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0년에 가까운 길고도 고단했던 임수혁 선수의 조용한 투병은 끝내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그가 그라운드에서 쓰러졌던 그 잔인한 달(4월)이 해마다 돌아올 때면 야구인들과 팬들은 늘 병상의 임수혁을 기억하며 그가 기적처럼 병실을 박차고 나와 야구장 나들이 하는 모습을 간절하게 그리곤 했었다. 그러나 이젠 그 작은 미련마저도 그와 함께 훨훨 떠나 보내야 할 시간을 맞았다. 병상에 누워있었던 기간보다도 오히려 짧은 7년이라는 길지 않은 프로선수 생활 동안 임수혁이 남기고 간 기록들을 다시 한번 반추하며, 이젠 사진과 영상으로 밖에 볼 수 없게 된 그의 빈자리를 기억으로나마 채워보려 한다. 대타 만루홈런의 사나이 임수혁은 1995년(5월 28일, 잠실 LG전)과 1998년(8월 28일, 사직 한화전) 주자 만루상황에서 대타로 나와 홈런을 터뜨렸다. 지금까지 프로통산 대타 만루홈런은 총 31번이 기록되었는데 2번이나 이름을 올린 선수는 임수혁을 포함 단 3명(전대영, 송원국) 뿐이다. 통산 최다 대타홈런 부문에서도 임수혁은 총 7차례의 대타 홈런을 때려내 상위에 랭크 되어 있다. 1995년(3개)과 1998년(2개)에는 리그 최다 대타 홈런기록 선수로 등재되기도 했다. 한편 개인통산 최다 대타홈런 기록은 ‘20개’로 이재주가 보유하고 있다. 가을 야구사에 길이 남을 1999년 플레이오프 지금도 포스트시즌 경기사에 있어 가장 기억에 남을 명승부로 첫 손꼽히는 롯데와 삼성의 1999년 플레이오프에서 롯데의 임수혁은 야구팬들에게 오래도록 잊지 못할 장면을 선물했다. 롯데가 1승 3패의 초반 열세를 딛고 승부를 원점(3승 3패)으로 돌려놓은 상태에서 만난 운명의 7차전, 롯데는 8회말 삼성의 김종훈과 이승엽에게 연속타자 홈런을 얻어맞고 3-5로 역전 당하며 다시 한번 막다른 벼랑 끝에 몰렸다. 롯데는 마지막 공격에서 선두타자 공필성이 안타로 출루하며 희망의 끈을 이어가는 듯 했지만 이어 대타로 나온 임재철의 공격이 무위로 끝나며 1사 1루로 악화된 상황. 그리고 다음 타자는 8번 포수 강성우. 2점 차여서 작은 것 보다는 큰 것 한방이 절실했던 롯데의 김명성(2001년 작고) 감독은 이 상황에서 강성우를 빼고 주저 없이 임수혁을 대타로 내세웠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대타로 들어선 임수혁은 보란 듯이 삼성의 특급 마무리투수 임창용을 상대로 2구째를 힘껏 밀어쳐 극적 기사회생의 우월 동점 투런홈런을 작렬시켰고, 롯데는 이 한방에 힘입어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 갈 수 있었다. 강성우 대신 포수 마스크를 쓰게 된 임수혁의 활약은 연장에 가서도 계속 이어졌다. 11회초 선두타자 7번 임재철이 좌전안타로 출루하자 임수혁은 투수 앞 희생번트를 성공시키며 주자를 득점권으로 보내놓는 작전을 완벽히 수행해냈고, 결국 롯데는 9번 김민재의 안타로 결승점을 뽑아낼 수 있었다. 11회말 수비에서도 임수혁은 주형광과 호흡을 맞춰 삼성의 세 타자를 내리 삼진으로 돌려세우며‘야구가 아닌 전쟁’으로까지 표현되던 삼성과의 ‘99 플레이오프 혈투를 승리로 장식해냈다. 공격형 포수의 진가를 보여준 1996년 임수혁이 규정타석을 채운 유일한 해이자 공격형 포수로서 꽃을 피운 시기는 1996년이다. 그해 임수혁은 373타수 116안타로 타격 5위(.311)와 타점 3위(76)에 오르며 공격부분에서 롯데 뿐 아니라 8개 구단 전체를 통틀더라도 전혀 뒤질 것 없는 정상급의 기량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또한 임수혁은 리그 평균 도루저지율(.339)과 맞먹는 3할3푼3리의 도루저지율을 기록함과 동시에 포수 수비율 부문에서도 9할9푼5리의 수비율로 포수부문 전체 1위를 차지하는 등 공수 양면에서 실로 눈부신 활약을 펼친 바 있다. 작지만 임펙트가 강했던 타격 임수혁의 통산 성적은 1296타수 345안타 47홈런 257타점이다. 전체적인 통산기록 몸집이 풍성하지는 않지만, 수비보다는 공격형 포수로서 그가 갖고 있는 이미지대로 통산 홈런 수(47홈런)가 적음에도 안타수 대비 홈런 수는 7:1로 꽤 높은 편이다. 과거 비슷한 유형의 포수들과 비교해 보더라도 큰 차이가 없다. 유승안, 이도형, 이재주(이상 6:1), 김동기(7:1) 등과 대동소이한 기록이다. 역대 포수들 중에서 안타수 대비 홈런 비가 가장 높은 선수는 박경완(4.5:1)이다. 포지션 구분 없이 전체를 놓고 보면 단연 이승엽(3.9:1)이지만. 한편 규정타석에는 미달했지만 한 시즌 개인 최다 홈런(15개)을 기록한 1995년도 아주 인상적인 한 해로 기억된다. rm해 타율은 2할4푼7리로 부진한 편이었지만 67안타 중 15개를 홈런으로 장식, 안타수 대비 홈런 수치를 4.4:1까지 끌어올렸다. 또한 같은 해 LG와의 플레이오프 1, 3차전에서는 당대의 내로라하는 좌완투수 이상훈과 김기범을 상대로 중요한 길목에서 2개의 홈런을 때려내기도 했는데, 이는 임수혁이 큰 경기와 찬스에 경계해야 할 타자임을 팬들의 뇌리에 처음으로 깊이 각인시킨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하겠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