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야구기록의 적자(嫡子)와 서자(庶子)
OSEN 기자
발행 2009.09.21 14: 50

2008년 골든글러브 지명타자 부문 수상자로 홍성흔이 결정되자 그의 신분을 둘러싼 작은 물음이 일었다. 시즌 내내 몸을 담았던 팀은 두산이었는데 시즌이 끝나고 난 뒤 롯데로 팀을 옮기게 되자(FA), 수상자 홍성흔의 소속 팀을 어디로 볼 것인지를 놓고 생겨난 물음이 바로 그것이었다. 홍성흔이 일군 성적만 놓고 볼 때는 당연 두산의 골든글러브로 봐야 마땅하겠지만, 수상 시점 홍성흔의 소속팀은 롯데로 돌변(?)해 있었다. 결론은 어렵지 않게 내려졌다. 과거 김광림(1993년, OB-쌍방울)이나 한대화(1993년, 해태-LG) 등도 비슷한 경우였듯이, 모두 새로이 소속된 팀의 신분으로 인정했던 전례가 있었다. 따라서 홍성흔의 소속도 롯데였다. 그런데 상이 아닌 기록에서도 이와 비슷한 궁금증이 나타났다. LG의 페타지니가 지난 9월 18일 KIA전(광주)에서 시즌 100타점을 돌파하자 생겨난 또 하나의 물음으로, 페타지니의 100타점을 LG 소속 선수가 세운 첫 번째 기록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그 내용의 골자였다. 왜냐하면 2000년에 삼성에서 LG로 시즌 중 트레이드 되었던 외국인 선수 스미스가 이미 LG소속 신분으로 100타점(삼성 57, LG 43타점)을 올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스미스의 기록을 LG선수가 세운 첫 번째 100타점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면 페타지니가 LG 최초의 100타점 수립자로 이름을 새기게 되는 상황이었다. 현장에서도 이 해석을 놓고 의견이 분분한 모양이었다. 이 건에 대한 유권해석을 어떻게 해야 좋을 지를 묻는 질문에 필자는 홍성흔의 예를 들어 페타지니의 기록은 두 번째 달성자로 봐야 한다는 답을 내렸다. LG로서는 순수하게 LG 신분의 선수로서 이룬 페타지니의 100타점 기록이 더 귀하고 가치 있게 생각되겠지만, 기록이라는 것은 선수가 기록을 달성할 당시의 소속이 어디였는지를 놓고 판단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로 되어 있다. 스미스가 2000년 당시 삼성 소속으로 LG전에서 올린 타점도 ‘100타점’ 안에 분명 들어있겠지만, 그래서 LG의 기록으로 인정하는 것이 달갑지 않을 수 있겠지만, 기록을 작성할 당시 스미스의 소속이 LG였기 때문에 LG 최초의 100타점 달성자는 스미스로 봐야 한다. 대신 LG가 순수 혈통(?)을 따로 관리하고 싶다면 스미스의 기록 옆에 부연설명을 덧붙여 페타지니 기록의 순도를 높여주면 된다. 이는 팀 스스로가 기록을 따로 관리하는 방법이다. 내용은 다르지만 이런 경우도 있다. 한국프로야구 노히트노런 기록 수립자 명단에 정식 회원이 아니면서도 늘 빠지지 않는 이름이 하나 있다. 고 박동희(당시 롯데) 선수다. 그는 1993년 5월 13일 쌍방울을 상대로 5이닝 동안 노히트노런을 이어갔지만, 경기가 완성도 아닌 미완성도 아닌 5회 강우콜드게임(4-0승) 상태로 끝나버리는 바람에, 지금까지 늘 기록 앞에 혹처럼 달린 별(콜드게임)을 떼어내지 못하고 있다. 당시 박동희의 기록이 정식기록으로 인정을 받았다면 프로통산 8번째 노히트노런으로서 역사에 길이 남을 수 있었겠지만 함량미달로 꿈을 접어야 했다. 이 역시 별도 관리되고 있는 기록의 예라 하겠다. 본론으로 돌아와 선수의 기록을 어느 특정 팀에서 올린 기록만을 별도로 계산해 별도 취급하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다. 프로 스포츠 선수에게는 어느 한 팀에서만 계속해서 뛸 수 있는 선택권이 없다. 팀의 필요에 의해서 얼마든지 선수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다른 팀으로의 이적이 가능하다. 이처럼 타의에 의해 팀을 옮기게 될 때마다 해당 선수의 기록을 팀 별로 잘게 쪼개 따로따로 취급한다면 해당 선수의 기록은 형체도 없이 의미를 잃게 된다. 한 선수가 세운 기록은 동일리그 내라면 그 언제 어느 팀에서 기록을 수립하건 정식기록으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 기념비적인 기록이나 통산기록을 불문하고. 현재 98승을 기록하고 있는 LG의 박명환도 88승은 두산(OB포함)에서 거둔 성적이다. 그 안에는 서울 라이벌 LG를 울게 만든 승수도 물론 들어있다. 가져온 내용물이 예쁘게만 보일 리 없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박명환이 LG에서 100승을 거두게 된다면 팀 통산 3번째 ‘100승 투수’(김용수, 정삼흠 이후)로 공식 인정해야 한다. 다만 김용수나 정삼흠처럼 오로지 LG(전신 MBC포함)에서만 이룬 승수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면 박명환의 기록에 무서운(?) 별표를 달아주면 된다. 이러한 방법은 기록에 관한 가치와 의미를 좀더 세세히 따져준다는 차원에서 나쁠 것이 없다. 오히려 기록에 관한 왜곡된 해석을 막는 안전장치 구실을 한다. 그러고 보니 야구기록에도 순수 혈통을 지켜내며 만든 ‘적자(嫡子)기록’과 이 팀 저 팀 돌아다니며 모은 ‘서자(庶子)기록’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아버님을 아버님이라 부르지 못하고….” 에 나오는 그 유명한 대사다. 기념비적인 기록을 세웠으면서도 팀을 옮겨 다닌 서자(?)라서 당당하게 내세우기가 멋쩍은 기록, 팀에서도 내 집 자식이지만 마냥 예쁘게만 봐 주기 쉽지 않은 기록, 야구기록세계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자화상이라 하겠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홍성흔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