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십년 동안 월드시리즈에 한번도 올라가 보지 못하는 팀이 수두룩한 메이저리그 내에서 무려 27번이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뉴욕 양키스의 업적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단한 위업임에 틀림이 없다. 1903년에 최초의 월드시리즈(1904, 1994년 무산)가 열렸다는 것을 기준(총 105회)으로 계산해 보면 뉴욕 양키스는 4년마다 한 번꼴로 우승을 차지한 셈이 된다. 특히 올 시즌 한,미,일 3개국의 최종 시리즈가 마치 사전에 약속이나 한 듯, 하나같이 각 국의 역대 최다 우승횟수에 빛나는 KIA 타이거즈(10회)와 뉴욕 양키스(27회) 그리고 요미우리 자이언츠(21회)가 나란히 동반 우승을 차지한 채 막을 내렸다는 사실은 우연치고는 참으로 기막힌 우연이라 하겠다. 하지만 해가 드는 양지의 이면이 가장 어두운 것처럼, 우승을 밥먹듯이 하는 팀에 오랫동안 몸담고 있었으면서도 우승반지 하나 끼어보지 못한 채 쓸쓸히 현역 선수생활을 마감해야 했던 선수들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뉴욕 양키스의 ‘돈 매팅리(Don Mattingly)’가 이와 같은 사례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돈 매팅리는 1982~1995년에 이르는 14년 동안 뉴욕 양키스 한 팀에서만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1980년대의 1루수 부문 올스타에도 선정되었을 만큼 그 능력도 출중했으며, 1985년에는 3할2푼4리의 타율과 35홈런, 145타점을 올리며 아메리칸 리그 MVP를 차지하기도 했다. 1985~1994년(1990년 제외)까지는 매년 1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 상을 수상했을 만큼 내실있는 수비능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1984~1989년에 이르는 6년 동안 연속으로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 당시 1루수로서 그가 보여준 ‘3-6-3’ 병살플레이의 정석은 지금까지도 1루수부문 최고로 인정받고 있을 정도다. 한편 1987년에는 한 시즌 6개의 만루홈런을 기록해 단일 시즌 최다 만루홈런이라는 이채로운 기록을 남기기도 했으며, 14년 프로통산 타율이 3할을 웃돌 만큼(.307) 공수에 있어 뉴욕 양키스의 중추적인 선수로 자리매김해 왔던 선수였다. 그러나 돈 매팅리는 나름의 화려한 선수생활 이력에도 불구하고 정작 월드시리즈와는 단 한 차례도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 이유는 바로 뉴욕 양키스의 암흑기로 불리는 1982~1995년에 걸친 14년간이 돈 매팅리의 선수 생활 기간과 거의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뉴욕 양키스는 1978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끝으로 1996년 다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기까지 18년간 어두운 시기를 보내야 했다. 1981년 아메리칸 리그 우승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돈 매팅리가 양키스 팀의 일원으로 뛰기 이전이었고, 1996년 23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은 매팅리가 은퇴한 이듬해의 일이었다. 물론 그에게도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매팅리의 현역 마지막 해이던 1995년 양키스는 디비전 시리즈에 올라 월드시리즈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잡았지만 매팅리의 분전(5경기 10안타, 타율 .417)에도 불구하고 시애틀 매리너스에 2승 후 내리 3연패를 당하며 끝내 꿈을 접어야 했다. 현재는 LA 다저스의 타격코치로 활약하고 있는 돈 매팅리의 마음에 친정과도 같은 뉴욕 양키스의 연이은 우승 소식(은퇴 후 5번째 우승)은 매번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교차하던 중, 같은 처지의 선수가 한국에도 있는 지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역시 그 대상은 무려 10차례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빛나는 ‘KIA 타이거즈’. 전신이었던 해태 타이거즈의 1997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마지막으로 2008년까지 KIA(해태 포함)가 11년간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었던 기간은 어찌보면 KIA의 암흑기였다. 중간에 각각 2번의 SPO(2004, 2006년)와 PO(2002~2003년)를 치르긴 했지만 과거 해태 타이거즈의 막강 가을야구와 비교하자면 어딘가 미진한 구석이 많다는 점에서 넓게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다. 먼저 투수쪽에서는 타이거즈의 미래를 책임질 기대를 한 몸에 받고 2002년 입단했던 ‘탕아’ 김진우가 눈에 띈다. 2007년까지 6년간 KIA에 몸담으며 47승을 올렸지만 한국시리즈 마운드는 밟아보지 못했다. 2002~2006년까지 5년간 25승을 거들었던 강철민도 비슷한 경우다. 신용운(27) 역시 김진우와 같은 2002~2007년(33승 22세이브)까지 KIA의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올랐지만 무소득이다. 2008년 경찰청에 입단해 올 시즌 KIA의 우승을 먼발치서 지켜봐야 했다. 타자로는 1999~2007년 사이에 주로 백업 멤버 구실을 했던 외야수 김경진과 내야수 김민철(2001~2006년)이 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상무에 입단한 김주형(24)도 2004~2008년까지 5년 동안 KIA의 3루를 맡아왔지만 병역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신용운처럼 원 소속팀의 우승은 남의 이야기로 남게 되었다. 이상 거론한 선수들의 이름 면면을 살펴보면 돈 매팅리와 같은 불행한(?) 거물은 없다. 다만 2000년 KIA에 입단한 내야수 홍세완과 포수 김상훈 정도가 가장 오랜 기간 KIA의 암흑기를 같이 보냈던 선수들이었는데, 2009 시즌 KIA의 극적인 우승으로 자칫 평생 한으로 남을 뻔했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러고보면 아무리 팀 성적 못지 않게 개인 성적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프로야구라고 하지만 ‘배리 본즈’나 ‘스즈키 이치로’의 예에서 보듯, 남부럽지 않은 화려한 훈장을 가지고 있는 선수라해도 결국 팀의 영화가 뒷받침되지 않는 성적과 이력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를 메우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겠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김진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