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도루왕 가는 길의 복병 ‘무관심 도루’
OSEN 기자
발행 2009.08.19 11: 08

지난 2002년, 그 동안 사문화 취급을 받아오던 무관심 도루(정확히 말하자면 무관심 진루) 규정을 실제 적용하기로 전격 결정했을 당시, 기다렸다는 듯 많은 질문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황당한(?) 질문이 하나 있었으니…. 도루왕 타이틀이 걸린 선수간의 경쟁에서 상대가 무관심 도루 규정을 역이용해 악용할 경우, 이를 어떻게 분별할 것이며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지가 질문의 핵심이었다. 상상화를 그려보면, 도루부문 1, 2위를 다투고 있는 선수가 소속 팀간의 경기에서 특정 팀이 도루경쟁 중인 상대 선수의 도루 행위에 대해 고의로 무관심한 척, 주자를 묶어두지도 않고 다음 루를 향해 뛰었다 하더라도 아예 송구조차 하지 않는 등의 방임성 플레이를 했다는 가정을 놓고 하는 말이었다. 당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이와 같은 질문에 속 시원한 답을 내놓기가 다소 막막한 구석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답이 없지는 않았다. 무관심 도루 적용에 있어 그 기준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기저를 이루고 있는 한 가지 대전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물 건너간(?) 경기에 적용되는 규정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점수차가 크더라도 경기 중반 이전에 적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개 8회나 9회가 된다. 상대가 아무리 고의로 주자견제를 태만히 하고, 뛰어도 모르는 체 고개를 돌렸다 해도 당시 점수차나 이닝 등의 경기상황이 정상적이었다면 무관심 도루의 적용은 없다고 보면 된다. 물론 무관심 도루의 적용여부는 선수들의 플레이 형태에 따라 그 판단이 크게 좌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1루수가 1루주자를 묶어두는 것을 완전히 포기하고 뒤로 물러나 정상적인 수비위치를 잡고 있었을 경우가 우선 무관심 도루 대상으로 고려된다. 그리고 다음은 포수의 견제동작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이며, 마지막으로 주자가 향하고 있는 다음 루에 수비수가 전혀 들어가지 않았을 때에도 무관심 도루 적용 대상이 된다.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상황이 한꺼번에 모두 나타났다면 100% 무관심 도루가 적용된다. 그러나 한 가지 또는 두 가지 상황만 일어났다면 약간의 추가적인 생각이 필요하다. 지난 8월 6일 잠실에서 열렸던 LG와 KIA의 경기에서 도루부문 선두를 달리고 있는 LG의 이대형은 팀이 6-11로 뒤지고 있던 9회말 1사 2루 상황에서 3루를 훔쳤지만 무관심 도루로 기록된 적이 있다. 당시 이대형이 3루로 향할 때 포수 김상훈(KIA)이 일어나 공을 던지려는 시늉을 하긴 했지만, 투수가 전혀 견제할 생각이 없었다는 점과 3루수 박기남이 이대형을 쫓아 들어가지 않았다는 장면이 반영돼 무관심 도루로 기록된 것이었다. 그러나 전광판에는 이대형이 3루로 들어가자 도루임을 알리는 애니메이션이 작동되었고, 이를 통해 당연히 도루로 기록된 것으로 알았던 LG는 이대형의 도루기록이 인정 받지 못한 것을 알고 부랴부랴 사실확인에 나서야 했고, ‘무관심 도루의 기준은 무엇인가?’하는 문제는 또 한번 도마 위에 올라야 했다. 말 나온 김에 설명을 첨가하자면 앞서 말한 수비수의 플레이상 형태 말고도 몇 가지의 기준이 더 존재한다. 우선 1사나 2사 때 풀카운트(2-3)에서는 밀려가는 주자(포스 상태)의 뜀박질에 대해서는 무관심 도루로 기록하지 않고 있다. 이는 루를 훔치려는 의도로 보기보다 팀 플레이에 의한 자연스러운 주루현상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타자가 헛스윙해 삼진을 당하고 주자는 살았다면 무조건 도루다. 또한 지나친 무관심 도루의 폭증과 남발을 막기 위해 일정 점수차 이내(대개 3점차 정도) 상황에서의 진루 행위에 대해서도 역시 무관심 도루 적용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한편 지금까지 무관심 도루가 기록된 전례를 뒤져보면 그 해 도루 1위에 올랐던 선수에게 무관심 도루가 기록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2002년 김종국 이후 이종범(2003)-전준호(2004)-박용택(05)-이종욱(2006)과 2007년부터 2년 연속 도루 1위에 올랐던 이대형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공통된 현상이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대도들은 아무 때나 뛰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덧붙인다면 그 동안 도루부문 타이틀을 놓고 막판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였던 기억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2년 이후 1, 2위간 격차가 가장 근접했던 해는 2005년의 박용택(LG, 43도루)과 윤승균(두산, 39도루)으로 ‘4개’ 차이였다. 하지만 올 해는 근년 들어 그 어느 때보다도 도루왕을 가운데 둔 뜨거운 질주경쟁이 벌어질 듯한 분위기다. 8월 18일 현재 43개로 도루부문 3연패를 향해 매진하고 있는 이대형의 뒤를 정근우(SK)가 불과 3개 차로 바짝 뒤쫓고 있다. 막바지에 접어든 지금, LG와 SK가 남겨둔 경기는 양 팀 모두 똑 같은 22경기. 아직까지는 이대형이 유리해 보이지만 도루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출루율에서 정근우(.421)가 이대형(.340)에 비해 무려 1할 가까이 앞서있다는 점은 섣부른 예측을 불허한다. 이제 도루왕을 놓고 LG와 SK가 맞대결을 벌일 수 있는 시즌 잔여 경기수는 단 3경기뿐이다. 구체적인 잔여경기 일정이 아직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모두 9월 이후에 벌어질 예정이다. 이쯤에서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남은 두 팀간의 경기가 한 팀이 일방적으로 밀리는 모양새가 아니라 끝까지 접전으로 이어져 주길 바랄 뿐이다. 그래야만 무관심 도루가 도루왕을 향한 두 선수의 발목을 잡는, 혹시라도 있을 불상사(?)를 미리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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