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개막을 앞두고 전력 점검차원에서 매년 비 정기적으로 실시해오고 있는 각 구단의 연습경기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성격의 시범경기에 무려 2만 명에 가까운 관중이 구름처럼 모여들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해보았을까? 근래 들어 부쩍 일기 시작한 야구 붐의 여파라고 얼버무리기엔 그 파고가 마치 ‘쓰나미’를 마주한 듯 너무나 높게 느껴진다. 이쯤 되면‘이젠 야구가 하나의 단순한 스포츠 구기종목 차원을 넘어 문화의 한 장르로 국민들에게 인식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실로 꿈 같은 희망과 기대감이 슬며시 밀려올 정도다. 그래서 일까? 올 시즌 시범경기에 임하는 팀과 선수들의 진지함이 그 어느 해보다도 유별난 듯 싶다. 투수들이야 개인 승패나 투구이닝에 관계없이 계획된 투구수가 차면 미련 없이 마운드를 내려오는 것은 전과 다를 바 없지만, 공격에 나선 팀이나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하나는 ‘설렁설렁’과는 거리가 먼‘최선’ 그 자체다. 타구를 쫓다 외야 담장에 부딪쳐 골절상을 당한 두산의 외야수 정수빈이나 블로킹 과정에서 주자와 충돌해 다리에 부상을 입은 KIA 포수 이성우 등도 시범경기라고 몸을 사렸다면 큰 부상에까지 이르지는 않을 상황이었다. 이처럼 각 팀들의 양보(?)없는 기 살리기 전쟁이 연일 이어지는 가운데 9회 정규이닝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승부치기로 넘어가는 일도 자연스레 많아지고 있다. 승부치기가 처음으로 도입된 지난해(2009) 시범경기에서 연장전으로 넘어가 승부치기를 치른 횟수는 단 두 번뿐. 하지만 올해는 시범경기 일정의 절반 정도 소화된 시점임에도 벌써 네 차례의 승부치기가 치러졌다. 승부치기까지 넘어가진 않았지만 8회까지 동점상태로 승부치기를 눈앞에 둔 경우까지 포함한다면 거의 매일 승부치기를 생각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승부치기를 대비해야 하는 팀들의 대응도 각양각색이다. 지난해를 포함 아직까지 한 번도 승부치기를 치러보지 않았던 팀은 그 준비부터가 어수선하다. 9회가 끝나고 10회초에 들어가기 전, 양 팀은 어느 타순부터 공격을 시작할 지를 지목해 기록실로 통보해야 하는데, 말 공격에 해당하는 팀은 10회말 들어갈 때 통보하면 안되느냐는 질문에서부터 기존 타순을 무시하고 새로 타순을 적어내야 하는 지를 확인하는 일도 있었다. 주자는 누구를 내보내야 하는 지, 어느 위치에 누가 가야 하는 지도 헷갈려 했다. 승부치기에 돌입하기 전, 초 공격 팀은 물론 말 공격 팀의 시작타순을 함께 미리 받아놓는 것은 양 팀의 동등하고도 공평한 기회 때문이다. 나중에 공격하는 팀이 먼저 공격을 시작한 팀의 득점 수를 확인하고 난 뒤, 그 점수 차에 맞게 공격방법이나 타순을 조정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이다. 승부치기는 말이 연장전이지 경기를 새로 시작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출루근거가 없는 2명의 주자(공격 시작타순의 바로 앞 타순 2명)를 1, 2루에 세워놓고 경기를 시작하는 것도 그렇고, 임의로 시작타순을 지정하게 만든 관계로 9회 종료 때의 마지막 타자가 10회에 선두타자로 다시 타석에 들어설 수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정규 경기의 연장선상으로 간주하기엔 상당히 무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기록도 정규이닝과는 별개로 취급하고 있다. 어차피 경기의 승패를 가리기 위해 도입된 제도이니 만큼 투수 개인의 승패기록이나 이닝 스코어의 득점 수는 합산해서 일괄 처리하지만, 투수나 타자의 모든 개인 기록들은 참고 기록으로 남게 된다. 승부치기에서 끝내기 홈런을 쳤다고 하더라도 타자 개인기록의 타율과 홈런, 타점수 등은 그 수치가 올라가지 않는다. 또한 투수의 피안타율이나 피홈런수는 물론 평균자책점 등에도 하등 영향이 없다. 다만 패전기록만이 남을 뿐이다. 보통 정규 경기 동점상황에서 연장 10회초에 점수가 났을 경우, 9회말 마지막 투수가 리드점을 안고 승리투수로 기록될 가능성이 가장 크지만 승부치기에서는 10회말을 잘 막아낸 투수가 승리투수가 된다. 경기가 새로 시작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10회초, 말 시작부에 등판하는 투수는 선발투수와 자격이 같다. 설령 9회에 던졌던 투수가 승부치기에 돌입, 10회에도 이어 등판했다 하더라도 별개의 투수로 봐야 한다. 이외에도 기록과 연결 지어진 부분에서 승부치기는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를 일으키는 부분이 이곳 저곳 상당히 많다. 한마디로 트러블 메이커다. 그래서 승부치기는 기록의 연속성과 전통성을 생명으로 하는 리그제의 프로야구와는 어우러지기 힘든 태생적 한계성을 갖고 있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시간적인 제약, 주어진 짧은 일정 안에 반드시 승패의 결과를 도출해내야 하는 토너먼트나 단발성 대회라면 가능 하겠지만, 프로야구 정규시즌과 승부치기는 ‘물과 기름’이다. 가끔 무승부를 둘러싼 승률계산 방법에 잡음이 일자 속 시원하게 승부치기를 도입하면 어떻겠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는 벌레 한 마리를 잡으려고 집 전체에 불을 놓는 격이다. 그러면 이처럼 현장에서 관련 규정은 고사하고 시행 방법조차 낯설어 하는 승부치기를 프로야구에서 채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일단 부담 없는 시범경기에 도입해보고 반응이 좋다면 정규리그에도 확대해서 시행하려는 다분히 초석적인 목적의식을 갖고 승부치기를 끌어들였다고 생각했다면 이는 오산이다. 이유는 따로 있었다. 국제대회에서 툭 하면 대회규정으로 채택해 내놓는 승부치기에 적응하는 훈련을 하기 위해서였다. 과거 올림픽이나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등의 국제대회에 국가대표로 참가한 선수들의 대부분은 프로선수로 구성되어 왔다. 올 시즌 종료 후, 11월 대만 아시안 게임도 예정되어 있지만 앞으로도 이러한 대표선수 구성은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따라서 프로선수들이 경기결과나 경기 소요시간에 부담이 거의 없는 시범경기에서 연습 삼아 승부치기를 잠깐 경험해보는 일은 크게 나쁠 것이 없다. 또한 프로 감독들이 국제대회를 맡아 치러야 하는 현실적인 면을 생각해보더라도 따로 승부치기만을 대비할 수 있는 여건 마련이 쉽지 않음을 고려하면 오히려 유익한 경험이 될 수도 있다. 아직은 익숙치 않은 승부치기에 때론 허둥지둥 대기도 하고, 득점과 연결시키는 과정에 있어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될 때도 있겠지만, 한 두 번이라도 승부치기에 대비한 백신을 접종하고 나선다면 그때 가서 당황하거나 우왕좌왕하는 일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지난 3월 11일 대전에서 열렸던 두산-한화 전에서 두산이 연장 10회에 승부치기로 득점하는 장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