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을 흥분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었던 베이징 올림픽(2008)과 WBC(2009)에서의 한국야구. 그 야구대표팀의 에이스(류현진)와 4번 타자(김태균)를 함께 보유한 복 받은 구단이지만, 마운드의 극심한 노쇠화로 인한 전투력 감퇴와 이를 메워줄 만한 영 건들의 성장세 둔화로 한화는 올 시즌 내내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묘하게도 베이징 올림픽 휴식기를 기점으로 해서 경기력이 급격한 하향곡선을 그려내며 팀 순위가 아래를 향해 곤두박질쳤던 지난 해 8월은, 지금 눈 앞에 놓인 성적표를 보자니 어쩌면 일종의 암시였다는 생각마저도 든다. 지난해 올림픽이 열리기 전인 7월말까지만 해도 안정적인 주행으로 3위를 유지하고 있던 한화는, 올림픽이 끝난 이후 포스트 시즌을 향한 굳히기 승부처에서 초반 16경기 중 겨우 3승만을 건져 올리는 최악의 흉작으로 따놓은 당상쯤으로 여겼던 4강진출의 꿈이 가로막히는 좌절을 맛보았다. 그런데 믿고 싶지 않은 참담한 결과보다도 더 우려되었던 부분은 류현진이 등판했던 날에 거둔 3승을 제외한다면, 여타 경기에서는 단 1승도 따내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류현진을 제외하면 전패나 다름없었다. 물론 이처럼 꽉 막힌 숨통을 어느 정도 트이게 해줄 수 있는 외국인 선수 선발이라는 구원병 보충의 기회를 팀 마다 가지고 있지만, 한화에는 이마저도 별 도움이 안되었다. 외국인 선수 1명을 투수(토마스)로 택했지만 ‘금강산도 식후경’, 선발이 아닌 마무리 전담이었기 때문이다. 한화의 토마스는 지난해 31세이브로 구원부문 전체 2위에 랭크 된 바 있는 수준급의 마무리 투수다. 하지만 올 시즌 토마스가 거둔 세이브 숫자는 9월 2일 현재 겨우 ‘10’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의 126경기보다 팀 당 7경기씩이 늘어났지만 토마스의 세이브는 늘어난 경기수와는 반대로 역 주행상태다. 토마스는 6월 5일 SK전에서 세이브(8호)를 따낸 이후, 세이브를 전혀 추가하지 못하고 있다가 8월 23일(대 히어로즈전)에 가서야 시즌 9번째 세이브를 따낼 수 있었다. 그로선 무려 78일만의 세이브였다. 팀으로서도 6월 19일 양훈의 마지막 세이브(목동, 히어로즈전) 이후 64일 동안 세이브를 그려 넣지 못했다. 지금까지 116경기를 소화한 한화가 기록중인 시즌 세이브 숫자는 총 12개. 실로 빈약하기 짝이 없는 기록이다. 세이브라는 기록이 승리와 아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바로미터임을 감안할 때 한화의 부진을 또 하나의 통계가 대변해 주고 있는 대목이다. 아직 시즌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한화의 시즌 세이브 12개는 팀 당 133경기를 치렀던 해(2000~2004년)를 기준으로 한다면 팀 최소 세이브에 해당된다. 2002년 롯데가 13세이브를 기록한 바 있다. 126경기 이상을 치르기 시작한 1991년부터 따져본다면 역대 최소 세이브 부문 2위의 기록이다. 1991년 OB가 기록한 11세이브가 시즌 최소로 올라있다. 세이브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던 2002년 롯데나 1991년 OB 역시도 올 시즌 한화처럼 그 해 보잘 것 없는 승률로 예외없이 꼴찌 자리에 둥지를 틀어야 했다. 다만 가뭄에 콩 나듯 좀처럼 늘지 않는 세이브 숫자지만, 한화가 그나마 다행스럽게 여길 수 있는 부분은 구원투수의 힘을 빌지 않고 이기는 경우가 종종 나타났다는 점이다. 물론 반대급부로 박빙의 리드가 아닌 여유 있는 승리 또한 패전경기와 마찬가지로 토마스에겐 세이브를 따내기 어렵게 만드는 또 하나의 원인이 되어주었지만…. 그러면 프로야구 역대 통산 가장 적은 세이브를 기록한 팀은 어디일까? 꼭대기에 두 팀이 올라있었다. 해태(1982년, 80경기)와 빙그레(1986년, 108경기)다. 1년 내내 두 팀이 쓸어모은 세이브는 달랑 3개씩뿐이다. 다만 두 팀간에 차이점이 있다면 예상대로 꼴찌를 면치 못한 빙그레와는 달리 해태는 그 해에 4위를 차지했다. (물론 포스트시즌 진출은 실패) 반대로 가장 많은 세이브를 기록한 팀은 두산으로 2000년 진필중(42세이브)을 앞세워 52세이브를 챙겼다. 개인최다는 2006년 오승환(삼성)의 47세이브. 남은 시즌 한화 또는 토마스가 얼마나 세이브 숫자를 늘리게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개점 반 휴업상태에 들어가 있는 토마스를 바라보면 빙그레 인수(1993년 11월) 이후 16년 만에 처음으로 꼴찌라는 낯선 자리를 예약(?)해 둔 한화의 깊은 시름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