들이 현장에서 어떤 방향으로 해석되고 있는 지를 잘 알 수 있다. 사례1) 지난 6월 21일 목동구장에서 열렸던 히어로즈와 한화의 더블헤더 1차전. 히어로즈는 2-5로 뒤지고 있던 5회초 1사 후, 선발 강윤구를 마운드에서 내리고 황두성을 올렸다. 볼넷 2개를 내주었지만 아웃카운트 2개를 잡고 무실점으로 마무리. 돌아선 5회말 반격에서 히어로즈는 대거 6득점하며 8-5로 전세를 뒤집었다. 6회초에 황두성은 다시 마운드에 올라왔지만 선두타자에게 볼넷을 내주었고, 김시진 감독은 이 대목에서 황두성을 빼고 이보근 카드를 선택했다. 그 후 이보근은 9회까지 남은 4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팀의 리드를 끝까지 지켜냈다. 이날 경기의 승리투수는 리드시점을 갖고 있던 황두성이 아닌 이보근이었다. 그러면 왜 황두성은 리드시점을 안고 있으면서도 구원승에서 소외되어야 했을까? 핵심은 투구이닝 차이의 과다였다. ⅔이닝과 4이닝. 여기에 몇 가지 사항이 더 고려되었다. 황두성이 남은 5회를 잘 막아낸 것까지는 좋았지만 8-5 역전 후, 6회초 선두타자를 볼넷으로 출루시키고 강판된 것은 경기를 다시 미궁으로 몰고 갔다는 점에서 마이너스 요인이었다. 경기 종반이라면 구원투수들의 힘을 빌 수도 있는 상황이었겠지만 이후 남은 이닝이 너무 길었다. 또 하나는 황두성의 등판시기다. 접전이 아닌 3점차로 뒤지고 있을 때 마운드에 올랐다는 점은 비록 팀이 단박에 역전을 시켜 리드시점을 보유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성격상 행운의 요소가 다분했다. 그리고 그 행운을 현실화 시킬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이어가지 못했다. 사례2) 8월 6일 대구에서 열린 삼성과 한화의 경기에서는 리드시점을 갖고 있는 투수가 구원승 결정에서 또 한번 물을(?) 먹었다. 2-4로 뒤지던 삼성은 3회초 1사 1루에서 선발을 내리고 이우선을 투입했다. 이우선은 3회를 잘 마무리지었고 돌아선 3회말 삼성은 5점을 한꺼번에 뽑아내며 7-4 역전에 성공했다. 리드시점을 갖게 된 이우선은 4회초에 계속해서 마운드에 남았지만 볼넷 3개와 2안타를 집중 허용하며 2실점, 7-6 박빙의 리드상황으로 몰리게 되었다. 그러고도 주자는 여전히 2사 2, 3루. 한방에 역전 당할 위기였다. 삼성은 이후 이우선(1 ⅓1이닝)의 뒤를 이은 최원제와 정현욱(2 ⅔이닝)의 힘을 빌어 1점차의 리드를 간신히 지켜낼 수 있었다. 한편 이날의 구원승은 6회초 1사 만루의 위기에서 올라와 8회까지 무실점으로 버텨낸 정현욱에게 돌아갔다. 리드시점의 이우선이 구원승 결정에서 탈락한 이유는 투구이닝의 차이가 아닌 내용(4회초) 때문이었다. 여기에 경기에서 물러난 시점이 4회라는 것은, 아직 경기 초반으로 향후 벌어질 승패의 향방을 점치기엔 너무 이르다는 사실도 한껏 고려되었다. 이 외에도 비슷한 사례가 더 있긴 하지만 일일이 열거하기엔 너무 길어 보여 말하고자 하는 내용으로 바로 들어가도록 한다. 리드시점은 예로부터 구원승을 결정하는데 있어 가장 비중 있는 덕목(?)이었고, 그 기준은 지금에도 변함이 없다. 야구규칙(10.19)에도 구원투수가 던지고 있는 동안 리드를 잡고 그 리드가 끝까지 유지되었을 경우, 해당투수에게 구원승을 기록하도록 되어 있다. 다만 예외로 그 구원투수가 잠시 동안(과거 규칙에는 일시적으로 표현) 비효과적인 투구를 하고, 뒤에 나온 투수가 리드유지에 더 효과적인 투구를 했을 경우, 나중에 나온 구원투수에게 승리투수를 기록하도록 따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판단은 기록원의 재량권에 맡겨지고 있다. 과거 리드시점을 갖고 있는 투수를 구원승에서 제외시키는 일은 흔치 않았다. 일시적이고 비효과적 투구라는 의미를 상당부분 제한해서 해석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모양새가 우스꽝스런 로또 복권(?) 같은 구원승도 가끔 나타나곤 했다. 그러나 지금(좀더 정확히 말하면 1990년대 후반부터)은 구원승의 기준이 좀더 까다로워졌다. 리드시점을 갖고 있는 투수라도 내용이 상당히 좋지 못하다거나, 뒤에 나온 투수에 비해 투구이닝이 지나치게 짧다거나 했을 경우(경기종반은 제외)는 거의 구원승에서 제외되고 있다. 리드시점을 잡은 이닝이 너무 경기초반에 해당되었을 경우에도 불리하다. 또한 팀이 많이 뒤지고 있을 때 잡은 리드시점과 접전 중에 얻은 리드시점도 그 대우가 틀리다. 해당투수가 등판할 당시의 상황과 물러날 당시의 상황도 고려된다. 커다란 위기에서 등판한 투수는 이닝이 짧더라도 푸대접 받을 가능성이 적다. 반면 팀을 풍전등화 상태로 만들어놓고 물러난 투수라면 기록에서도 역적(?) 취급을 받을 확률이 높다. 이러한 규정변화 또는 진화의 진원지는 구원승 결정권을 쥐고 있는 공식기록원들의 머리가 아니다. 선수의 진정한 노력과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주려는 구단과 선수들의 바람이 그 진원지다. 물론 팀마다 작성되고 있는 선수고과표와 공식기록은 완전히 일치할 수 없다. 항목에 따라서는 같은 상황을 놓고도 물과 기름처럼 전혀 다른 결과물로도 나타난다. 그렇지만 고과표와 공식기록의 큰 흐름은 전체적인 궤를 같이하고 있다. 또 그래야만 공식기록도 생명력 있는 살아있는 기록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구원승 말고도 도처에서 싹을 틔우고 있는 중이다. 타구 또는 수비판정이나 도루판정 그리고 자책점 결정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야구의 기술이 발전하는 것처럼 기록 역시 그 흐름에 맞는 변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구원승 결정 기준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금 진화중이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정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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