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알쏭달쏭, 로페즈의 피홈런 1위
OSEN 기자
발행 2009.08.26 10: 25

1997년 이후 12년만의 통산 10번째 우승을 향한 KIA의 거침없는 행보는 실질적 에이스 윤석민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선발 로테이션의 안정세가 그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시즌 내내 릭 구톰슨(32. 미국)과 아킬리노 로페즈(34. 도미니카)라는 두 외국인 투수가 보여주고 있는 기복없는 투구역량은 가시권에 들어온 12년만의 KIA 한국시리즈 진출 논공행상에 있어 그 비중을 따질 때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무게감을 느끼게 한다.
두 투수의 기록적인 면을 살펴보면 언뜻 평범해 두드러진 면을 찾기 어려워보이기도 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상당히 실속이 있는 편이다. 그 가운데 특히 눈길이 가는 부분은 로페즈의 피홈런에 관한 기록이다.
로페즈는 8월 26일 현재 규정투구회수(팀이 치른 경기수와 동일)를 넘긴 16명의 투수들 중에서 피홈런 부문 1위에 올라있다. 151⅓이닝 동안 로페즈가 얻어맞은 홈런은 고작(?) 4개뿐이다. 뒤를 이어 프란시스코 크루세타(삼성)가 9개의 피홈런으로 2위를 달리고 있다.
643명의 타자를 맞이해 161안타를 허용하면서도 피홈런수가 불과 4개에 그쳤다는 사실은 그의 구위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실을 대변하고 있는데, 그 이면에 숨은 내용을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요소를 하나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로페즈가 유독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 시즌 로페즈가 히어로즈를 상대로 등판한 경우는 모두 2번. 지난 6월 27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로페즈는 1회초 시작하자마자 정수성에게 선두타자 홈런을 얻어맞은 것을 신호탄으로 브룸바에게도 홈런을 내주는 등, 최악의 피칭을 기록한 바 있다. 이날 로페즈는 무려 8실점(7자책)하며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내용이 만신창이로 헤진 경기가 또 하나 있었다. 6월 10일, 역시 히어로즈와의 목동 경기에서다.
그날 로페즈는 팀이 6-0으로 앞서가던 3회말, 클락을 시작으로 황재균, 브룸바, 송지만에게 무더기 홈런을 내주며 1이닝 동안 대거 5실점하고 말았다.
한 명의 투수가 1이닝 동안 홈런을 4개나 몰아맞는 정신못차린 상황은 지금까지 딱 2번 있었다. 1996년 삼성의 박석진(대구구장 해태전)과 2001년 한화의 한용덕(대구구장 삼성전)이 각각 수렁에 빠진 바 있다. 따라서 로페즈로선 진귀한(?) 기록의 역대 3번째 달성자였던 셈이다.
그러나 로페즈의 불명예스런 대기록(?)은 하늘의 은총을 받아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8-5로 앞서던 4회초, 퍼붓는 비로 인해 경기가 끝내 노게임으로 선언되고 만 것이다.
만일 그 경기가 노게임이 안되었다면 로페즈의 피홈런은 최소한 8개 이상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팀이 리드하고 있던 상황이라 승리투수가 날아갔다고 항변할 수도 있지만, 그날의 경기 흐름은 KIA가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아까워만 할 일은 아닌 듯 싶다.
피홈런이 적은 것과 정반대로 홈런을 가장 많이 허용하고 있는 투수는 누구일까? 올 시즌은 안영명(한화)이 단연 1위를 달리고 있는 중이다. 그가 허용한 홈런수는 모두 27개(112⅔이닝). 지금 추세로 볼 때 자칫하면 역대 한 시즌 개인최다 피홈런(31개) 기록을 바꿀 수도 있는 위기국면에 몰려있다.
과거 역대기록으로 범위를 넓히면 1999년의 곽현희(해태)가 단연 두드러진다. 총 31개의 홈런을 허용했다. 그가 소화한 이닝은 146⅓이닝. 엄청난 피홈런 수치와 허망한 평균자책점(6.15)에도 곽현희가 챙긴 승수는 11승이나 되었다. ‘홈런공장장’으로 불리던 이강철(해태)은 29개(1992년)의 피홈런으로 역대 2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러면 로페즈의 한 시즌 피홈런 4개는 특급 수준일까? 아니다. 1988년 최일언(OB)은 115⅔ 이닝동안 홈런을 단 1개도 허용치 않았다. 유일한 피홈런 ‘0’ 투수다. 그러나 승수는 고작 6승. 최일언은 1986년에도 221⅔이닝동안 단 2개의 홈런만을 내주었을 정도로 피홈런 부문에서는 대표적인 짠돌이로 통한다.
한 시즌이 아닌 개인통산 기록으로 기준점을 바꿔보면, 송진우(한화)가 투구이닝 ‘3000’을 넘는 대기록을 작성한 반대급부로 가장 많은 홈런을 얻어맞았다. 통산 피홈런이 270개다.
1500이닝 이상을 투구한 역대 투수들을 총망라해 살펴보니 개인통산 피홈런 100걸안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유일한 투수가 존재하고 있었다. 짐작이 어렵지 않았겠지만 예상대로 선동렬이었다.
1647이닝(5612타수)동안 선동렬이 던진 공이 펜스밖으로 넘어가버린 경우는 불과 28번 뿐이었다. 웬만한 투수가 한 시즌에 허용한 홈런수보다도 적은 수치다.
다시 처음 얘기로 돌아와, 무게감이 있는 듯 없어보이는 알듯말듯한 로페즈의 피홈런 기록은 그의 성격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의 등판일지를 보면 가끔 심한 난조에 빠졌을 때가 눈에 띈다. 주위의 평을 빌자면 구톰슨에 비해 쉽게 달아오르는 성격이라고 한다. 이 말은 평정심을 잃었을 경우에는 그의 묵직한 공이 날개를 달고 담장너머 어디로 날아갈 지 모를 상태로 변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똑 같은 사람의 똑 같은 기량이지만 야구가 멘탈게임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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