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MLB의 또 다른 전설이 된 ‘밥 셰퍼드’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0.07.13 08: 41

메이저리그의 장내 아나운서로 활동하며 무려 57년간이나 뉴욕 양키스의 타순을 소개해왔던 ‘양키스 스타디움의 목소리’ 밥 셰퍼드(Bob Sheppard)가 노환을 이기지 못하고 은퇴를 결정했다는 외신을 접한 것이 지난해(2009) 11월경이었는데 그로부터 만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외신은 밥 셰퍼드가 99세의 일기를 끝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아쉬운 소식을 또 한번 전해왔다.
1951년 4월 17일, 메이저리그 역대 최장거리 홈런타자로 알려지고 있는 미키 맨틀(Mickey Charles Mantle)이 데뷔를 하던 바로 그날, 처음으로 장내방송을 시작했던 밥 셰퍼드는 까마득한 과거 속의 ‘조 디마지오’로부터 근자의 ‘데릭 지터’에 이르기까지 뉴욕 양키스를 거쳐간 수많은 스타들의 이름을 직접 불러온 양키스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산 증인이었다.
특히 데릭 지터는 밥 셰퍼드가 와병으로 경기장에 나오지 못하게 되자 2007년 녹음된 그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이 소개되기를 원한다고 해서 구단이 밥 셰퍼드의 녹음 테잎을 준비해 데릭 지터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어김없이 틀어주곤 했었다.

“Now batting for the Yankees, number two, Derek Jeter, number two."
(의역하자면, 지금 양키스의 타석에 등번호 2번 데릭 지터가 들어섭니다)
오래 전 언론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밥 셰퍼드의 존재를 알았고, 일면식도 없이 그것이 전부일 뿐인데도 밥 셰퍼드의 사망소식이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왜일까?
언젠가 기고를 통해 한국에서도 밥 셰퍼드와 같은 장내 아나운서가 탄생되기를 그려본다는 말을 꺼낸 적이 있다. 단명으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한 한국프로야구 장내 아나운서계의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들춰 본 이야기였다. 
물론 현재 삼성 라이온즈의 장내 아나운서 같은 경우는‘유격수 류중일’에서‘박진만’을 거쳐‘김상수’에 이르기까지 10년 이상의 경력을 바탕으로 한 팀에서 오랜 기간 그 임무를 묵묵히 수행해오고 있지만 이는 특별한 예다. 
구성상 100% 여성인 우리 아나운서들의 직업 수명은 보편적으로 짧은 편에 속한다. 또한 구단만의 개성이나 특색 없이 획일적인 톤과 어조로 천편일률적이다 싶게 장내 방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한동안 LG 트윈스에서 타석에 등장하는 홈팀 선수를 남자 아나운서를 통해 독특한 방식으로 소개하는 시도를 한 적이 있긴 하지만 선수 개인을 부각시키는 방식이 팀워크에 지장을 줄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지금은 다시 옛날로 돌아간 상태다. 
당시 남자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실린 힘이 너무 강렬해 바로 옆 방에 자리를 잡고 일하는 공식기록원들의 귀에는 다소 시끄러운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도 그가 남기고 간 몇 구절은 그 시절의 타자들이 타석에 등장할 때면 아직도 귓가에 환청으로 살아 숨쉬곤 한다.
“타점을 부르는 사나이…, 쿨 가이…,앉아 쏴…” 등등.
야구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 해도 당연히 선수들이다. 그들이 풀어내는 몸짓하나하나에 팬들은 열광한다. 그렇지만 선수들이 야구의 전부는 아니다. 특히 프로야구에선 더욱 그렇다. 프로야구를 풍성하게 만드는 요소들에 있어 선수들이 만들어내는 각종 기록들과 결과물들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프로야구 다운 프로야구가 되기 위해서는 경기외적으로 프로야구를 치장하고 살찌우는 방법들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될 구경꺼리와 얘기거리들이 많아져야 한다. 야구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프로 의식이 먼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우선이지만, 전설로 길이 기억될 사람들이 선수 말고도 여러 부문에서 많이 나타나야 비옥한 토양 위에서‘프로야구’라는 나무가 거목으로 튼실히 자랄 수 있다. 
할아버지 밥 셰퍼드가 장내 아나운서 생활을 이어가는데 있어 가장 힘들었던 점은 바로 야구장까지 오고 가는 긴 이동시간이었다고 한다. 편의점에서 부식을 사기 위해 1시간 이상 차를 몰고 나가야 할 만큼 광활한 영토를 갖고 있는 미국땅이라서 더욱 그랬을 것이지만, 밥 셰퍼드는 야구장에서 일하는 3~4시간을 위해 그 이상의 시간을 준비에 쏟아 부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장내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것 같은 사명의식을 찾기 힘든 하찮은 일쯤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밥 셰퍼드는 오랜 세월 자신의 일을 그렇게 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양키스의 전설로 여기고 그의 죽음 앞에 존경과 애도의 뜻을 표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선수는 오랜 기간 뛰어난 활약으로 기록상 큰 업적을 남기면 전설로 남는다.
선수라면 누구나 그렇게 되고 싶어한다. 자신이 걸어온 길이 구단과 팬들로부터 영원히 기억되고 칭송받는 다는 것은 은퇴가 결정된 선수에겐 이 세상 최고의 영예이다. 영구결번식은 바로 그러한 자리에 오르는 일종의 대관식인 셈이다.
그러나 선수가 아니더라도, 일 자체가 금전적인 보상과는 거리가 멀더라도, 또한 성대한 대관식 따위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자리더라도 수십 년 동안 한가지 일에 매진하며 팬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야구계의 전설로 남는 경우가 메이저리그에는 많이 있다.
1950년 4월 이후, 장장 60년 동안 LA 다저스 팀의 경기중계를 담당해오고 있는 ‘다저스의 목소리’빈 스컬리(83)도 그러한 하나의 예다.
1941년 시카고 컵스의 홈구장인 리글리 필드에서 시작되었다는 그들의 오르간 연주소리, 점점 첨단화되고 현대화되어 가는 경기장 시설 변화에도 아랑곳없이 1937년 이래 지금도 수동으로 조작되고 있는 리글리 필드의 스코어보드는 문명의 빠른 변화속도를 따라잡느라 급급해 하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
먼 훗날 우리나라도 선수들의 이름을 부르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장내 가득 울려 퍼질 날이 과연 돌아올 수 있을까?
세월이 좀더 흐르면 우리 프로야구도 연륜을 느끼게 하는 흰머리처럼 사방에서 중후함이 희끗희끗 풍겨 나오겠지만, 아직은 경기외적인 잡다한 일의 연속성과 다양성 면에서 직업적 전통을 인정하고 중시하는 풍조가 자타간에 다소 부족한 점은 시간을 두고 보완되어야 할 부분으로 보여진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사진>데릭 지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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