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사 주자 1,2루 상황. 한화의 김경언이 친 타구가 LG 1루수 이진영 앞으로 굴러갔다. 이진영이 타구를 잡아 바로 옆의 1루를 밟고(타자주자 김경언 아웃) 난 뒤, 정석대로 1루주자 추승우까지 아웃 시키기 위해 2루쪽에 들어와 있던 유격수 박용근에게 송구.
박용근은 1루수의 송구를 잡아 1루주자를 몰다 2루주자인 이대수가 어느새 3루를 돌아 홈 쪽으로 향하려는 기색을 보이자 1루쪽으로 치우져 있던 1루주자 추승우를 포기하고 지체 없이 3루로 송구. 그러나 위기를 감지한 이대수는 재빨리 3루로 돌아가 세이프 되었고, 박용근의 3루송구를 틈타 뒤늦게 2루로 달려간 1루주자 추승우는 3루수의 송구로 2루수 박경수에게 태그아웃.
이상은 지난 8월 17일 LG와 한화전(잠실)의 연장 10회초에 벌어진 상황으로 설명은 꽤나 복잡해 보일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땅볼타구로 타자주자가 1루에서 먼저 아웃되고, 이어 1루주자도 2루에서 태그아웃된 아주 간단명료한 상황이었다. 한번 더 쉽게 풀자면 기록법상 ‘3A-6T’쯤으로 표기되는 병살타였다.

그러나 이날 김경언의 ‘3A-6-5-4T(1루 베이스터치-유격수-3루수-2루수 태그)’로 기록된 실제 상황은 병살타로 기록되지 않았다. 수비측이 아웃카운트 2개를 추가해 쓰리아웃 공수교대가 되었고, 병살타로 기록될 수 있는 완벽한 조건에서 이루어진 더블아웃이었음에도 타자에게는 기록상 병살타가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 이유는 말미에서 설명하도록 한다.
타자에게 병살타가 기록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행되어야 하는 조건이 있다. 첫째는 주자가 포스상황에 놓여 있어야 한다. (포스상황이라고 하는 야구용어는 태그상황의 반대말쯤으로 보면 된다)
타자가 땅볼타구를 쳤을 때 자신이 서 있던 루를 떠나 무조건 다음 루를 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말한다. 주자 1루, 주자 1,2루, 주자 만루 등이 모두 포스상황에 속한다. 만일 주자 1,3루였다면 1루주자만이 포스상황이며 3루주자는 태그상황의 주자가 된다.
둘째는 타자의 타구가 반드시 땅볼타구여야 한다. 가끔 라인드라이브(직선타)나 플라이 타구로 타자와 루상의 주자가 함께 아웃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상황은 병살(더블아웃)은 맞지만 타자에게는 병살타로 기록되지 않는다. 병살타와 더블아웃은 반드시 일치하는 기록항목이 아니다.
설령 직선타구나 플라이타구를 야수가 잡다가 놓쳐 타자의 타구가 결과적으로 땅볼타구가 되는 바람에 포스상황에 놓여있던 주자가 뒤늦게 다음 루로 뛰다가 포스아웃 되고, 타자주자도 1루에서 더블아웃된 경우라 해도 타자에게는 병살타의 기록이 남지 않는다. 이는 포스상황의 주자라 하더라도 타자의 타구가 날아갈 당시의 상황이 주자가 다음 루로 뛸 수 없는 조건이었기 때문에 부득이한 주자의 포스아웃에 대해서 타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다.
타구가 땅에 닿지 않고 날아가 투수나 다른 야수의 몸에 직접 닿은 다음, 땅볼타구의 형태로 변해 다른 내야수가 이를 잡아 포스상태의 주자와 타자주자를 함께 아웃시켰다 해도 타자의 기록은 병살타가 되지 않는다. 돌려 말해 둘째 조건을 종합하자면 타자의 타구가 야수에 처음 닿을 때 반드시 땅볼타구의 형태라야 병살타로 기록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상의 첫째 조건(포스상황의 주자)과 둘째 조건(땅볼타구)이 모두 부합하는 상황이라면 모두 병살타가 된다고 간주해도 무방하다.
가끔 주자 2루 때, 타자가 친 땅볼타구를 유격수가 잡고 때마침 앞으로 지나가는 2루주자를 태그아웃 시킨 뒤, 1루로 던져 타자주자를 아웃시켰을 때에도 병살타가 되냐고 질문을 해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상황은 병살타로 기록될 수 없다. 둘째 조건은 성립하지만 첫째 조건인 포스상황의 주자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하나, 주자 1,2루 때 타자의 땅볼타구로 2루주자가 3루에서 포스아웃 되고, 1루주자도 2루에서 포스아웃 되었지만 타자주자는 1루에 살아나간 경우,
이 때는 타자에게 병살타가 기록된다. 병살타는 타구를 날린 타자주자의 아웃이 꼭 포함돼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타자주자를 제외하고 루상의 포스상태 주자 2명 또는 3명(트리플 플레이)이 타자의 땅볼타구로 한꺼번에 아웃되어도 타자의 기록은 병살타가 된다.
