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당하는 쪽은 죽을 맛,‘선발타자 전원’기록들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0.05.18 09: 28

류현진(한화)이 투수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청주구장에서 LG를 상대로 9이닝 동안 탈삼진 17개를 뺏어내며 ‘매 이닝 선발 전원 탈삼진’이라는 훈장(1992년 선동렬, 1998년 이대진에 이은 역대 3번째 기록)을 배경으로 역대 정규이닝 개인최다 탈삼진 신기록(종전 16K)을 수립하던 같은 날(5월 11일), 큰 주목을 끌지는 못했지만 부산 사직에서는 그래도 기억해줄 만한 또 하나의 보기 드문 진기록 하나가 조용히 완성되었다.
그 제목은 일명 ‘선발타자 전원 멀티히트’.
원정팀 SK가 홈팀 롯데를 상대로 21안타를 몰아치며 21-10의 대승을 거두었는데, 이날 SK의 선발타자 전원이 개인당 최소한 2안타 이상씩을 때려낸 것이다.

선발타자 전원안타야 자주 나오는 기록이라 그리 특별할 것이 없지만, 스타팅 배팅 오더에 이름을 올린 선발 전원이 2안타 이상을 기록한 것은 지금까지 딱 3번 밖에 기록되지 않았던 희귀한 기록이다.
1996년 OB가 삼성을 상대로 프로 첫 선발 전원 멀티히트를 기록한 이후, 2002년 한화가 역시 삼성을 제물로 멀티히트(대전)를 때려냈으며, 2006년 롯데 역시 삼성을 맞아 대구에서 17-6으로 대승을 거두던 날, 23안타를 몰아치며 선발 전원 멀티히트를 기록했었다.
5월 11일 경기에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SK의 박경완을 제외하면 전원 2득점 이상씩을 기록한 터라 2회 솔로홈런 한방으로 1득점에 그친 박경완이 이후 득점을 추가했다면 선발전원 멀티득점 기록까지 동시에 쓰여질 수도 있었다는 점이다.
부수적으로 선발 전원 타점 부문은 2번 김재현과 9번 조동화가 타점을 올리지 못해 무위로 끝나버렸다.
그러면 역대 프로야구에서 <선발 전원 안타+득점+타점>이 동시에 완성되었던 경우는 몇 번이나 될까?
모두 3번이다. 1990년 8월 삼성이 태평양을 상대로 대구구장에서 이 무자비한 기록을 처음 이루어냈고, 두 번째는 1999년 8월 현대가 쌍방울과의 인천경기에서 이 기록을 완성해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다시 삼성으로, 2002년 9월 원정 팀 롯데가 대구에서 삼성타자들에게 무참히 당한  전례가 있다.
선발 전원 기록에 있어 눈에 들어오는 기록이 또 한가지 있다. 한 이닝 선발 전원 안타 기록이다. 여러 이닝에 걸치지 않고 오로지 한 이닝에 전원이 몰아쳤다는 얘기다.
역시 삼성이 2004년 8월 대전구장에서 한화를 상대로 2회초에 선발 전원이 돌아가며 안타를 쳐냈다. 이날 삼성이 2회에 몰아친 안타수는 총 11개로 초반 이닝에 기록이 작성된 덕분에 ‘역대 최소(최단)이닝 선발 전원 안타’라는 기록도 부수적으로 따랐다.
그러나 이 최소이닝 선발 전원 안타기록은 얼마 전, 역시 삼성에 의해 기록이 단축된 바 있다.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 대구에서 열린 삼성과 롯데전에서 삼성이 경기 개시 후 11타자 만에 선발타자 전원 안타 기록을 조기에 완성시켰다.
1회말 2번타자 이영욱을 제외한 전원이 안타를 때려낸 삼성은 2회말 선두타자로 나선 이영욱이 마저 안타를 뽑아내 역대 최단 선발타자 전원 안타 기록을 수립해냈는데 이후 경기 소식에서는 이 사실이 거의 언급되지 않아 관계자들만의 소통으로 소리 없이 묻혀 지나간 기록이 되었다.
앞으로 이 기록은 1회에 선발 전원 또는 2회 시작과 동시에 안타가 없는 1번타자가 안타를 때려내지 않는 한, 쉽게 깨기 힘든 진기록으로 오래도록 남을 것으로 보인다.
얘기를 풀다 보니 선발 전원 관련 기록에 있어 여기저기 삼성과 대구구장이 연관되어 있는 점이 발견된다. 우연이겠지만 과거 전무후무한 팀 타율 3할(1987년)을 기록했던 구단으로 막강한 공격력을 주무기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팀이었다는 증거이자, 펜스가 짧아 홈런이 많이 나오는 구장으로 손꼽히는 대구구장에서 그 연유를 찾을 수 있다 하겠다.
이 외에 나올 가능성이 있는 선발 전원 관련 기록들 중에서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는 기록은 선발 전원 홈런과 선발 전원 볼넷 정도다. 경기 한 팀 최다 볼넷 기록이 14개(2008년 두산)이고, 9개 이상 볼넷이 기록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미 한번쯤 나왔음직한 기록이 아닐까 생각되었지만 뒤져봐도 흔적이 없다. 볼넷을 다수 얻은 팀들의 과거 기록지를 살펴보면 꼭 한두 명은 볼넷이 빠져있는 상태다.
한편 선발타자 전원 홈런 기록은 말이 쉽지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기록 같긴 하지만 한국프로야구 1군이 아닌 2군(퓨처스) 리그에서 달성될 뻔했던 적이 있었다. 2008년 5월 17일 경찰청과 LG(벽제)전에서 LG가 30득점을 뽑아낼 때 10개의 홈런을 하루에 몰아친 적이 있었는데, 정작 LG의 4번 지명타자 최승준만이 홈런을 때려내지 못해 ‘선발타자 전원홈런’의 대기록을 완성하지 못한 바 있다.
참고로 LG의 이날 배팅 오더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번 김광삼(3회 쓰리런), 2번 서동욱(4회 투런, 8회 투런), 3번 김용우(2회 투런), 4번 최승준(무홈런), 5번 최승환(4회 만루), 6번 김상현(4회 투런, 5회 솔로), 7번 김준호(4회 솔로), 8번 서건창(4회 투런), 9번 박가람(2회 솔로).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승패는 이미 기울었어도 개인적으로 안타 하나, 타점 하나라도 더 올리고 싶어하는 선수들의 당연한 경기 욕심이 더해져 선발 전원이라는 기록들이 만들어진다. 당하는 쪽에서는 너무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래서 상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때론 경기 중 선수들끼리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기록의 경기라고 불리는 야구이기에 구경 가능한 일들이지 싶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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