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KS와 인연을 맺지 못한 비운의 선수들
OSEN 기자
발행 2009.11.09 09: 34

메이저리그의 박찬호와 일본프로야구의 이승엽이 각 국의 2009시즌 최종무대인 월드시리즈와 일본시리즈에 팀의 일원으로 나란히 출전, 분투하는 모습을 보면서 비록 두 선수 모두 시즌 성적은 크게 내세울 것이 없다지만 천운이 없이는 만날 수 없는 큰 무대에서 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올시즌 그들이 얼마나 축복받은 행운아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일본 진출이후 두 번의 우승(2005년 지바 롯데, 2009년 요미우리)을 경험한 이승엽은 그렇다치고 박찬호는 소속 팀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뉴욕 양키스에 패하는 바람에 우승을 놓쳐버렸는데 무슨 행운아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소속 팀이 리그의 챔피언을 가리는 최종전에 진출한다는 것(그것도 팀 수가 30개가 넘는 메이저리그 내에서)이 특정 개인의 능력만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결과물임을 감안한다면 마냥 속 빈 말로 치부할 일도 아니다. 1994년 LA 다저스에 입단한 이후 지난 해(2008)까지 15년 동안 단 한번도 꿈의 무대라고 불리는 월드시리즈에 출전해 본 적이 없던 박찬호다. 되레 5년 늦게 메이저리그에 뛰어든 김병현이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2개씩이나 차지한 것을 보면 제대로 된 우승반지 하나 아직 끼지 못한 박찬호가 일견 초라해보이기도 하지만 이것 또한 생각하기 나름이다. 메이저리그에는 15년 이상에 걸쳐 2000경기 이상을 뛰고도 우승반지는 고사하고 월드시리즈에 한번도 나가보지 못한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이들 중에는 우리 귀에 익숙한 이름도 제법 많다. 통산 630홈런을 기록하고 있는 켄 그리피 주니어(시애틀 매리너스)는 21년(1989~2009년)간 2638경기에 출장했음에도 월드시리즈와는 인연이 전혀 없다. 1990년대 후반 마크 맥과이어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슬러거로 명성을 날렸던 새미 소사 역시 18년(1989~2007년)간의 선수이력에 월드시리즈는 없다. 2000년 한국으로 건너와 삼성에서 잠깐 뛰기도 했던 백전노장 훌리오 프랑코도 23년(1982~2007년)을 이리뛰고 저리뛰었건만 월드시리즈는 딴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상대적으로 팀 수가 8개에 불과한 한국프로야구에도 오랜기간 공을 들이고도 한국시리즈 무대에는 한번도 나가보지 못한 선수가 여럿 존재한다. 투수로는 13년(1983~1995년)간 기교파 투수로 이름을 날렸던 장호연이 먼저 떠오른다. 장호연의 포스트시즌 기록은 1986~87년의 플레이오프 등판 기록이 전부다. 프로에 들어와서도 투수와 타자를 넘나들었던 박노준(OB-해태-쌍방울) 역시 12년 동안(1986~1997년) 마운드에서건 타석에서건 한국시리즈를 한 순간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1989년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했던‘킹콩’박정현(태평양-현대-쌍방울-SK)과 성영재(쌍방울-SK-해태-KIA-두산-LG)도 12년간에 걸쳐 각각 253경기와 304경기에 등판했지만 한국시리즈 마운드사에는 이름이 없다. 타자쪽에서는 박노준 외에 한국프로야구 최다 연속경기 출장기록(1014경기) 보유자인 최태원이 눈에 띈다. 쌍방울과 SK의 유니폼을 입고 11년간(1993~2003년) 1284경기에 출장했지만 1996년 플레이오프 출장기록이 가을기록의 전부다. 여기에 2000년 이후 8년 동안이나 가을야구에 동참하지 못한 여파로 장기간에 걸친 한국시리즈 소외대상 선수로 남아있는 롯데선수들도 눈에 들어온다. 그 중 대표적인 선수는 박기혁과 이대호다. 박기혁은 10년(2000~), 이대호는 9년(2001~)이 지났지만 팀이 한국시리즈까지 올라서지 못해 여전히 미등록상태다. 불행의 척도를 조금 완화해 한국시리즈 우승반지를 기준으로 한다면 투수 최창호(청보-태평양-현대-LG)를 ‘비운의 사나이’쯤으로 부를 수 있다. 16년간(1987~2002년) 한국시리즈에 모두 3번(1994, 1996, 1998년) 올랐지만 그때마다 분루를 삼키며 끝내 우승반지를 손에 끼지 못하고 2002년 은퇴의 길로 들어서야 했다. 1992년 100%의 경이적인 승률을 기록했던 오봉옥(삼성-쌍방울-해태-KIA-한화)이 15년간으로 그 다음을 잇고 있으며, 주형광(롯데)과 성준(삼성)도 14년 경력에 ‘우승’이라는 화룡점정을 하지 못했다. 타자쪽은 타격왕(1997)과 홈런왕(1994)을 각각 한 차례씩 차지했던 김기태(쌍방울-삼성-SK)가 15년간(1991-2005년)을 뛰고도 우승을 경험해보지 못한 무관의 제왕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신동주(삼성-해태-KIA-삼성-KIA) 역시도 15년간(1992~2006년)의 짧지 않은 경력이지만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신동주는 대부분의 선수생활을 삼성이라는 팀에서 보냈음에도 삼성이 사상 처음으로 한국시리즈를 통해 권좌에 올랐던 2002년에는 KIA 소속이었고, 2004년 다시 삼성으로 돌아왔지만, 삼성이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던 2005년 시즌 중반에 다시 KIA로 트레이드 되는 기구한(?) 운명 탓에 우승의 감격을 한번도 맛볼 수 없었다. 지난해를 끝으로 은퇴한 조원우(쌍방울-SK-한화)역시 15년 경력이지만 무관으로 물러났다. 현역으로는 LG의 최동수가 15년(1994~2009년) 최장수 무관이다. 통산 출장경기수가 1061경기에 달하고 한국시리즈 무대에도 두 차례(1997, 2002년)나 서봤지만 우승과는 인연이 아직 닿지 않고 있다. 이들에게는 가을이면 펄펄 날아다니던‘까치’김정수(해태-SK-한화-SK)가 보유중인‘18년 경력(1986~2003년)에 9번의 한국시리즈 진출과 우승반지 8개’라는 찬란한 업적은 차라리 ‘아방궁’처럼 느껴질 만한 일이다. 국내 프로스포츠 구단의 모 감독은 어느 해 시즌 개막 출사표를 통해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다. “시즌 목표는 언제나 최종 결승 진출입니다. 우승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도움이 있어야 하기에 목표로 내세울 수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야구 출범이후 가장 극적이며 감동적이었다는 2009년 한국시리즈의 승자 KIA의 통산 10번째 우승도 놀랄 만한 일이지만, 비록 3연패를 달성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3년 연속(역대 3번째)으로 한국시리즈까지 치고 올라온 SK의 눈부신 성과도 이러한 말을 빌자면 이미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봐도 무방할 듯 싶다. 과거와 현재를 통해 지금까지 또는 아직까지도 한국시리즈와 인연을 맺지 못한 선수들의 풀지 못한‘한(恨)’을 생각해 본다면 더더욱 그렇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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