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009 포스트시즌에서는 유독 야구 외적인 요소가 경기에 개입되어 흐름이 중단되거나 승부의 물꼬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SK와 두산의 플레이오프 1차전(문학)에서는 강풍의 영향으로 비거리가 훌쩍 늘어난 두산 타자들의 플라이 타구가 홈런으로 둔갑하는가 하면, 3차전(잠실)에서는 두산의 우익수 정수빈이 평범한 플라이 타구를 쫓다 조명빛에 타구의 궤도를 순간 잃어버려 팀 패배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또한 4차전에서는 박정권(SK)의 좌중간 깊숙한 타구를 관중이 손을 뻗어 잡으려다 건드리는 일이 발생했고, 최종전인 5차전에서는 2회초 두산의 김현수가 선제 솔로홈런을 날리며 막 앞서가기 시작한 순간, 비가 내리는 바람에 결국 노게임이 선언되기도 했다. 한편 한국시리즈에서는 빗줄기 외에도 응원단석에서 뿌린 오색 종이가루나 풍선들이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와 경기진행이 잠시 지체된 일도 있었다. 그 밖에도 경기가 중단되거나 선수들의 플레이를 방해하는 경기 외적인 요소들을 찾아보면 야구가 옥외경기라서 그런지 참으로 다양하다. 메이저리그에서는 갑자기 날아든 수천 마리의 벌떼 때문에 선수는 물론 관중들까지 긴급 피신(2009년 7월, 샌디에이고 vs 휴스턴)하는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고양이나 다람쥐가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와 이를 잡느라 경기 중 부산을 떨기도 한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지만 지난 8월 추신수(클리블랜드)의 끝내기 안타 때는 갈매기가 날아오르며 타구의 방향을 헷갈리게 만드는 바람에 중견수가 타구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각설하고, 야구경기와 어울리지 않는 이러한 불협화음들을 이분법적으로 크게 나누어 본다면 성격상 자연재해(?)와 인재(人災)로 양분할 수 있다. 흔한 예로 햇빛(야간조명 포함)이나 날씨 또는 곤충을 포함한 동물들의 난입으로 발생한 돌발상황들은 대부분 자연재해급에 가깝다. 반면 사람이나 응원도구 등에 의해 뜻하지 않게 벌어진 일들은 인재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도 그렇지만, 야구에서도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인재, 즉 사람에 의한 방해다. 야구규칙에는 이를 대비해 사람들의 방해가 일어났을 경우에 후속조치를 어떻게 취할 것인지를 명시해 놓고 있긴 하다. 야구규칙 에 따르면 ‘타구나 송구에 대해 관중의 방해가 있었을 때는 방해와 동시에 볼 데드가 되며, 심판원은 방해가 없었더라면 경기가 어떠한 상황이 되었을 것인 가를 판단하여 후속조치를 취한다’라고 명기되어 있다. 지난 10월 11일 SK와 두산의 플레이오프 4차전, 7회초 2사 1, 2루에서 박정권(SK)이 친 큼지막한 타구가 외야석 관중의 손에 직접 닿긴 했지만, 타자를 관중의 수비방해로 인한 아웃으로 선언하지 않은 이유는 이 타구를 외야수(김현수)가 도저히 잡을 수 없는 타구로 심판원이 보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해 야수가 충분히 잡을 수 있는 타구였다고 심판원이 판단했다면 김현수의 포구 성공여부와 관계없이 타자 박정권은 관중의 방해에 의한 아웃으로 선언되었을 것이다. 당시 그 상황에서 1루주자(박재상)까지 득점으로 인정한 것을 두고 두산측의 이유 있는(?) 어필이 뒤따랐는데, 1루주자의 득점이 인정된 이유는 2사 후라 박정권의 타구가 터지기 전에 이미 모든 주자가 스타트를 끊었고, 박정권의 장타성 안타가 1루주자도 홈까지 충분히 들어올 수 있을 만한 타구였다고 심판원이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가령 무사나 1사 후라 1루주자가 스타트를 끊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1루주자는 3루에 머물게 할 수도 있었다. 흔히 타구에 대한 관중의 방해가 일어났을 경우, 이를 ‘인정 2루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관중의 방해는 인정 2루타 규칙과는 전혀 별개의 규칙이 적용된다. 한편 관중의 방해가 일어난 지역에 따라 수비측이 관중의 방해 자체를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지난 2003년 플로리다 말린스와 시카고 컵스의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6차전(시리즈 전적, 시카고 3-2 플로리다)에서 나온 관중의 방해를 예로 들어본다. 시카고가 3-0으로 앞서가던 8회초, 1사 주자 2루 상황에서 플로리다의 루이스 카스티요가 날린 큼지막한 파울타구를 잡으려고 시카고 좌익수 모이세스 알루가 관중석 안으로 팔을 뻗었지만, 관중이 내민 손 때문에 글러브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던 타구를 잡지 못한 일이 있었다. 이후 상황이 돌변해 관중의 도움(?)으로 아웃을 모면한 플로리다는 8회초에만 대거 8득점하며 극적으로 최종 승부를 7차전으로 돌렸고, 시카고는 그 후유증으로 플로리다에 7차전마저 허무하게 내주며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 끝내 염소의 저주를 풀지 못했었다. 그러면 그 때는 왜 관중의 방해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일까? 관중의 방해 관련규칙 안에는 다음과 같은 (원주)의 부연설명이 붙어있다. ‘야수가 펜스를 넘어 스탠드 안으로 팔을 뻗어 포구하려 했을 때는 방해를 당하더라도 방해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야수가 스스로 위험을 무릅쓰고 벌이는 플레이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다. 야수가 관중석 안으로 몸이나 팔을 뻗어 포구하려는 시도는 관중의 방해를 포함한 여러 위험을 각오한 수비행위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규칙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는 말이다. 2006 WBC 한-일전에서 일본의 이치로가 관중석으로 날아간 파울타구를 잡으려고 글러브를 내밀었지만 관중이 내민 손과 부딪쳐 타구를 잡는데 실패하자 버럭 화를 낸 적이 있는데, 이런 경우도 같은 맥락의 규칙이 적용된 것이다. 물론 언제일어날 지 모를 갖가지 돌발상황에 대비해 관련규칙이 따로 마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관중의 방해는 명백한 인재(人災)로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다. 2002년 월드시리즈 애너하임과 샌프란시스코의 경기 7차전, 1-1 동점이던 3회말 무사 만루 상황에서 한 관중이 타구를 처리하려던 외야수에게 손을 뻗어 막대풍선으로 두드린 일이 있다. 당시에는 외야수의 플레이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판단하에 경기상황은 그대로 유효로 처리되었지만, 해당 여성관중은 경기장에서 퇴장을 당했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정서상 플레이를 방해한 관중에 대해서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야구경기에서 관전하는 사람들의 경기방해 행위는 설령 그 행위의 목적이 방해가 아닌 공 취득이었다 하더라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선수들이 1년 내내 땀 흘리며 쌓아온 공든 탑이 생각 없는 관중이 저지른 한 순간의 경솔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릴 수도 있음을, 타국의 예를 떠나 꼭 염두에 담아둘 필요가 있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