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부러진 방망이와 온전한 방망이의 규칙적 차이
OSEN 기자
발행 2010.05.11 09: 03

지난 5월6일 열렸던 삼성과 롯데(대구구장)의 경기에서는 롯데 유격수 박기혁이 공과 함께 날아온 부러진 방망이 때문에 타구를 처리하지 못하게 된 일이 있었다. 삼성이 0-4로 뒤지고 있던 5회말 무사 1루, 7번타자 조동찬(삼성)이 휘두른 방망이가 타격과 동시에 부러지면서 공보다 먼저 야수 앞으로 날아갔는데, 롯데 유격수 박기혁이 앞으로 달려들며 타구를 잡으려는 순간, 공교롭게도 공이 배트를 맞고 굴절되며 진로가 바뀌어버린 것이다(기록상 조동찬의 내야안타). 경기 중에 타구가 부러진 방망이를 맞고 방향이 뒤바뀌는 일은 대단히 드문 사례이다. 대개의 경우 방망이는 부러지더라도 가볍고 반발력이 더 큰 공보다는 멀리 날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물게 발생하는 일이라고 해서 관련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야구가 아닐 터. 규칙 6.05 타자아웃 조항에는 이러한 상황에 똑 맞게 떨어지는 문구가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다. ‘방망이의 부러진 일부분이 페어지역에서 타구에 맞거나 주자 또는 야수에게 맞았을 때에는 플레이가 그대로 계속되며 방해로 선언되지 않는다’라고 말이다. 따라서 박기혁으로서는 잠시 난감한 상황이었겠지만 법에 의거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당연 수비측에서 볼 때 불리하다고 생각되겠지만 이러한 규칙이 마련된 이유는 간단하다. 방망이가 부러지는 일은 타자가 의도적으로 만들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2006년 9월 3일 현대와 롯데(수원)전에서는 9회초까지 0-1로 뒤지던 롯데가 무사 만루의 황금기회에서 이대호의 평범한 유격수 앞 땅볼 때, 부러진 배트가 같이 날아가 현대의 유격수 서한규의 수비를 집중 방해한 덕분에 5득점, 경기를 뒤집은 사례도 있었다. 야구규칙의 기본 정신은 공격을 우선으로 배려한다. 삼진이면서도 완벽한 삼진이 아니면 타자의 아웃을 인정하지 않는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 규칙이나 수비측의 부당한 아웃 카운트 조작을 막아주려는 인필드 플라이 규칙도 따지고 보면 공격 측에 보다 유리한 면을 반영하고 있다. 방해에서도 마찬가지다. 공격측의 방해로 볼 수 있는 수비방해와 수비측의 방해로 볼 수 있는 주루방해가 동시에 일어났다고 가정한다면 수비방해보다는 주루방해가 지적될 확률이 더 높다. 그러나 야수 앞으로 날아간 방망이에 타구가 맞았다고 해도 그 방망이가 부러진 것이 아니라면 수비방해가 선언된다. 역시 관련규칙 6.05에 명기된 내용을 보자. ‘타자의 방망이 전체가 페어지역으로 날아가 플레이를 하려는 야수를 방해(타구처리는 물론 송구도 포함)했을 때에는 고의여부와 상관없이 수비방해가 선언된다.’ 물론 부러지지 않은 방망이 전체가 페어지역으로 날아갔다고 해서 모두 타자가 고의로 집어 던졌다고 볼 수는 없다. 박석민(삼성)과 같은 타자들에게서 보듯 그립을 강하게 쥐지 않는 경우에는 타격과 동시에 때론 손에서 빠져 야수 앞으로 방망이가 날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방망이 전체가 날아가 결과적으로 수비에 방해가 되었다고 한다면 이는 고의든 아니든 수비방해를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 규칙의 내면에는 타자가 고의로 날린 것인지 아닌지의 판가름 여부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해석을 어떻게 할 것인지의 고민을 덜어주려는 목적을 담고 있다. 아무리 야구가 공격 위주의 처지를 선반영하고 있다지만 ‘미필적 고의’ 냄새가 짙은 방망이를 휘두르다 통째로 놓치는 행위를 불가항력적인 상황으로 치부하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는 말이다. 앞서 일어난 당시 상황에서 부러진 방망이가 아니고 방망이 전체가 굴러와 박기혁의 수비를 방해했다면 조동찬은 수비방해로 아웃이다. 조동찬의 타구가 내야 안타성이든 일반 땅볼 아웃성이든 공히 아웃이다. 물론 2루로 뛰던 1루주자는 당연히 귀루조치가 된다. 한편 이보다 하루 앞선 5월5일, 두산과 LG(잠실) 전에서는 LG의 박종훈 감독이 두산 이종욱이 기습번트 후(2사 1, 3루 상황) 방망이를 타구 부근에 떨어뜨린 것을 두고 수비방해가 아니냐며 어필을 나온 적이 있었다. 당시 어필의 내용을 전언하면 다음과 같다. “부러진 것이 아니고 온전한 방망이가 페어지역에 들어간 것이므로 수비에 방해가 되었다면 수비방해로 아웃이다.” 그러나 당시 주심은 박종훈 감독의 어필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판정고수의 근거는 어디에 있었을까? 역시 7.09 수비방해 조항과 6.05 타자아웃 조항 중에 그 근거가 들어있다. ‘타자가 치거나 번트한 페어타구가 페어지역에서 방망이에 다시 닿았을 경우에는 볼 데드가 되어 주자의 진루는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페어의 타구가 굴러와 타자가 떨어뜨린 방망이에 페어지역에서 닿았을 때에는 타자가 타구의 진로를 방해할 의사가 있었다고 심판원이 판단하지 않는 한, 타자아웃이 아니며 볼 인플레이이다.’ 박종훈 감독과 주심이 각자 주장의 근거로 제시한 문답차이를 규칙적으로 살펴보면 일단 온전한 방망이가 페어지역에 들어간 것은 맞지만 타구에 방망이가 닿지 않았기에 수비방해가 아니며, 이종욱이 일부러 타구의 진로를 방해할 의사가 명백했다고 심판원이 판단하지 않는 이상, 타자주자를 수비방해로 아웃을 선언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이처럼 부러진 방망이와 온전한 방망이를 두고 야구적으로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조금은 복잡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 판단의 원천은 고의성 개입 가능여부이다. 부러진 방망이가 언제든 정당화 될 수 있는 이유가 고의성 개입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듯, 온전한 방망이가 정당성과 불법성의 가운데에 몰렸을 때 그 문제를 풀어낼 판단의 열쇠 역시 대부분은 고의적인 방해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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