병살타가 대충 이렇다라는 것을 이해했다면 이제 서두에서 꺼냈던 김경언의 타구로 돌아가보자.
병살타로 기록될 수 있는 상황에서 주자를 2명 이상 한꺼번에 아웃시키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홈에서 가장 가까운 주자부터 순서대로 아웃시키는 방법이 있고 여의치 않을 경우, 선행주자가 아닌 뒷 주자부터 아웃시키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순서대로 선행주자부터 아웃시키는 방법은 야구 용어로 ‘포스 더블플레이’, 역순으로 후위주자부터 아웃시키는 방법은 ‘리버스 포스 더블플레이’라고 부른다. 이 두 가지 상황 모두 병살타로 기록 가능하다.
‘리버스 포스(Reverse Force)’라는 말은 수비측이 포스상황을 거꾸로 가져간다는 말로 바꿔 말할 수 있다. 김경언의 1루수 앞 땅볼타구 때, 1루수가 1루부터 밟았다는 것은 뒷 주자부터 아웃시킨 것으로, 선행주자는 뒷 주자가 먼저 아웃되면 이사 들어올 사람이 없어진 관계로 점유하고 있던 기존의 집(루)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신분으로 바뀌게 된다.
따라서 다음 루를 향해 뛰지 않아도 좋은 신분으로 바뀐 주자를 수비측이 아웃시키기 위해선 반드시 주자에 대한 태그가 필요해진다. 이런 상황을 야구에서는 ‘리버스 포스’라고 부른다.
김경언의 땅볼타구를 잡은 1루수가 1루를 밟아 타자주자 김경언부터 아웃시켰기 때문에 1루주자를 비롯한 2루주자 역시 태그를 해야만 아웃이 되는 신분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1루수가 3루쪽으로 송구해 3루로 뛰는 2루주자를 태그아웃 시켜도 되고, 2루쪽으로 던져 1루주자를 태그아웃 시켜도 된다. 어느 주자를 택하건 아웃 시키기만 하면 타자의 병살타가 된다.
그 당시 리버스 포스 상태에 놓이게 된 1루주자 추승우가 2루에서 태그아웃이 되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설명대로라면 타자의 병살타로 기록되어야 맞다. 그런데 무엇이 김경언의 병살타 한 개를 줄어들게 했을까?
그것은 역시 타자주자의 아웃으로 리버스 포스 상태로 신분이 바뀐 2루주자 이대수가 3루를 지나, 2루주자가 아닌 3루주자로 신분이 바뀌었다는 데에 원인이 있었다.
유격수 박용근이 아웃을 노렸던 이대수는 리버스 포스 상의 위치를 이미 벗어난 주자였다. 만일 같은 상황에서 2루주자 이대수가 3루에 도달하기 전, 수비의 대상이 되었다면 리버스 포스 상태의 주자신분으로 자신이 살고 1루주자가 1-2루 간에서 태그아웃 되었다 해도 병살타가 가능하지만, 수비측이 리버스 포스 상태가 해제된 주자에 대한 수비를 선택한 순간, 타자의 병살타 조건 첫째 조건이었던 포스상황(리버스 포스 포함)이 풀린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경언으로선 2루주자였던 이대수 덕분에 병살타로 기록되었을 고과기록이 소멸된 셈이다.
야구의 ‘병살타’는 더블아웃처럼 결과만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항목이 아니다. 이처럼 이르는 과정도 때로는 병살타 결정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
‘병살타는 결과로 말하지 않는다’라는 또 다른 증거가 있다. 야구에서 한 이닝을 마치기 위한 아웃 카운트 수는 모두 3개. 따라서 아웃 카운트 2개를 의미하는 병살타는 한 이닝에서 1번만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기록규칙상 한 이닝에서 병살타 2개도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다.
병살타 성립조건에서 정상적으로 플레이가 이루어졌지만, 마지막 두 번째 아웃카운트를 완성시키기 위한 수비측의 플레이에서 최후의 수비수(반드시 포구자)가 공을 놓쳤을 때에도 병살타는 기록된다.
간단한 예로, 주자 1루 때 타자의 유격수 앞 땅볼타구로 1루주자 2루에서 포스아웃. 2루수가 타자주자까지 아웃시키기 위해 1루로 정확히 송구했지만, 포구자인 1루수가 공을 놓쳐 타자주자가 세이프 되었을 때(기록법상 6-4-3E)에도 아웃카운트는 1개만이 성립되었지만 타자의 기록은 병살타가 된다.(같은 상황에서 송구자인 2루수가 악송구를 해 타자주자가 살았다면 병살타가 아니다)
지금까지 한국프로야구에서 ‘1이닝 2개의 병살타’가 기록된 적은 모두 3차례. 1986년 6월 30일 롯데가 청보전(인천) 6회초에 기록한 것 외에 두 차례가 더 있었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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